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머무는 정원의 온도
전주 서학동 골목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돌담 너머로 담쟁이가 물든 건물들이 보인다. 그 길의 끝자락에 자리한 서학 예술마을 도서관은, 겉으로 보면 마치 오래된 화실이나 작은 갤러리 같다. 그러나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면 겉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을 볼 수 있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200년 된 팽나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거대한 나무는 이곳의 중심처럼 서있고 가지마다 켜켜이 시간이 쌓여 있었다.
나는 나무 아래 놓인 밴치에 잠시 앉았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고 창문 안 도서관이 보이는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도서관이면서도 예술을 매개로 한 마을의 정원 같았다.
도시의 도서관이 조용히 공부하는 공간이라면 이곳은 살아있는 예술을 함께 체험하는 장소였던 것 같다.
'담쟁이동' 이라고 불리우는 건물로 들어섰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벽을 타고 오른 초록빛 담쟁이와 곳곳에 걸린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서가마다 놓인 아트북과 전시 도록, 그리고 손때 묻은 화집들.
어디선가 물감 냄새가 나는 듯한 공기가 유난히 따뜻했다.
예술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단지 주제 때문이 아니라 공간 전체가 예술로 짜여 있는 모습이었다.
'팽나무동'에는 그림책과 팝업북, 그리고 체험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팝업북을 설명하시던 해설가 선생님께서는, 팝업북을 만드는 사람을 아티스트라고 하지 않고 엔지니어라고 한다고 하셨다. 기술적인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을 때, 엔지니어는 기계나 개발 쪽에서만 들을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곳에 있다면 시간이 느리게 흐를 것만 같았다. 혼자 오더라도 창밖의 정원과 햇살을 누린다면 심심할 겨를도 없을 듯하다.
이곳에서는 권진아 작가님의 북토크가 열렸다. 도서관의 행사라기보다는 워케이션 도서관 투어에서 마련해준 자리이다. 여기서 들은 내용은 추후 풀어놓는 시간이 있을 것 같다.
서학 예술마을 도서관은 전주의 다른 명소들처럼 사진찍기 좋은 곳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장소에서 책을 읽으며 쉴 수 있고 전시실에서 전시도 감상할 수 있는 다목적 도서관이다. 한옥마을의 북적임과 다르게 조용히 예술의 온도가 스며드는 장소이다.
투어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나는 전주 예술마을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곱씹어보았다. 처음엔 예술가들을 위한 마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예술을 삶 속으로 끌어들이는 마을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예술이 머무는 곳엔 언제나 사람이 있고, 사람이 머무는 곳엔 이야기가 자라는 곳. 이 장소가 바로 서학 예술마을 도서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