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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Sep 17. 2021

할머니의 깻잎전

나의 소울 푸드

죽기 전에 꼭 먹고 싶은 음식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주저 없이 ‘할머니의 깻잎전’이라고 하겠다. 왜냐고 묻는다면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상상할 수 없으니 달리 할 말이 없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할머니는 요리의 대가였다. 요즘 말로 하면 마스터 셰프라고나 할까. 동네잔치나 계(契)에서 음식 장만할 때 할머니가 진두지휘를 했다. 약밥, 부침개, 인절미, 홍어 무침, 약과, 부수개〔유과〕, 오꼬시〔밥풀과자〕, 순대, 식혜, 수정과, 수리미〔오징어〕 무침, 도토리묵 등등. 할머니의 손을 거친 음식들은 사람들의 눈과 코와 입을 즐겁게 했다.


할머니가 만든 음식 중 유독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깻잎전’이다. 할머니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로 소를 만들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집에서 닭을 직접 키웠기에 닭을 잡을 때 나오는 닭똥집과 닭발로 소를 만들었다.

깨끗하게 손질한 닭똥집과 닭발을 확독〔돌확〕에 넣고 으깬 다음 다진 마늘과 소금으로 양념한 후에 밀가루를 넣어 개어 놓는다. 밭에서 딴 시퍼런 들깻잎을 작두 시암물〔샘물〕에 씻은 뒤에 탈탈 털어 광주리에 담아 물기를 말린다. 간이로 만든 부뚜막에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놓고 장작불로 달군다. 잘 달궈진 솥뚜껑 위에 돼지비계 덩어리를 올려 기름을 낸다. 개어 놓은 소를 숟가락으로 퍼서 깻잎으로 감싼 후 양 손바닥으로 눌러 납작하게 모양을 만든다. 밀가루를 살짝 묻힌 다음 계란옷을 입혀 솥뚜껑에 올린다. ‘치익’하는 소리를 내며 옅은 김이 나며 고소한 기름 냄새와 향긋한 깻잎 내음에 군침이 한가득 돈다. 주걱으로 살살 눌러 알맞게 익었다 싶으면 반대편으로 뒤집어 마저 지진다.


노릇노릇한 깻잎전을 꼭지를 들어 건네주면 양손으로 받아 호호 불다 한입 베어 문다. 뜨거운 김과 함께 입안을 가득 채우는 육즙에 깻잎이 어우러진 향과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이라니! 주는 대로 두어 개 널름널름 받아먹다가 옆에 있던 어머니가 그만 먹고 저리 가라 하면 떼써보다가 손가락만 쪽쪽 빨았다.


가끔 그 맛이 간절하여 깻잎전을 해 먹어보지만 채울 수 없는 허전함만 남는다. 혹자는 배고프던 시절이라 맛있었지 않겠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솜씨는 그런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고 단언한다. 더 이상 할머니의 깻잎전을 맛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안타까움만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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