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서 만난 작은 시집 도서관
전주 평화동, 맏내 호수 근처의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아담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와 유리창이 어우러진 구조물이 숲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곳이 바로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을 마주하기 전 호수길을 따라 들어가는데 도서관 해설사 선생님께서 호수를 가르키며,
"사진 스팟입니다. 얼른 찍으세요! 사진을 찍어보면 알아요." 라고 하셨다.
어리둥절한 채 호수 사진을 찍으니 하늘이 그대로 호수에 비추었다.
"하늘이 그대로 호수에 비춰져요. 참 예쁘게 나오죠?"
앞서 소개했던 아중호수도서관도 호숫가에 위치했고 학산숲속시집도서관도 호수 옆 등산로에 지어졌다. 그리고 나중에 소개할 연화정 도서관 또한 연꽃이 가득 피는 호수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물과 산의 조화 속 지어진 도서관들이 참 예뻐보인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보통 대여를 전제로 생각하지만 이곳은 조금 다르다. 책은 오직 관내에서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빌려 나올 수는 없다. 대신 숲의 향기와 새소리, 창밖의 호수 풍경이 한 권의 시집을 곁들이기에 더없이 좋은 배경이 된다.
사진에 보이는 "시집" 이라는 글씨체에는 의미가 있다. "시집"을 뒤집어 보면 나뭇가지가 하늘로 뻗어나가는 형상이다. 주변 나무들의 형세에 맞춰 글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디자인 하나하나에 많이 신경을 쓴 태가 느껴졌다.
안으로 들어서면 흔히 보는 다양한 장르의 책이 아닌 오직 시집으로만 가득 꽂힌 서가가 맞이한다. 약 1,800권에서 3,000권에 이르는 국내외 시집들, 그리고 시화집까지. 언어도 다양하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심지어 우즈베키스탄어 시집까지 만날볼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건 서가의 분류 방식이었다.
- '만나다' 에는 대표 시인들의 작품
- '다르다' 에는 외국 시집
- '고르다' 에는 출판사별 선집
- '반하다' 에는 사랑과 이별, 인생을 주제로 한 책
- '선하다' 에는 시화집과 가족용 책
마치 시집이 가진 색깔과 결을 따라 작은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뉜 듯한 풍경이었다.
도서관 내부는 입구를 기점으로 아래 공간, 윗 공간으로 구분되었다. 아래 공간으로 내려가는 계단, 윗 공간의 작은 다락방, 창가에 놓인 테이블 등 어느 곳이든 앉아 시집을 펼칠 수 있다. 가끔은 마련된 색연필과 메모지를 꺼내 시구를 베껴 적거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시와 사색을 곁들이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문학 자판기다. 주제 단어를 누르면 그에 맞는 시구절이 인쇄되어 나온다. 작은 종이에 적힌 몇 줄의 시는 기념품이자, 잠시 마음을 붙이는 책갈피가 된다.
이곳은 도서관이면서 동시에 문화 공간이다. 시인과의 만남, 숲속 낭독 공연, 계절마다 열리는 프로그램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매달 한 편의 시를 추천하며 도서관의 분위기와 엮어내는 서비스도 진행된다.
그러나 굳이 행사가 없더라도 이곳의 매력은 충분하다. 창문 너머로 비치는 호수와 숲, 그 안에서 시집을 한 장 한 장 읽어내려가는 순간은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다.
도서관 해설사 선생님께서 잠시 자유시간을 주시는 동안 시집을 몇 권 꺼내 읽었다. 여러 문학 중 거의 손을 대지 않는 장르였지만, 오랜만에 읽어보니 짧은 구절에 묵직한 여운이 남았다.
나처럼 시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이곳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빌려가는 대신에 그 자리에서 시와 숲을 함께 즐기고 나오는 경험이 남기 때문이다.
잠시 머물다 돌아서는 길, 종이에 적힌 시 한 구절이 주머니 속에 남아있다. 숲의 향기와 함께 가져온 그 문장이 여행 이후에도 오래 마음에 남는 기억으로 이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