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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Jul 22. 2021

웃음과 기사단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웃음』을 읽고

서양에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은밀한 조직이 있다오늘날 유머라고 불리는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를 만들어 퍼트리고 그 비밀을 수호하는 유머 기사단이 그것이다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윌리엄 수도사는 유머 기사단의 단원이었다유머 기사단은 웃음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던 중 호르헤라는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도사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웃음을 유발하는 희곡에 대해 쓴 귀중한 시학』 2권을 입수했고 그 책이 수도원의 장서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유머 기사단에서는 시학』 2권을 빼내기 위해 여러 단원을 수도사로 위장하여 수도원에 잠입시키지만 장서관을 철통같이 지키는 호르헤 수도사에 의해 번번이 실패한다드디어 유머 기사단은 지성과 추리력을 갖춘 최고의 단원인 윌리엄(첩보 영화의 대명사인 007 시리즈의 숀 코네리가 영화 장미의 이름의 주인공을 맡은 것을 우연으로만 바라볼 것인가숀 코네리도 유머 기사단원인지 모르지 않는가?)을 수도원으로 파견하게 된다윌리엄은 이미 여러 건의 웃음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기사단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호르헤 수도사는 윌리엄이 자기가 막아내기 어려운 상대임을 알아보고 결국 그가 시학』 2권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직감한다그렇지만 그 책이 유머 기사단에 넘어가게 되었을 때 세상에 미칠 영향이 두려워했던 호르헤 수도사는 비밀의 방에 책을 감춘다윌리엄이 무단으로 비밀의 방에 침입하여 책을 뺏으려하자 호르헤 수도사는 책을 찢어 먹음으로써 끝까지 저항한다결국 시학』 2권의 입수에 실패한 윌리엄은 장서각에 불을 질러 모든 증거를 은폐하고 자신의 실패가 화재로 인한 것이라고 기사단에 변명하게 된다.

움베르토 에코는 왜 이러한 이야기를 밝히지 않는 것일까유머 기사단의 보복이 두려웠을까이러한 비밀을 알고 있었던 에코와 유머 기사단과 어떤 연관은 없는 것인가?

     

위의 글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웃음』을 읽고 만든 패러디이다. 여러분이 보기에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세 작품을 ‘웃음’과 ‘기사단’을 키워드로 살펴본다면 이 패러디가 품고 있는 의미에 고개가 끄덕여질지 모르지 않겠는가?     

『장미의 이름』은 영국의 수도사 월리엄와 그를 수행하는 아드소가 중세의 한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일어난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미스터리한 사건의 중심에는 ‘웃음’과 그에 관한 책이 있다. 

이 소설에서 ‘웃음’과 관련한 부분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는 장서관의 문서 사자실에서 윌리엄 수도사와 호르헤 수도사의 웃음에 관한 논쟁이 벌어진다. 후반부에서는 웃음을 불러오는 희극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을 두고 두 수도사 사이의 치열한 머리싸움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은 실재(在)했을까?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에서 저자 김대식은 그 가능성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현재 전해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희극을 비롯하여 비극과 서사시를 다루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희극에 관한 논의는 적다. 『시학』에서 비극의 기원과 역할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는 “추후 희극에 대해서도 설명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희극을 다루기도 전에 한 중간에서 끝나 버린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현재 남아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글들은 3세기 문헌에서 언급된 것의 일부이고 그 형식도 원래의 것과는 다른 요약본이나 편집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학 』 제2권은 전해오는 과정에서 소실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편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다는 주장이다. 1643년에 발견된 저자 없는 『트락타투스 코이슬리아누스(Tractatus coislaianus)』라는 이름의 고대 문서는 희극의 기원과 의미를 설명한다. 이 문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시학』 2편의 필사본일지도 모른다는 논란이 되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코이슬리아누스』 번역판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시학』 2편으로 되살려 낸 것이다.


     

『푸코의 진자』는 기호학자로서 움베르토 에코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성전 기사단’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외인 부대 출신 아르덴티 대령이 가라몬드 출판사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대령으로부터 입수한 앵골프의 메모를 출판사에서 함께 일하는 카소봉, 야코포 벨보, 디오탈레비 세 명의 편집자가 자신들의 지식과 상상력을 덧붙여 해석에 몰두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야코포 벨보의 입을 빌어 ‘성전 기사단은 모든 것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카소봉 등은 앵골프의 메모를 세상을 지배할 성전 기사단의 비밀을 지닌 암호 문서로 해석한다. 하지만 그 메모는  단순한 배달 명세서로 밝혀지고 이들의 상상력은 자신들을 알 수 없는 운명의 길로 이끈다. 


 ‘성전 기사단’은 어떻게 비밀 결사체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마이클 해그는 『템플러』에서 성전기사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의 성전에 본부를 두고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십자군이 세운 국가들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은 성전 기사단의 활동과 어이없는 파국이 수많은 추측과 음모설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성전기사단의 역사는 1119년 예루살렘에서 창립되어 200년 후 프랑스에서 해체됨으로써 끝이 난다. 성전기사단의 비밀은 수도사와 전사가 결합된 조직이라는 데에 있다. 그들은 이국적인 세계를 호령했으며 온갖 모험과 전쟁을 치르고 갑자기 몰락했다. 성전기사단의 문서고가 사라짐으로써 그 실상을 알 수 없게 된 점이 오히려 대중의 상상 속에서는 그들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작용을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성전기사단은 살아남았고 확대되었다. 성묘교회나 성전산과 같은 거룩한 장소들은 성전기사단의 존재에 전설과 신화를 덧붙여주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웃음』은 ‘유머(웃음)’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 소설이다. 프랑스의 국민 코미디언 다리우스가 분장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그 사건을 여기자 뤼크레스 넴로드와 전직 과학 전문 기자 이지도르 카첸버그가 파헤치는 과정에서 다리우스의 실체, 웃음 산업과 유머를 둘러싼 음모에 다가간다.

작가는 매력적인 주제인 ‘웃음(유머)’과 ‘성전 기사단’을 조합하여 역사의 배후에 감춰져 있던 비밀 조직 ‘유머 기사단’을 만들어낸다. 소설 속 가상의 텍스트인 《유머 역사 대전》의 〈유머 기사단 총본부편〉에는 솔로몬 성전 건립과 웃음학의 태동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어진 이야기에서 성전 기사단이 성전 지하의 깊숙한 곳에서 발견 했다는 솔로몬 시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정신적 보물인 작은 궤에 관한 이야기도 확인할 수 있다. 그 궤에는 웃음으로 배신자들을 응징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문서가 들어 있는데.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이라는 것은 수많은 해석을 발생시키는 기계’이고 ‘서책끼리 대화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세 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책들이 서로 비슷한 키워드로 통하고 있다. 읽는 사람의 상상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이해되고 무궁무진하게 새로운 이야기의 실마리로 삼을 수 있다. 나는 ‘웃음’과 ‘기사단’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상상하여 한 편의 패러디를 만들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책들은 서로 은밀한 대화를 나누며 여러분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 것을 고대하고 있다. 도서관 서가에서 책들의 소곤거림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보기를 바란다. 

  

〈참고 도서〉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장편 소설, 이윤기 옮김, 2010

『푸코의 진자』, 움베르토 에코 장편 소설,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9

『웃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2012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 움베르토 에코 장편 소설, 이윤기 옮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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