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다니야의 경」에서

by 메티콘

연일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수일 째 이어지는 열대야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잠을 설치기도 일쑤다. 이런 땐 속이 후련하게 한바탕 내려줄 소나기가 기다려진다. 낮이든 밤이든 속 시원하게 쏟아져 더위를 식혀 줄만도 한데 도통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늘도 참 야속하다. 날씨 관련 인터넷 기사에는 ‘비 내리기를 기원하며 세차를 하겠다’는 댓글이 여러 건 달렸다. 세차를 한 날은 항상 비가 오더라는 머피의 법칙(Murphy's law)에라도 기대를 걸어 보겠다는 간절한 마음일 것이다.

소나기는 머피의 법칙에 따르기보다는 자연법칙에 따라 내린다. 기상학적으로 소나기를 내리는 구름은 적란운(積亂雲), 우리말로는 쌘비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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쌘비구름은 많은 양의 수증기가 강력한 상승기류에 의해 탑 모양으로 솟구치면서 만들어진다. 쌘비구름이 대류권 계면에 도달하면 기온이 급강하하고 구름을 이루는 미세한 물방울들이 냉각이 된다. 차가워진 물방울이 주위의 다른 방울들과 뭉쳐 큰 방울을 형성하고 그것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소나기가 되는 것이다.



올 여름 무더위에 대해 기상청에서는 “상층에선 고온 건조한 공기가, 중하층에선 수증기가 충분히 유입되는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대개 폭염으로 이어진다.”라고 설명했다. 대기 상층이 차가워야 소나기를 기대할 수 있는데 고온 건조한 공기가 눌러앉았단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jpg

하늘이 소나기를 내려주지 않는다면 글로라도 소나기를 흠씬 맞아보자. 작가 박완서는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소나기가 군대처럼 쳐들어와 채찍처럼 세차고 폭포수처럼 시원한 빗줄기로 복더위와 달음박질에 불화로처럼 단 몸뚱이를 사정없이 후려친다’라고 어릴 적 소나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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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 기억에 논에 농약을 치는 날이면 소나기가 내리곤 했다. 아침 일찍 농약 치기 시작해 점심에 이르러 거의 마칠 무렵 그 맑던 하늘에 구름이 모이기 시작했다. 후텁지근하게 바람 한 점 없던 들판에 싸늘한 마파람이 돌았다. 시꺼멓게 변한 하늘에는 천둥이 으르렁거리고 세찬 바람에 벼 포기들이 너울처럼 출렁거렸다. ‘우지끈 짝’ 소리를 내며 번개가 내리꽂으면 ‘투둑 투둑 투두두둑 …… 쏴아’, 눈앞을 분간할 수 없을 지경으로 쏟아졌다. 서둘러 농약줄을 감고 경운기를 돌려 집으로 향했지만 밀짚모자에서 장화 속까지 이미 흠뻑 젖은 후다. 그럴 땐 아버지께서 한마디 하셨다. “내 이럴 줄 알고 전착제(展着劑)* 탔다.” 천지가 한바탕 야단법석을 치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늘어지게 낮잠 한숨 자고나면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동녘 하늘에 오색빛 무지개가 걸렸고 서녘 하늘에 벌겋게 노을이 졌다.

오늘도 식전부터 쨍쨍하고 길가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데 매미만 쉼 없이 울어댄다. 잎 누런 가로수에, 메마른 저수지에, 벌건 바다에 한소끔 소나기가 시원하게 내리기를 간절하게 소원해본다.

*농약을 효과적으로 살포하거나 해충에 잘 달라붙게 하기 위하여 섞는 물질. 농약이 작물체 표면에서 강우에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표면에 부착되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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