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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작은집 창가에: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숲속에서 만난 작은 시집 도서관

by 김이름

전주 평화동, 맏내 호수 근처의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아담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와 유리창이 어우러진 구조물이 숲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곳이 바로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이다.


KakaoTalk_20251001_182155844_04.jpg 나무들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도서관 건물. 자연과 어우러지도록 외벽이 나무이다.


이 도서관을 마주하기 전 호수길을 따라 들어가는데 도서관 해설사 선생님께서 호수를 가르키며,

"사진 스팟입니다. 얼른 찍으세요! 사진을 찍어보면 알아요." 라고 하셨다.

어리둥절한 채 호수 사진을 찍으니 하늘이 그대로 호수에 비추었다.


"하늘이 그대로 호수에 비춰져요. 참 예쁘게 나오죠?"


KakaoTalk_20251001_182155844_01.jpg 구름이 담긴 호수



앞서 소개했던 아중호수도서관도 호숫가에 위치했고 학산숲속시집도서관도 호수 옆 등산로에 지어졌다. 그리고 나중에 소개할 연화정 도서관 또한 연꽃이 가득 피는 호수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물과 산의 조화 속 지어진 도서관들이 참 예뻐보인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보통 대여를 전제로 생각하지만 이곳은 조금 다르다. 책은 오직 관내에서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빌려 나올 수는 없다. 대신 숲의 향기와 새소리, 창밖의 호수 풍경이 한 권의 시집을 곁들이기에 더없이 좋은 배경이 된다.



KakaoTalk_20251001_182155844_18.jpg 도서관 입구



사진에 보이는 "시집" 이라는 글씨체에는 의미가 있다. "시집"을 뒤집어 보면 나뭇가지가 하늘로 뻗어나가는 형상이다. 주변 나무들의 형세에 맞춰 글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디자인 하나하나에 많이 신경을 쓴 태가 느껴졌다.


안으로 들어서면 흔히 보는 다양한 장르의 책이 아닌 오직 시집으로만 가득 꽂힌 서가가 맞이한다. 약 1,800권에서 3,000권에 이르는 국내외 시집들, 그리고 시화집까지. 언어도 다양하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심지어 우즈베키스탄어 시집까지 만날볼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건 서가의 분류 방식이었다.

- '만나다' 에는 대표 시인들의 작품

- '다르다' 에는 외국 시집

- '고르다' 에는 출판사별 선집

- '반하다' 에는 사랑과 이별, 인생을 주제로 한 책

- '선하다' 에는 시화집과 가족용 책


마치 시집이 가진 색깔과 결을 따라 작은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뉜 듯한 풍경이었다.


KakaoTalk_20251001_182155844_08.jpg 무지개같은 '고르다' 서가



도서관 내부는 입구를 기점으로 아래 공간, 윗 공간으로 구분되었다. 아래 공간으로 내려가는 계단, 윗 공간의 작은 다락방, 창가에 놓인 테이블 등 어느 곳이든 앉아 시집을 펼칠 수 있다. 가끔은 마련된 색연필과 메모지를 꺼내 시구를 베껴 적거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시와 사색을 곁들이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문학 자판기다. 주제 단어를 누르면 그에 맞는 시구절이 인쇄되어 나온다. 작은 종이에 적힌 몇 줄의 시는 기념품이자, 잠시 마음을 붙이는 책갈피가 된다.



KakaoTalk_20251001_182155844_10.jpg 문학자판기 뽑기 결과



이곳은 도서관이면서 동시에 문화 공간이다. 시인과의 만남, 숲속 낭독 공연, 계절마다 열리는 프로그램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매달 한 편의 시를 추천하며 도서관의 분위기와 엮어내는 서비스도 진행된다.

그러나 굳이 행사가 없더라도 이곳의 매력은 충분하다. 창문 너머로 비치는 호수와 숲, 그 안에서 시집을 한 장 한 장 읽어내려가는 순간은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다.



도서관 해설사 선생님께서 잠시 자유시간을 주시는 동안 시집을 몇 권 꺼내 읽었다. 여러 문학 중 거의 손을 대지 않는 장르였지만, 오랜만에 읽어보니 짧은 구절에 묵직한 여운이 남았다.

나처럼 시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이곳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빌려가는 대신에 그 자리에서 시와 숲을 함께 즐기고 나오는 경험이 남기 때문이다.


잠시 머물다 돌아서는 길, 종이에 적힌 시 한 구절이 주머니 속에 남아있다. 숲의 향기와 함께 가져온 그 문장이 여행 이후에도 오래 마음에 남는 기억으로 이어질 것 같다.




KakaoTalk_20251001_182155844_20.jpg 시도 읽고 물멍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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