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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Jul 22. 2021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 한스 기벤라트와 하마르티아 -


1. 개천에서 난 용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이 있다. 시원찮은 환경이나 변변찮은 부모에게서 빼어난 인물이 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한스 기벤라트도 개천에서 난 용이었다. 독일 남서부 슈바르츠발트의 시골마을 같은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영재였다. 가정환경이나 지역 환경을 고려해봤을 때 ‘하늘로부터 내려온 신비로운 불꽃’(p. 10)로 밖에 그를 설명할 수 없었다.

 

한스 기벤라트의 재능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교사들이나 교장 선생, 이웃 사람들이나 마을 목사, 학교 친구들 등, 모든 사람들은 이 사내아이가 영리한 두뇌를 가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p.11)    

이러한 영재들에게는 앞날이 보장된 엘리트 코스가 있었다. 주(州) 시험에 합격하여 신학교와 수도원을 거쳐 성직자나 교육자로 국가에 봉사한다. 국가는 그들의 일생을 보장한다.

주(州)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118명 중 36명의 지능이 우수한 젊은이를 뽑는 〈헤카콤베〉에서 한스 기벤라트는 당당히 2등으로 합격한다. 마울브론 수도원의 신학교에 입교한 그의 앞에는 찬란한 미래가 예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 가을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2. 하마르티아(hamartia)

   

한스 기벤라트의 비명횡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수레바퀴 아래서』가 비극이고 그가 비극의 주인공이라면 ‘하마르티아’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하마르티아’는 그리스어로 원래 ‘화살이 과녁을 비껴가는 일’을 가리키는 말인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13장에서 비극의 결정적 요인으로 언급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마르티아’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여러 해석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주인공의 도덕적⋅성격적 결함의 측면으로 보기도 하고 우연 또는 운명적 측면으로 보기도 하며, 두 측면의 조합으로 보기도 한다.    

핵심적인 문제는 ‘하마르티아’가 인간의 내면적인 지성적인 착오나 판단, 실수, 과오 등을 가리키고 있는지, 아니면 인간의 도덕적인 착오나 판단, 실수, 과오 등을 가리키고 있는지,  아니면 인간의 실존과 전 삶을 좌우하는 어떤 외부적인 힘, 이를테면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비극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나 신의 힘을 가리키고 있는지, 아니면 내부적인 면과 외부적인 면을 다 포함한 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이다.

  

3. 한스 기벤라트의 인간적인 결함 세 가지

    

먼저 한스 기벤라트의 도덕적⋅성격적 결함의 측면에의 ‘하마르티아’에 대해 살펴보자. 그에게서 세 가지 인간적인 결함, 즉 정서적⋅신체적⋅사회적 결함을 발견할 수 있다.

   

3.1. 정서적 결함

  

한스 기벤라트의 정서적 결함은 어머니의 부재에서 시작되었다. 병약한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사랑이 부족한 그의 내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교활하고 계산적인 내면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신학교에 입교한 후에 어머니의 부재가 더욱 두드러진다.    

수도원의 신학교 문턱을 어머니와 함께 들어선 학생이라면 누구나 평생 동안 이날의 흐뭇한 감동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되돌아본다. 하지만 한스 기벤라트는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날을 아무런 감동 없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그러면서도 다른 어머니들을 살펴보며 강한 인상을 받았다. (p. 85)

  

세심하게 짐을 정리해 주는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과 헤어지며 가슴 아파하는 애틋한 어머니의 마음을 그는 느낄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 단지 판에 박힌 아버지의 말을 들었을 뿐이다.

그가 신학교 생활에 힘들어 하다 크리스마스에 집에 돌아갔을 때 아버지는 많은 선물을 준비해놓고 그를 반겼다. 하지만 그가 찾은 집에는 노래도 축제 분위기도 ‘어머니’도 잣나무도 없었다.(p. 128) 그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그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따뜻한 어머니의 온기였지 않을까.

