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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Sep 26. 2021

백성의 풍속이 순박하고 검소하니 본받을 만하고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二十九絶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二十九絶  

  

최부(崔溥) 지음, 고광문 역주(譯註)


民風淳儉看來取 백성의 풍속이 순박 검소하니 헤아려 본받을 만하고

不必彎絃徒尙武 활시위 당기며 헛되이 무예를 숭상할 필요 없으니

絃誦東西精舍中 동서 학당에서 글 읽는 소리 끊기지 않고

元來人傑擬鄒魯 본디 뛰어난 인재는 공맹을 닮는다네


민풍순검(民風淳儉)

민풍순검(民風淳儉)은 백성의 풍속이 순박하고 검소하다는 말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백성의 풍속이 어리석고 검소하며 예절이 있다. 백성의 풍속이 어리석고 검소하며, 또 초가가 많고 빈천한 백성들은 부엌과 온돌이 없고 땅바닥에서 자고 거처한다. 〔民俗癡儉 有禮讓 民俗癡儉 且多茅屋 細民無竈突 寢處於地

땅은 척박하고 백성은 가난하다. 고려 문종(文宗) 12년에 문하성이 아뢰기를, “탐라는 땅이 척박하고 백성이 가난하여 오직 목도(木道)질로 생활을 영위한다.” 하였다. 〔地瘠民貧 高麗文宗十二年 門下省奏 耽羅地瘠民貧 惟以木道經紀謀生〕

 목도(木道)는 배를 말한다. 『주역(周易)』 「하경(下經)」 풍뢰익괘(風雷益卦) 단사(彖辭)에 “큰 내를 건너려면 배〔木道〕라야 한다.” 한 데서 온 말이다.

     

불필만현도상무(不必彎絃徒尙武)

불필만현도상무(不必彎絃徒尙武)는 ‘활시위를 당기며 헛되이 무예를 숭상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데 제주도가 변방의 섬으로 왜구 등의 침입에 대비해 방비에 힘쓰는 상황을 생각하면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최부가 제십육절(第十六絶)에서 조선조(朝鮮朝)에 들어 제주가 왕가(王家)의 덕화(德化)를 가득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음을 고려한다면 무예보다는 학문에 힘을 쓸 평화로운 시기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신석조(辛碩祖)가 쓴 관덕정(觀德亭) 기문에 제주의 활쏘기와 무예의 필요성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선취(選取)하여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 고을 제주가 비록 먼 곳에 있으나 특별히 성스러운 임금의 덕화를 입어서, 가르치고 다스려서 문(文)에 대한 일이나 무(武)에 대한 방비가 모두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안무사영(安撫使營) 남쪽에 사청(射廳) 한 구역이 있는데 사졸을 훈련하는 곳이다. (중략)

일찍이 『예기(禮記)』의 「사의편(射義篇)」을 보니, 이르기를, ‘활쏘기는 성한 덕을 보는 것이다.’ 하여, 전편에 말한 것이 성인이 활쏘기에 대하여 정성을 다한 것이 지극하였다. 천하에 일이 없으면 예의(禮義)에 쓰니, 대사(大射)와 향사(鄕射)는 용의(容儀)를 익히고 기예를 보는 것이고, 천하에 일이 있으면 싸워서 이기는 데 쓰니, 가죽을 꿰뚫는 것을 주로 하여 힘을 나타내는 것은 외적을 막아 이기는 것이어서 하루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바야흐로 성군이 있어 광휘를 거듭하고 은덕이 널리 퍼져 문교의 성함이 옛날을 초월하고, 사방이 편안하고 맑아 오병(五兵)을 시험하지 않는다. 그러나 편안한 때에 위태함을 잊지 않아서 더욱 무(武)를 닦아서 군졸을 훈련하고 병기를 가다듬어, 항상 적국이 문과 뜰 밖에 있는 것처럼 하여야 한다. 수령은 모두 통솔과 훈련의 직책을 띠고 있으니, 무기와 군사를 교련하여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것에 생각을 쓰지 않음이 없어야 할 것이다. 하물며 제주는 예전의 탐라이다. 멀리 바다 가운데 있으니, 전쟁의 대비를 더욱 엄하게 해야 할 것이다. 신후(辛侯)가, ‘이 정자를 급히 지어야 한다.’ 하였고, 또 하물며 관덕(觀德)으로 편액하였으니, 그 쓰는 것이 관혁에 있지 않고 진퇴(進退)ㆍ주선(周旋)하는 즈음에 그 덕행을 살펴서 예악으로 신칙할 뿐이니, 삼대(三代)의 활 쏘는 뜻을 얻었다 하겠다. 일이 비록 마땅한 것을 얻더라도 거행하는 것이 그 시기를 얻지 못하면 보잘것없는 것이다. 지금 무예를 훈련하는 장소를 닦지 않을 수 없는데, 풍년을 만나고 사람들은 하고자 하기 때문에 재물을 손상치 않고 백성도 해치지 않고서 전날에 없던 새 정자를 창건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게시하였다. 사람으로 하여금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여 활 쏘는 데에 뜻을 다하고 몸을 바르게 하기를 구하도록 하여, 공이 이루어지고 나라가 편안해지는 효과를 이룬다면 이 정자의 세운 것이 참으로 놀고 잔치하는 장소에 비교할 것이 아니고, 정치하는 도리에 관계되는 점이 클 것이니, 이것은 고을 사람들이 서로 경사로 여겨 기록하여 잊지 않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또 서거정(徐居正)의 관덕정(觀德亭) 중수기에서 제주의 방비(防備)가 필요함을 역설한 부분을 골라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제주는 본래 옛날의 탁라국(乇羅國)인데, 곧 우리 동방의 구한(九韓)의 하나다. 신라 때에 비로소 와서 조회하였고, 고려 초년에 와서 항복하여 나라가 없어지고 현(縣)이 되었다. 고려 말년에 기 황후(奇皇后)가 빌려 목장(牧場)을 두었는데, 명(明) 나라 때에 이르러 다시 우리나라에 예속시켰다. 제주가 바다 가운데 있어서 땅의 넓이가 거의 5백 리나 되고 사는 백성이 8, 9천 호나 되고, 기르는 말이 또한 수만 필이나 되며, 그 산물(産物)의 풍부한 것이 다른 고을의 배나 된다. 고을이 또 일본(日本)과 서로 이웃하였으니, 방비하는 방책이 실로 복잡하고 어렵다. (중략)

