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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Sep 29. 2021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후기(後記)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후기(後記)     


최부(崔溥) 지음, 고광문 역주(譯註)

     

부(溥)가 홍문관 부교리(弘文館副校理)가 됐을 때 어명을 받들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교정하였는데 여러 해를 보내며 강구(講究)하여 우리 海東의 여러 道, 州, 府, 郡, 縣이 있는 곳과 그 있던 자리는 이미 눈감고도 환하게 아는데 오직 제주도 하나만은 멀리 바다 가운데 서울에서 수천 리 떨어진 데 있어서 듣는 것만 가지고 글을 쓰려니 탈루(脫漏)가 아주 심해서 한번 그 땅에 직접 가보고 바로 잡아 써야겠다고 생각하였다.

丁未年(성종 18년, 1487년) 9월에 어승(御乘, 임금이 타는 말)을 골라서 바치고 목장을 살피고 숨은 장정을 헤아리고 양민과 천민을 구분하고 떠돌아다니는 백성을 없애라는 어명을 받들고 이곳에 사(使, 고려·조선 시대, 각 관아에 두었던 벼슬)가 되어 왔다. 이 해 중동(中冬, 음력 십일월) 십이일 새로 부임하는 목사(牧使) 허희(許熙) 공과 관두량(館頭梁)에서 같은 배를 타고 순풍을 만나 눈 깜짝할 동안에 조천포(朝天浦)에 정박하였다.

읍의 사람들이 그 뱃길이 몹시 빠른데 경탄(驚歎)하였다. 본주(本州)의 여러 관리가 해구(海口)까지 마중을 나왔다. 또 모두 거족(巨族)이고 물망(物望)이 있는 몇 사람이 차례로 와서 뵈었는데 예의에 어긋남이 없었다. 이어 향교(鄕校)에서 성인[聖人, 孔子像]을 뵙고, 교생(校生) 백여 명이 역시 예를 갖추어 뵈었다. 의관(衣冠)과 장물(仗物)이 번쩍번쩍 빛나는 것이 볼만하였다. 해외(海外)라고 해서 얕잡아 볼 수 없다. 객사(客舍)로 물러나 거처할 자리를 잡고 일을 처리하는 여가에 앞서 말한 여러 사람이 더러 아침저녁으로 오고 가고 해서 조용하고 적적하지 않았다.

또 칠팔일 있다가 또 허목사와 같이 각 현을 순시하였는데, 여러 관리가 역시 모두 예의를 갖추어 마중을 나왔다. 부(溥)는 이리하여 지리(地利)가 좋고 요해지(要害地)인 산천(山川), 인물과 풍속의 번성하고 화려함, 토산(土産)이며 관방(關防), 교량, 관청의 집들, 제사 지내는 사당(祠堂)들, 고적(古蹟)을 두루 보게 되어 모든 것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드디어 주(州)에서 소장(所藏)한 옛날 역사를 찾아보자 하였으나 관부(官府)에 불이 나서 타버렸다고 하였다.

부(溥)가 나름대로 생각하니, 이 땅은 옛날에 나라로 삼고 성주(星主)⋅왕자(王子)를 봉(封)한 지가 천여 년이 되는데, 지난날의 연혁(沿革)과 유적(遺跡)이 없어져서 들어볼 수 없으니 한스러울 뿐이다. 야사(野史)를 찾아보고 부로(父老)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보고 들은 것을 추려서 판단할 따름이다. 이런 뜻을 나타내어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을 엮어 지어 합쳐서 한 편(篇)을 만들어 뒤끝에 붙인다. 고을 사람들에게 깨끗이 베껴 써서 책을 만들게 하니 이 읍(邑)에 보관하도록 함으로써 장래에 참고가 될 문헌(文獻)으로 삼고자 한다. 

성화(成化) 이십삼 년(1487) 정미(丁未) 12월 일 경차관(敬差官) 최부(崔溥) 씀

     

溥, 嘗爲弘文館副校理時, 承命校讎, 東國輿地勝覽, 幾閱歲講究, 我海東諸道州府郡縣之地之跡, 已瞭然心目, 唯濟州一島, 邈在海中, 距京都數千里, 撰以所聞脫漏尤甚, 思欲一致身於其地, 以質正焉。歲丁未九月, 奉命以採御乘, 監牧塲括隱丁, 辨良賤, 刷流移人口, 來使于此。是年仲冬十有二日, 與新牧伯, 許公熙, 同舟于館頭梁, 遇便風, 瞥眼間到泊朝天浦。邑人, 歎其舟行甚駛也。本州諸官, 偕迎于海口, 又州人若干, 皆巨族有物望者, 以次來謁, 禮莫愆, 因謁聖于鄕校, 校生百餘輩, 亦以禮謁之。衣冠文物, 粲然可觀, 不可以海外少之。退舍所館治事之暇, 已前諸人等, 或晨昏往來, 以破幽寂, 居七八日, 又同許牧伯, 巡各縣, 諸官亦皆具禮以迎, 溥, 於是周觀山川形勝之襟帶, 人物風俗之繁華, 土産關防橋梁館宇祠祀古蹟, 靡不詳悉, 遂欲效州藏舊乘, 則爲官府失火所焚。溥竊念, 此地舊爲國封, 星主王子以來, 千有餘載, 已往沿革遺迹, 泯沒無聞, 良可恨已。因窮搜野史, 質諸父老, 兼採所觀聞, 斷以己意, 表爲此編, 製耽羅詩三十五絶, 合爲一篇, 附於後。令州人繕寫成帙, 藏之本邑, 以爲後日文獻所徵,

成化二十三年丁未十二月 日

敬差官 崔溥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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