이후로도 그에게 의지가 되고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어머니의 부재는 뼈저렸다. 신학교를 떠나게 되는 과정뿐 아니라 집에 돌아 와서도 그의 마음의 공허는 점점 심해져만 갔다.

  

3.2. 신체적 결함

  

하늘은 한스 기벤라트에게 지능의 불꽃을 내렸다. 하지만 그 지능을 지탱할 신체는 허락하지 않았다. 어쩌면 병약한 어머니 쪽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였을 수도 있다. 그가 마을의 기대를 한껏 받으며 공부에 매진할 때 해쓱한 얼굴은 밤샘한 듯 했고 피곤한 눈은 가장자리가 푸르스름했고 두통을 앓았다. 몸은 야윌 대로 야위어 있었다.

  

아무튼 한스는 너무 말라 있었다. 가드다란 팔다리가 무척 연약해 보였다. 가슴과 등은 갈빗대를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장딴지에는 살이 거의 붙어 있지 않았다. (p.57)

 

주(州) 시험에 합격하고 맞은 방학에서 그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건강을 챙겼어야 한다. 하지만 주위 선생님들의 성급한 그리스어, 수학, 히브리어 선행학습으로 인해 그의 머리는 두통에 시달렸고 그의 몸은 뼈와 가죽만 앙상하게 말라갔다.

일이 잘 풀릴 때는 허약한 몸으로라도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어려움에 닥치면 치명적인 결점으로 작용한다. 그의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환영이 보이는 증상까지 나타났다. 처음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을 때는 경미한 신경쇠약이었지만 다음에는 신경쇠약, 그 다음에는 즉시 요양을 떠나지 않으면 무도병(舞蹈病)에 걸릴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신학교를 떠나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는 환청과 환영에 시달리다 자살 충동에 사로잡히기에 이르렀다. 그가 연거푸 흥얼거리는 시구에 그의 아버지는 불안감은 더해만 간다.

 

아, 나는 피곤합니다.

아, 나는 지쳤습니다.

지갑에 돈 한 푼 없고,

주머니에도 없습니다. (p. 183)

  

3.3. 사회적 결함

  

어렸을 적에 한스 기벤라트에게는 인간미를 가진 친구와 주위 사람들이 많았다. 허름하기 그지없는 〈매의 거리〉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학교에 들어간 지 처음 한두 해 동안 그는 〈매의 거리〉에 자주 놀러갔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로테 아주머니, 약삭빠른 부랑아인 핑크바인 형제, 그가 가장 가깝게 지낸 장애인 고아인 헤르만 레히텐하일, 음주벽이 심해 해고된 괴텔러, 늙은 기계공 포류슈, 자물쇠 장수 브렌들레 등. 하지만 그의 예사스럽지 않은 지능이 드러나자 주위는 교장을 비롯한 선생들, 마을 목사, 아버지와 같이 성공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는 점점 친구들에 대한 우월감에 도취되어갔다.

     

정말이지 뺨이 두툼하고 평범한 학교 친구들과는 다르다는, 더 나은 존재라는 예감이 한스를 사로잡았었다. 언젠가는 속세에서 벗어난 높은 곳에서 우쭐대며 이들을 내려다보게 되리라는, 건방지면서도 행복에 겨운 예감이었다. (p. 24) 

  

그가 주(州)시험을 치르고 신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그에게 친구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신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는 친구를 거의 사귀지 않았다. 교장을 비롯한 선생들의 관심을 샀을 뿐이다. 괴팍한 시인인 헤르만 하일러와 우여곡절 끝에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헤르만 하일러가 신학교를 무단으로 뛰쳐나간 사건으로 퇴교를 당하자 그는 모두에게 따돌림을 받는 외톨이로 남게 되었다. 그가 쫓겨나다시피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외면하지 않은 사람은 구둣방 플라이크 아저씨가 유일했다.

