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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Sep 17. 2021

근래에 백 십여 년이 동안 왕가의 덕화를 가득히 받으니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十六絶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十六絶     


최부(崔溥) 지음, 고광문 역주(譯註)


爾來一百十餘年 근래에 백 십여 년이 동안

嬴得王家德化宣 왕가의 덕화를 가득히 받으니

文物儘從周禮樂 문물은 모두 주나라 예악을 따랐고

版圖編入禹山川 판도가 「우공(禹貢)」의 산천에 편입 되었네


조선은 개국 초기 제주도를 안무(按撫)하면서 중앙집권 통치의 틀에 넣으려는 정책을 펼쳤다. 제주도는 남해에 멀리 떨어진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성이 강했고 조선이 표방하는 성리학적 사회 질서와 문화의 파급이 늦었다. 이에 조선은 포용 정책과 집권력 강화 정책과 교화 정책을 적절히 시행하여 제주도에 지배력을 확고히 하고자 하였다.

조선은 성주(星主), 왕자(王子)로 대표되는 제주 토착 세력을 포용하는 정책을 폈다. 고려와 조선에서 지방 토호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관찰사나 절도사가 그 지방에서 유력한 사람을 선발하여 임명하는 벼슬을 토관(土官)이라 한다. 제주의 토관 세력은 중앙 조정의 인정을 받아 자신들의 영향력을 보전했다. 또 세종대의 고득종(高得宗)과 같은 제주 출신 인사들이 조정에 진출하여 중앙 정치에 참여했고 제주도에 관한 정책 결정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제주 백성들의 입장을 반영했다.

조선 초기에 제주 백성들의 공헌(貢獻)과 그에 따른 하사(下賜)가 많이 이루어 졌다. 특산물을 진헌(進獻)함으로써 그 대가로 제주의 토관 세력은 조정으로부터 기득권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필요 물품의 교환에 따른 경제적 이득까지 취하였다. 제주도의 주된 특산물은 말이었고 조정에서는 제주도에 부족했던 쌀, 면포 등을 지급했다.

조선은 포용 정책을 펴면서도 제주도를 행정 구역으로 재편하는 일을 추진하였다. 태종대의 제주⋅대정⋅정의로 이루어진 삼읍(三邑) 체제 형성을 시작으로 세종대의 마정체계 정비와 세조대의 진관(鎭管) 체제를 확립하는 제도 개편을 하였다. 진관(鎭管) 체제의 확립은 제주를 주진(主鎭)으로 삼고 대정⋅정의 양진(兩鎭)을 아래에 두어 제주목사에게 병마수군절제사의 직을 겸임하는 군사지휘권을 부여했다.

조선은 제주도에 임금의 덕행으로 다스리는 왕화(王化)를 표방하며 통치 이념인 성리학의 보급을 꾀했다. 제주도의 세 고을인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에 각각 향교(鄕校)가 세워졌고 교수관이 파견되었다. 향교와 함께 사학(私學)도 정책적으로 활성화 했다. 학교의 설치와 교육의 확대와 함께 정표(旌表) 정책을 실시하였다. 정표(旌表) 정책은 조선 왕조에서 유교적 여성관을 정책적으로 장려하기 위하여 열녀 등을 포상하는 정책이다. 충신⋅효자⋅열녀 들을 표창하기 위하여 그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웠고〔旌門〕, 충신⋅효자⋅군인 등 특정한 대상자에게 부역이나 조세를 면제하여 주었으며〔復戶〕, 상으로 관직을 내려주기도 했고〔賞職〕, 물질로 포상하기〔賞物〕도 했다. 

    

판도편입(版圖編入)

판도편입(版圖編入)은 탐라가 조선의 지도에 편입 즉 조선의 행정구역으로 확립되었음을 말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권근(權近)의 응제시(應制詩)를 상징적으로 싣고 있다.     

蒼蒼一點漢羅山 검푸른 한 점이라 한라산 보소

遠在洪濤浩渺間 아득아득 저 멀리 파도 속에 있네

人動星芒來海國 바다에서 사람 오자 별빛 함께 반짝이고 

馬生龍種入天閑 말은 용종을 낳아 천한으로 들여오네

地偏民業猶生遂 땅은 외져도 백성은 생업을 이루고

風便商帆僅往還 바람결에 장삿배는 갔다가 돌아오네

聖代職方修版籍 성대라 직방씨(職方氏) 여지도(輿地圖)를 편수할 제

此邦雖陋不須刪 이 나라 누하대서 삭제하지 않았도다     

여기서 인동성망래해국(人動星芒來海國)은 신라 계림의 하늘에 객성(客星)이 나타나자 탐라 사람이 조회한 일을, 천한(天閑)은 천자가 타는 말을 기르는 마굿간을, 직방씨(職方氏)는 천하의 지도와 사방의 공부(貢賦)를 맡았던 주대(周代)의 관명(官名)을 말한다. 

    

우산천(禹山川)

우(禹)는 『서경(書經)』의 편명인 「우공(禹貢)」을 의미한다. 「우공(禹貢)」에는 중국 구주(九州)의 산천 형세와 토산물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우(虞)나라 때 9년간 홍수가 져서 민생이 곤궁에 빠지자 순 임금이 우 임금을 명하여 구제하도록 하였다. 이에 우 임금이 산천의 형세를 보아 물길을 트고 지역의 특성에 따라 세금을 매기었다. 여기서는 최부가 편찬에 참여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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