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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Sep 18. 2021

내가 지금 만 리 길에 임금의 조서를 받들고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十七絶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十七絶     


최부(崔溥) 지음, 고광문 역주(譯註)


我今萬里擎丹詔 내가 지금 만 리 길에 임금의 조서를 받들고

跋涉遠來並海徼 산 넘고 물 건너 멀리서 와서 바닷가에 닿았네.

又有同舟許使君 또 허 목사와 배를 함께 타니

一番傾盖膽相照 한번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이 통했네


만리(萬里)

만리(萬里)는 매우 먼 거리(距離)를 뜻한다.     


단조(丹詔)

단조(丹詔)는 주필(朱筆, 붉은색을 찍어 쓰는 붓 또는 글씨)로 쓴 황제의 조서를 말한다.

  

『표해록』 서문(序文)에서 최부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성화23년 정미년 가을 9월 17일 신(臣)이 제주 삼읍 추쇄경차관(濟州三邑推刷敬差官)으로서 대궐을 하직하고 떠나 전라도에 이르러서, 감사(監司)가 사목(事目)에 의거하여 뽑아 보낸 광주목(光州牧)의 아전 정보(程普 정보(程保)), 화순현(和順縣)의 아전 김중(金重)과 승사랑(承仕郞 종8품 문관) 이정(李楨), 나주(羅州)의 수배리(隨陪吏) 손효자(孫孝子), 청암역리(靑巖驛吏) 최거이산(崔巨伊山), 호노(戶奴) 만산(萬山) 등 6인과 사복시(司僕寺)의 안기(安驥)ㆍ최근(崔根) 등을 거느리고 해남현(海南縣)으로 가서 순풍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허사군(許使君)

허사군(許使君)은 제주 목사로 부임하는 허희(許熙)를 말한다. 사군(使君)은 임금의 명령(命令)을 받들고 나라 밖으로나 지방(地方)에 온 사신(使臣)의 경칭(敬稱)이다.

『표해록』에 최부가 허목사(許牧使)가 함께 제주도로 부임하는 대목이 나온다.

정미년(1487, 성종 18) 11월 11일, 아침에 제주의 신임 목사(牧使)인 허희(許煕)와 함께 관두량(館頭梁)에서 같이 배를 타고 12일 저녁에 제주의 조천관(朝天館)에 도착하여 유숙하였습니다.

허희(許熙)는 성종 18년(정미, 1487) 11월에 제주 목사로 부임하여 성종 21년(경술, 1490) 5월에 교체되었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는 제주 목사 허희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성종 18년 8월 12일, 허희(許熙)를 통정 대부(通政大夫) 제주 목사(濟州牧使)로 삼았다.

성종 19년 7월 6일, 제주 목사(濟州牧使) 허희(許熙)에게 하서(下書)하기를, “지난번에 최부(崔溥)가 분상(奔喪) 하려고 바다를 건널 때에 그대가 튼튼한 배를 구해 주었기 때문에 비록 표류(漂流)를 당하기는 했어도 같이 탄 43인이 모두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으니, 그대가 어찌 도운 것이 없겠는가? 내가 매우 가상하게 여겨서 특별히 표리(表裏)를 내려서 상을 주니, 이르거든 영수하라.” 하였다.

성종 19년 9월 28일, 제주 목사(濟州牧使) 허희(許熙)에게 치서(馳書)하기를, “잇병을 고치는 의녀(醫女) 장덕(長德)은 이미 죽고 이제 그 일을 아는 자가 없으니, 이·눈·귀 등 여러가지 아픈 곳에서 벌레를 잘 제거하는 사람이면 남녀를 물론하고 초록(抄錄)하여 보내라.” 하였다.

의녀(醫女) 장덕(長德)은 드라마 「대장금(大長今)」에 나오는 장덕이다. 제주 목사 허희가 장덕의 후임자로 귀금(貴今)을 조정에 보내니, 치통⋅비창(鼻瘡.콧구멍에 나는 부스럼)⋅안질 등을 잘 치료해 이름을 날렸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는 의녀(醫女) 귀금(貴今)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성종 23년 6월 14일, 우승지(右承旨) 권경희(權景禧)가 아뢰기를, “제주(濟州)의 의녀(醫女) 장덕(張德)은 치충(齒蟲)을 제거시키고 코와 눈 등 모든 부스름이 난 것도 제거시킬 수 있었는데, 죽을 무렵에 그 기술을 사비(私婢) 귀금(貴今)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나라에서는 면천(免賤)시켜 여의(女醫)를 삼아 그 기술을 널리 전하고자 하여 두 여의로 하여금 따라다니게 하였는데, 귀금이 숨기고 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요즈음 황을(黃乙)이라는 자가 고독(蠱毒)450) 을 잘 다스리는데, 숨기고 있다가 세 차례나 형문(刑問)한 다음에야 말하였습니다. 여의 분이(粉伊)는 그 기술을 배웠으나, 황을만은 못하니, 이는 그 기술을 다 전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청컨대 귀금을 고문하여 물어보게 하소서.” 하니, 명하여 귀금을 불러서 묻기를, “여의 두 사람으로 하여금 따라다니게 하였는데, 네가 숨기고 전해 주지 아니하니, 반드시 그 이익을 독차지하고자 함이 아니냐? 네가 만약 끝까지 숨긴다면 마땅히 고문을 가하면서 국문(鞫問)하겠으니, 다 말하여라.” 하자, 귀금이 말하기를, “제가 일곱 살 때부터 이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여 열 여섯 살이 되어서야 완성하였는데, 지금 제가 마음을 다해 가르치지 않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익히지 못할 뿐입니다.” 하였다.

     

경개(傾盖)

경개(傾蓋)는 경개여고(傾蓋如故)의 준말이다. 개(蓋)는 수레 뚜껑이다. 길을 가다가 수레를 멈추고 가까이 접근하여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으로, 처음 만났지만 서로 뜻이 맞아 옛친구 같다는 데에 쓰이는 말이다.

《사기(史記)》 추양전(鄒陽傳)에 “흰머리가 되도록 오래 사귀었어도 처음 만난 사이처럼 생소하기만 하고, 수레를 처음 맞댄 사이이면서도 오랜 옛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것은 무슨 뜻이겠는가. 바로 상대방을 알고 모르는 차이를 말해 주고 있다. 〔諺曰 白頭如新 傾蓋如故 何則 知與不知也〕”라는 말이 있다.     

담상조(膽相照)

담상조(膽相照)는 간담상조(肝膽相照)로 간과 쓸개를 서로 보인다는 뜻이다. 즉 서로 마음을 터놓고 사귀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는 출폐간상시(出肺肝相示), 복심상조(腹心相照), 기미상투(氣味相投), 심조신교(心照神交)가 있다.

출폐간상시(出肺肝相示)는 당대(唐代)의 뛰어난 문장가인 한유(韓愈, 768∼825)가 쓴 유종원(柳宗元)의 묘비명인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에 나오는 말로 “손을 잡고 폐와 간을 꺼내 서로 보여주며 하늘의 해를 가리켜 눈물을 흘리며 생사를 걸고 서로 배반하지 않는다고 맹세하니 〔握手出肺肝相示, 指天日涕泣, 誓生死不相背負〕”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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