하물며 이 정자의 지은 것이 놀고 구경하는 것을 위하여 지은 것이 아니고 본래 무예를 훈련하기 위한 것이니, 이제부터 고을 사람들이 날마다 여기에서 활 쏘는 것을 익혀, 한갓 활쏘기만이 아니라 말 타고 활 쏘는 것도 익히고, 한갓 말 타고 활 쏘는 것만 익힐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싸우고 진 치는 것을 익혀, 왜적의 변란이 있을 때에는 세 고을의 군사를 동원하여 상산(常山)의 형세를 지어서 수군⋅육군⋅보병⋅기병이 각각 죽을힘을 내어 다투어 적의 머리를 베어 부모처자를 구출하고 그리하여 한 고을을 보존하고, 나라의 간성(干城)이 되어서 공명을 죽백(竹帛)에 세우면,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후략)

     

현송(絃誦)

현송(絃誦)은 현가(絃歌)와 같은 말로 글 읽는 소리를 뜻한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공자가 무성(武城)에 가서 현가(絃歌) 소리를 듣고는, 웃으며 말하기를, ‘닭을 잡는 데에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는가.’ 하니, 무성의 수령으로 있던 자유(子游)가 ‘전에 제가 선생님께 들었더니,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하셨습니다.’ 하였다.” 〔子之武城 聞弦歌之聲 夫子莞爾而笑 曰 割雞焉用牛刀 子游對曰 昔者偃也聞諸夫子曰 君子學道則愛人 小人學道則易使也〕라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동서정사(東西精舍)

동서정사(東西精舍)는 제주의 사학(私學)의 효시인 김녕정사(金寧精舍)와 월계정사(月溪精舍)를 말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두 정사(精舍)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월계정사(月溪精舍) 예전 명월현(明月縣)에 있다. 김녕정사(金寧精舍) 예전 금녕현(金寧縣)에 있다. 주(州)에서 월계(月溪)로 서재(西齋)를 삼고 김녕(金寧)으로 동재(東齋)를 삼아 향교의 유생을 나누어 각각 사는 데서 가까운 곳에 따라 여기에서 글을 읽게 하고, 지방 사람의 학식과 인망이 있는 사람을 택하여 학장(學長)으로 삼았다. 성안에는 또 향학당(鄕學堂)이 있다. 〔月溪精舍 在古明月縣 金寧精舍 在古金寧縣 州以月溪爲西齋 金寧爲東齋 分鄕校儒生 各以所住附近讀書于此 擇土人之有學術 物望者以爲學長 城中又有鄕學堂〕

성리학을 가르치는 정사(精舍)의 효시(嚆矢)는 주희(朱熹)가 한탁주(韓侂冑)를 피하여 무이산(武夷山)으로 들어가서 문인들과 함께 강학(講學)을 하였던 무이정사(武夷精舍)이다. 

         

추로(鄒魯)

추로(鄒魯)는 공맹(孔孟)을 가리켜 이르는 말이다. 공자(孔子)는 노(魯)나라의 사람이고, 맹자(孟子)는 추(鄒)나라의 사람이었음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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