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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Sep 13. 2021

좋은 벼슬 형제에게 두루 봉하니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十一絶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十一絶     


최부(崔溥) 지음, 고광문 역주(譯註)


好爵旋封兄及弟 좋은 벼슬 형제에게 두루 봉하니

榮還故國傳來裔 영광스레 고국에 돌아와 후손에게 전해졌네

梯航疑叩不辭頻 산 넘고 물을 건너 잦은 조공도 사양치 않고

朝事新羅暮百濟 처음엔 신라를, 나중에는 백제를 섬겼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탐라가 신라에 복속한 이후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고후의 무리가 이르자 왕이 가상히 여기어 고후에게 성주(星主)란 칭호를 주었으니 객성이 동하였기 때문이었다. 왕은 고청을 자기의 가랑이 아래로 나가게 하고 사랑하기를 자기 자식같이 하여 왕자(王子)라고 일컫고 그 막내를 도내(都內)라고 일컬었다. 고을 이름은 탐라(耽羅)라 하였으니, 처음 올 적에 탐진에 닿아서 신라에 조회하였기 때문이다. 각각 보개(寶蓋)와 옷을 주어 보냈다. 이때로부터 자손이 번성하여 신라를 공경히 섬기니, 드디어 고(高)를 성주로 삼고 양(良)을 왕자로 삼고 부(夫)를 도상(都上)으로 삼았다. 뒤에 양(良)을 고쳐 양(梁)으로 하였다. 그 뒤에 백제에 복종하여 섬겼는데, 동성왕(東城王) 21년에 탐라가 조공을 바치지 않으므로 친히 정벌하려고 무진주(武珍州)에 이르자 그 성주가 듣고 사자를 보내어 죄를 용서하기를 비니, 이에 그만두었다. 백제가 멸망함에 미쳐 신라 문무왕(文武王) 원년에 탐라국주(耽羅國主)의 좌평(佐平) 도동음률(徒冬音律)이 와서 항복하였다.

〔及厚等至 王嘉之 稱厚曰星主 以其動星象也 令淸出胯下 愛如己子 稱曰王子 又號其季曰都內 邑號曰耽羅 以初來泊耽津而朝新羅也 各賜寶蓋 衣帶而遣之 自此子孫蕃盛 敬事新羅 遂以高爲星主 良爲王子 夫爲徒上 後改良爲梁 其後服事百濟 東城王二十一年 以耽羅不修貢賦 親征至武珍州 其主聞之 遣使乞罪 乃止 及百濟滅 新羅文武王元年 耽羅國主 佐平徒冬音律來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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