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위에 놓인 작은 문화의 섬
전주는 오래전부터 "책 읽는 도시"를 표방해 왔다. 그 안에서 새로이 문을 연 아중호수도서관은 단순한 책 대여 공간이나 조용히 공부하는 공간을 넘어, 호수를 마주한 창 너머로 삶의 여백을 응시하게 되는 복합 문화의 플랫폼처럼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 아중호수도서관을 찾아가는 길, 호수라고 한다면 멀리서부터 인식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호수의 윤곽조차 보이지 않았다. 걷다보니 눈 앞에 돌계단이 펼쳐졌다. 이 계단을 오르면 좀 보이려나? 생각하며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 맨 위로 오르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진 파란 하늘과 호수가 반겼다. 그 옆으로는 호수 데크길이 있었고 그 길을 눈으로 좇아 따라가보면 곡선형의 외관과 통유리창 외관을 선보이는 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 긴긴 데크를 따라 걷지 않더라도 도서관 입구로 들어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은 있었다. 하지만 물이 찰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데크를 걷는 것도 꽤나 낭만있게 느껴졌다. 당시 한 낮 30도를 웃돌았지만 계속해서 액션캠을 돌리고 사진을 연신 찍어내며 도서관을 향하여 걸어갔다.
아중호수도서관은 개관한 지 얼마 안 된 도서관이라고 한다. 2025년 6월 준공하여 개관하였으니, 내가 방문했던 때는 9월 초였기에 3개월도 되지 않은 새 도서관이었다. 하지만 이미 입소문을 탄듯, 전주하면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 중 하나인 장소로 벌써 자리매김한 듯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전주 워케이션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에서는 아중호수도서관은 방문 목록엔 없었지만 전주에 들르게 된다면, 토요일 하루쯤 시간을 내어 "전주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을 듯 하다.
아중호수도서관은 해설사 선생님 없이 혼자 간 거라서 조금 아쉬웠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아중호수도서관을 둘러볼 기회가 생긴다면,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 아래 좀 더 재미있는 투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은 8월 2일부터 11월 1일까지 매주 토요일 3회 운영한다는데, 꼭 토요일에 전주에 갈 일이 있다면 이 아중호수도서관이 포함된 코스에 참여해보고 싶다.
데크를 걷고 걷고 걷다보니 드디어 아중호수도서관 앞까지 도달했다. 이 도서관은 특히 야경이 매우 멋지다고 한다. 평일에 온다면 21시까지 운영하기 때문에(동절기인 11월부터 2월까지는 19시) 밤의 호수와 도서관 야경을 볼 수 있겠지만, 주로 주말에 오는 여행객들은 저녁 6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니 늦은 밤 도서관 안에서 야경은 보기 어렵겠다. 하지만 곧 겨울이니까, 해가 일찍 지니까 5시쯤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는 것도 꽤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동문 버튼을 누르니 시원한 공기가 쏟아져나오면서 땀을 한 숨 식혔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광경은 너무나도 놀라웠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눈 앞에 보이는 공간이 크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층고가 높아서 한참이나 바라봐야 했다. 그리고 걸어들어가다보니 보이지 않던 공간이 드러나면서 처음 느꼈던 공간의 느낌보다 조금 더 넓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 빈백에 앉아 통창을 통하여 호수의 파노라마 뷰를 바라보았다. 산과 나무, 호수가 초록빛, 파란빛 어우러지면서 자연의 여유를 곁들여주었다.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나무와 유리가 어우러진 따뜻한 베이지 톤의 인테리어, 자연광이 쏟아지는 유리창, 빈백과 계단형 열람석 등 다양한 좌석 배치가 있었고, 테이블과 의자가 통창 앞에 곳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자리도 널찍하여 옆 사람의 시야에 방해가 되지도 않았고, 처음 조용하고 차분한 공간에 들어왔을 때의 어색함도 이러한 편안함으로 인하여 옅어져갔다.
음악 특화 서비스는 이 도서관의 또 다른 얼굴이다. 고품질 음향 장비와 청음 공간이 또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내가 들어온 입구의 반대편 입구로 들어온다면 바로 청음 공간이 보였을텐데, 나는 책 읽는 공간에 놀라고 청음 공간에 다시 한번 더 감탄했다. 이 청음 공간에서 LP 음반 자료를 직접 골라서 감상할 수 있었다.
각 자리에 턴테이블이 있었는데 몇 좌석이 되는지는 살펴보지 못했다. 대략 6개에서 8개 좌석이 마련된 듯하다. 턴테이블은 처음 조작해보는거라 조심스러웠는데 듣고자 하는 LP판을 골라오면 직원이 상세하게 사용법을 알려주어서 금방 적응하였다.
내가 알고있는 공공도서관의 역할 이상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연결'이었다. 호수 산책로, 야경, 주변 관광지와의 접근성 등은 단순한 독서 공간을 넘어 여행과 체험의 연계 지점이 된다. 버스 정류소에서 내려서 걸어오는 동안 음식점이나 카페 등은 많이 발견하지 못하였다. 본격 워케이션 프로그램 시작 전에 잠시 들르고자 했던 터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만, 다시 한번 방문하게 된다면 주변 맛집과 카페 등을 찾아보고 싶다.
책장에서 책 한 권만 들고 와도 좋고 LP가 아니더라도 도서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좋다. 선선한 날에는 흐르는 물빛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봐도 좋을 것 같다. 내가 느끼는 아중호수도서관은 도시 속 쉼표이며 지친 숨을 가다듬는 틈새이다.
이 도서관을 시작으로 전주의 도서관과의 첫 만남과 그 풍경, 프로그램 그리고 내가 마주한 변화들을 차례로 펼쳐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