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행자들의 쉼터: 다가여행자도서관

머물다 가는 시간

by 김이름

전주 도서관 투어 둘째 날이 밝았다. 워케이션 도서관 여행 안내에 따르면, 오전 시간에는 개인 업무를 하고 점심 시간이 지나고 도서관 투어가 시작된다. 전주까지 왔는데 일을 하기에는 둘러 보고 싶은 도서관이 많아서 업무는 잠시 미루어두고 전주에 있는 독립 서점을 돌아다녔다.


여름이 가시지 않은 가을,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니다 조금은 지친 늦은 오전이었다. 한옥마을을 지나며 이어진 골목 끝에서 다가 여행자 도서관을 찾았다. "다가오면, 머물다가, 노을다가" ㅡ 각 도서관 층마다 붙은 이름들이 마치 여행의 리듬 같았다. 처음에는 그저 잠시 앉아 쉴 곳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문을 열자마자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마루에 앉아 바라본 공간



1층에는 세계 곳곳의 여행 책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도시들의 이름이 책등마다 반짝였다. 손끝으로 책 한 권을 꺼내 들자 묘하게 익숙한 종이 냄새와 함께 바람이 스쳤다.

전주에서는 내가 여행자네, 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누군가의 발자국이 남긴 기록을 눈으로 훑으며 나도 내 여행의 한 조각을 적어보고 싶었다.


지하로 내려가니 '다가독방'이 있었다. 작은 다락방 같은 공간이었는데 어떤 분이 공간을 사용하고 계셨다. 고요 속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잠시 다른 층을 들렀다가 다시 오니 비어있었고, 잠시 그 곳에 앉아 벽에 기대있으니 그 동안의 여행이 느릿하게 되감기듯 흘러갔다. 아침의 복잡한 일정도, 밤새 켜두고 잔 숙소의 텔레비전 소음도 이 곳에서는 멀게 느껴졌다.


내가 쉬어간 자리



2층의 '머물다가'에서는 LP가 돌아가며 음악을 흘러내고 있었다. 오래된 바늘이 닿을 때 슥 하는 소리, 그리고 잔잔하게 깔리는 재즈, 그 선율에 맞춰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은 부드러웠다. 나 역시 그 사람들 틈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의 호사를 누렸다.


마지막으로 올라간 옥상 '노을다가'는 햇살이 가득한 루프탑이었다. 낡은 건물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생각보다 상쾌했다. 멀리 한옥의 지붕들이 겹겹이 이어지고, 그 위로 하늘이 탁 트여 있었다. 그 순간 여행이란 결국 또 다른 방법의 머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떠남과 머무름의 사이, 나는 잠시 멈춰 쉬어갔다.


다가 여행자 도서관은 단지 책을 읽는 공간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여행의 결을 느꼈으며, 책 속의 현실과 거리 사이 그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며 나를 쉬어가게 했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4화숲속 작은집 창가에: 학산숲속시집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