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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Jul 22. 2021

소나기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다니야의 경」에서

 연일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수일 째 이어지는 열대야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잠을 설치기도 일쑤다. 이런 땐 속이 후련하게 한바탕 내려줄 소나기가 기다려진다. 낮이든 밤이든 속 시원하게 쏟아져 더위를 식혀 줄만도 한데 도통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늘도 참 야속하다. 날씨 관련 인터넷 기사에는 ‘비 내리기를 기원하며 세차를 하겠다’는 댓글이 여러 건 달렸다. 세차를 한 날은 항상 비가 오더라는 머피의 법칙(Murphy's law)에라도 기대를 걸어 보겠다는 간절한 마음일 것이다.  

    

소나기는 머피의 법칙에 따르기보다는 자연법칙에 따라 내린다. 기상학적으로 소나기를 내리는 구름은 적란운(積亂雲), 우리말로는 쌘비구름이다. 

     


쌘비구름은 많은 양의 수증기가 강력한 상승기류에 의해 탑 모양으로 솟구치면서 만들어진다. 쌘비구름이 대류권 계면에 도달하면 기온이 급강하하고 구름을 이루는 미세한 물방울들이 냉각이 된다. 차가워진 물방울이 주위의 다른 방울들과 뭉쳐 큰 방울을 형성하고 그것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소나기가 되는 것이다.



올 여름 무더위에 대해 기상청에서는 “상층에선 고온 건조한 공기가, 중하층에선 수증기가 충분히 유입되는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대개 폭염으로 이어진다.”라고 설명했다. 대기 상층이 차가워야 소나기를 기대할 수 있는데 고온 건조한 공기가 눌러앉았단다. 


    

하늘이 소나기를 내려주지 않는다면 글로라도 소나기를 흠씬 맞아보자. 작가 박완서는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소나기가 군대처럼 쳐들어와 채찍처럼 세차고 폭포수처럼 시원한 빗줄기로 복더위와 달음박질에 불화로처럼 단 몸뚱이를 사정없이 후려친다’라고 어릴 적 소나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내 어린 시절 기억에 논에 농약을 치는 날이면 소나기가 내리곤 했다. 아침 일찍 농약 치기 시작해 점심에 이르러 거의 마칠 무렵 그 맑던 하늘에 구름이 모이기 시작했다. 후텁지근하게 바람 한 점 없던 들판에 싸늘한 마파람이 돌았다. 시꺼멓게 변한 하늘에는 천둥이 으르렁거리고 세찬 바람에 벼 포기들이 너울처럼 출렁거렸다. ‘우지끈 짝’ 소리를 내며 번개가 내리꽂으면 ‘투둑 투둑 투두두둑 …… 쏴아’, 눈앞을 분간할 수 없을 지경으로 쏟아졌다. 서둘러 농약줄을 감고 경운기를 돌려 집으로 향했지만 밀짚모자에서 장화 속까지 이미 흠뻑 젖은 후다. 그럴 땐 아버지께서 한마디 하셨다. “내 이럴 줄 알고 전착제(展着劑)* 탔다.” 천지가 한바탕 야단법석을 치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늘어지게 낮잠 한숨 자고나면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동녘 하늘에 오색빛 무지개가 걸렸고 서녘 하늘에 벌겋게 노을이 졌다.   

오늘도 식전부터 쨍쨍하고 길가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데 매미만 쉼 없이 울어댄다. 잎 누런 가로수에, 메마른 저수지에, 벌건 바다에 한소끔 소나기가 시원하게 내리기를 간절하게 소원해본다. 

    

 *농약을 효과적으로 살포하거나 해충에 잘 달라붙게 하기 위하여 섞는 물질. 농약이 작물체 표면에서 강우에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표면에 부착되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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