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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Sep 04. 2021

섬 가운데 푸른 산이 육오(六鰲) 등에 올라탄 듯하고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第二絶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二絶     


최부(崔溥) 지음, 고광문 역주(譯註)


中有靑螺駕六鰲 섬 가운데 푸른 산이 육오(六鰲) 등에 올라탄 듯하고 

巨靈擘破勢周遭 거령(巨靈)이 쪼개 놓은 듯 빙 둘러싼 산세(山勢)로다 

撑天圓嶠無頭處 높고 높은 원교산(圓嶠山), 머리가 없는 곳에

翠壁一里千尺高 일리(一里)를 이어진 푸른 절벽은 천척(千尺)만큼 높구나 


청라(靑螺)

원래는 소라고둥 모양의 상투인데 산을 형용하는 말로 쓰인다. 당나라 피일휴(皮日休)의 「태호사표묘봉(太湖寺縹緲峯)」에 “흡사 푸른 소라고둥을 밝은 달빛 중에 흩뿌려놓은 듯하다〔似將靑螺髻 撒在明月中〕”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한라산을 의미한다.

육오(六鰲)

육오(六鰲)는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나오는 여섯 마리 자라를 말한다.

탕(湯)임금이 “물건에는 크고 작은 것과 길고 짧은 것이 있습니까? 또 같은 것과 다른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하극(夏革)이 하는 이야기 중에 나오는데 그 내용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발해(渤海)의 동쪽으로 몇억만 리나 떨어져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곳에 큰 구렁이 있는데 실은 밑바닥이 없는 골짜기입니다. 그 아래엔 바닥이 없어서 그곳을 귀허(歸墟)라 부릅니다. 온 세상 팔방(八方)의 물과 은하수의 흐르는 물이 모두 그곳으로 흘러들지만 물은 늘지도 않거니와 줄지도 않습니다.

그 가운데에 다섯 개의 산이 있는데 첫째는 대여(岱輿)요, 둘째는 원교(圓嶠)요, 셋째는 방호(方壺)요, 넷째는 영주(瀛洲)요, 다섯째는 봉래(蓬萊)입니다. (중략)

그런데 다섯 산의 뿌리는 이어지거나 붙어 있는 곳이 없습니다. 언제나 조류와 물결을 따라서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잠시도 멎어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신선들과 성인들은 이것을 근심하여 그 사실을 하느님께 호소했습니다. 하느님은 그 섬들이 서쪽 끝으로 흘러가 여러 성인이 살 곳을 잃을까 두려워해서 곧 우강(禺彊)에게 명하여 큰 자라 열다섯 마리로 하여 머리를 들고 그것들은 이고 있도록 했습니다. 다섯 마리씩 세 짝을 지어 교대로 하는데, 육만 년 만에 한 번 교대하도록 했습니다. 다섯 산은 이에 비로소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용백(龍伯)의 나라에는 거인이 있어서 발을 들어 몇 발자국 가지도 않아 바로 다섯 산이 있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그는 한 개의 낚싯대로 여섯 마리의 자라를 연이어 낚아서〔一釣而連六鼇〕 모두 짊어진 다음 잽싸게 자기 나라로 돌아와 그것을 구워 그 뼈를 세어 가면서 먹어치웠습니다. 이에 대여와 원교의 두 산은 북극으로 흘러 떠내려가서 큰 바닷속에 가라앉아 버려 그곳으로부터 옮겨 오는 신선과 성인들이 수억이나 될 정도였습니다. (후략)”

여기서 육오는 한라산의 토대가 되는 제주도를 의미한다.


거령(巨靈)

거령비희(巨靈贔屭)는 황하(黃河)의 신(神)으로 황하가 화산(華山)에 막혀 흐르지 못하자 화산을 쪼개어 황하를 그 중간으로 흐르게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장형(張衡)이 지은 「서경부(西京賦)」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나라의 처음 도읍지는 위수 가에 있었고, 진나라의 도읍지는 그 북쪽에 있었으니, 이곳이 바로 함양의 옛 서울이다. 동쪽으로는 효산, 함곡관의 중첩한 험고함과 도림의 요새가 있고, 태화, 소화 두 산과 연접해 있는데, 옛날에 거령이 큰 힘을 써서 손으로는 화산의 꼭대기를 둘로 쪼개고 다리로는 화산의 기슭을 밟아 찢어서 태화, 소화 두 산으로 만들어 그 중간으로 황하가 굽게 흘러가도록 하였으니, 그 거령의 손과 발자취가 지금도 남아있다 〔漢氏初都 在渭之涘 秦里其朔 寔爲咸陽 左有崤函重險 桃林之塞 綴以二華 巨靈贔屓 高掌遠蹠 以流河曲 厥跡猶存〕’.

최부는 빙 두른 형상의 한라산 정상에 대해 거령이 뾰족한 봉우리를 쪼개버린 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 쪼개진 봉우리는 어디로 갔을까?

원교무두(圓嶠無頭)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한라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한라산(漢拏山) 주 남쪽 20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한라(漢拏)라고 말하는 것은 운한(雲漢, 은하(銀河))을 나인(拏引, 끌어당김)할 만하기 때문이다. 혹은 두무악(頭無岳)이라 하니 봉우리마다 평평하기 때문이요, 혹은 원산(圓山)이라고 하니 높고 둥글기 때문이다. 그 산꼭대기에 큰 못이 있는데 사람이 떠들면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서 지척을 분별할 수가 없다〔漢拏山 在州南二十里 鎭山 其曰漢拏者 以雲漢可拏引也 一云頭無嶽 以峯峯皆平也 一云圓山 以穹窿而圓也 其巓有大池 人喧則雲霧 咫尺不辨〕.

한라산의 일명은 원산(圓山)이니, 곧 바다 가운데 있다는 원교산(圓嶠山)이다 〔漢拏山 一名圓山 卽中海圓嶠山〕. 

취벽일리천척고(翠壁一里千尺高)

푸른 절벽 일리(一里, 약 400m) 길이에 천척(千尺, 약 300m) 높이. 최부가 백록담 화구벽을 묘사한 구절로 보인다. 백록담은 한라산의 정상에 있으며 동서 길이 약 600m, 남북 길이 약 400m, 깊이는 약 108m인 순상화산의 화구호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백록담 화구벽의 길이와 높이가 각각 수백 미터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부의 묘사가 상당히 사실적이라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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