    

4. 한스 기벤라트에게 찾아온 운명의 장난 


이상으로 한스 기벤라트의 인간적인 결함에 대해 살펴보았다. 신형철은 ‘결함(flaw)’을 한 인간의 도덕적⋅성격적 결함보다 광의적으로 해석한다.     

비극에 원인을 제공하는 하마르티아의 두 번째 층위는 한 인간의 도덕적⋅성격적 결함이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해석이지만, ‘결함(flaw)’이라는 말은 다소 편협하게 느껴진다. ……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마따나 ‘에토스가 곧 다이몬’이라면(즉 성격이 곧 운명이라면) 세상의 모든 성격은 제 안에 비극적인 것을 품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성격)은 그 자체로 결함이라고 해야 하리라.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인간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인간은 소수에 그친다. 즉, 한스 기벤라트의 비극적인 죽음을 그의 결함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점이 있다는 말이다. 그의 결함이 어떻게 비극적 죽음으로 이어지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하마르티아’의 또 다른 측면인 우연 또는 운명적인 측면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4.1. 엠마    


한스 기벤라트는 모성애에 목말라했다. 그는 이성으로부터 그 갈증을 채우려 했다. 그는 헤르만 하일러로부터 라인강의 아가씨들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에 잠겼다. 하일러가 고향의 이웃집 아가씨와 키스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부러워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3년 전에 좋아 했던 엠마 게슬러를 보고 실망하기도 했다. 엠마 게슬러가 더 이상 자신이 상상하던 아리따운 아가씨가 아니었다. 그는 플라이크 씨의 과즙 짜기에서 하일브론에서 온 엠마를 만난다. 밤중에 플라이크 씨의 지하실에서 엠마는 키스를 하며 그를 유혹한다. 하지만 엠마가 자신을 희롱하고 떠난 사실을 안 그는 격정에 사로잡혔고 고독에 잠을 지새웠다. 엠마가 떠난 지 여드렛날 그는 술에 취해 동요 〈사랑스러운 아우구스틴(O du lieber Augustin)〉을 흥얼거렸고 강물에 익사했다.    


아, 그대 사랑하는 아우구스틴,

아우구스틴, 아우구스틴,

오, 그대 사랑하는 아우구스틴,

모든 게 끝나버렸네. (p. 259)    


그가 엠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난생처음 사랑의 감정을 품었던 여인 엠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여 크게 상념에 빠진 그는 술에 취한 상태로 죽음을 향해 휘청거렸다. 평생 목말라 했던 사랑을 우연히 만나 드디어 갈증을 해소하는 줄 알았는데 그 사랑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운명의 장난으로 밖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4.2. 비라하 

  

한스 기벤라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태로 신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3주 전의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 가을로 접어들며 그의 변덕스러운 흥분과 불안은 조금씩 잦아들었지만 우울한 상태는 지속되었다. 과즙 짜기가 끝나고 그는 슐러의 대장간에 견습생으로 들어갔다. 금요일에 푸른 대장장이의 작업복을 입고 작업장에 출근한 그에게 톱니바퀴를 다 낡아빠진 줄로 다듬는 일이 주어졌다. 오전이 다 가기도 전에 그의 두 손에 물집이 생겨 아파왔고 토요일에는 더욱 심해졌다. 허약한 체력으로 갑작스런 육체노동에 피곤에 절어 버린 그는 일요일에 침대에서 쉬고자 했다. 하지만 아우구스트의 초대에 응하여 다른 동료 두 명과 함께 비라하로 술을 마시러 갔다. 주점 〈닻〉에서 맥주와 포도주를 마시고 주점 〈날카로운 모퉁이〉에서 독한 병맥주를 더 마셨다. 그는 이미 거나하게 취했고 밀려오는 걱정거리에 두통이 시작되었다. 주점 〈백조〉에서 독한 브랜디를 마시자 그는 자신을 더 이상 주체하지 못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원기마저 다 소진되어 풀밭에 쓰러졌던 그는 어둠이 내린 언덕을 허정허정 내려갔다. 결국 그는 죽음의 그림자에 휘말려 들었다.

그는 비라하에서 자신 이기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다. 그의 죽음을 익사로 추정할 수 있지만 음주로 인한 쇼크사로도 볼 수 있다. 그는 허약한 심신을 이끌고라도 기계공으로 다시 출발하려 했다. 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마신 술로 인해 사고사 한다. 운명은 그에게 더 이상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4.3. 아우구스트    


유일한 선택지였던 마울브론의 신학교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그에게 인생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마음 둘 곳 없이 배회하는 한스 기벤라트에게 아버지는 기계공이 되고 싶은지 서기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한스야, 너는 기계공이 되고 싶니, 서기가 되고 싶니?」

「왜요?」 한스는 깜작 놀라 되물었다.

「다음 주말에 기계공 슐러 씨에게 가보든지, 아니면 다음주에 관청에 들어가 견습을 하든지 할 수 있을 거야. 한 번 잘 생각해 보려무나! 그런 다음에 내일 다시 얘기해 보자꾸나」 (p. 216)

    

 그때 그의 머리에 떠오른 사람은 기계공이 된 아우구스트였다. 아우구스트는 그가 기억하는 유일한 친구였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연락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아우구스트에게 기계공에 대해 물어보고 대장간에 출근하기로 결정한다. 그가 단지 이틀간의 대장간 일로 피곤에 빠져 있을 때 아우구스트는 술로 한턱내겠다며 일요일에 비하라로 가자고 제안을 한다. 그는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거절하지 못하고 아우구스트를 따라나선다. 하지만 그가 어찌 상상이나 했을 것인가? 아우구스트를 따라나선 그 길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이었음을.

그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유일한 친구가 결과적으로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운명의 장난이 아니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의 운명에서 아우구스트는 죽음의 강을 건너 저승으로 인도하는 뱃사공 카론(Charon)의 역할을 하였다.

   

5. 비극으로서의 『수레바퀴 아래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좋은 비극이 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의 구성요소가 필수적이라 한다. 비극의 목적인 연민과 두려움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오는 플롯이라고 한다. 

  

(1) 그것은 하나의 단일 이슈에 집중하여야 한다.

(2) 주인공은 행복에서 불행으로 떨어져야 하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3) 불행은 주인공의 도덕적 성품에서가 아닌 ‘하마르티아’로부터 와야 한다.

(4) 주인공은 오이디푸스나 오레스테스처럼 적어도 보통 사람보다도 나은 신분의 소유자이어야 한다. 

   

『수레바퀴 아래서』도 이 플롯의 네 가지 요소를 따르고 있다.  

  

(1) 한스 기벤라트의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2) 한스 기벤라트는 주(州) 시험에 합격해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점점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져 비참하게 죽음에 이르게 된다.

(3) 한스 기벤라트의 죽음은 인간적인 결함에서 움터서 우연처럼 찾아온 운명으로 열매를 맺는 ‘하마르티아’에 기인한다.

(4) 한스 기벤라트는 적어도 지능 면에서는 그의 고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타고 났다. 

     

문학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수레바퀴 아래서』도 마찬가지다. 한스 기벤라트의 불행한 죽음을 ‘하마르티아’의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그의 비참한 종말이 독자들에게 안타까움과 허망함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볼 때 『수레바퀴 아래서』를 비극의 전범(典範)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참고 문헌〉

    

헤르만 헤세 (2017), 『수레바퀴 아래서』, 김이섭 옮김, 민음사

신형철 (2016), 「‘호모 파티엔스(homo patiense)’에게 바치는 경의」, 『이모』, 권여선, 창비

김인숙 (2017)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타난 ‘하마르티아’에 대한 연구」, 『문화산업연구』, Vol 17, No.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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