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속에서 책을 읽다
전주 한옥마을 골목을 천천히 걷다 보면, 기와지붕 사이로 나지막이 고요한 공간이 나타난다. 소란스러운 관광객의 발소리와 셀카 셔터음이 잦아들 때쯤, 그곳에 전주 한옥마을 도서관이라는 조용한 이정표가 보인다. 여행자 도서관 시리즈(첫마중길, 다가, 한옥마을)의 세 번째 공간이라지만, 관광객들 사이에서 진땀을 뺀 나에게는 오히려 숨은 쉼터에 가까웠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옥 특유의 나무 냄새가 났다. 차분한 공기 속에 발소리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모래 밟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먼저 들어간 곳은 '마음곳간'이라는 공간이었다. 커다란 대청마루 위에 햇살이 고요히 스며들고, 창호 사이로 살랑이는 볕 물결을 느끼며 살짝 책장을 넘기다가 지친 마음에 잠시 눈을 감았다. 여행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가 이렇게 온전한 휴식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글을 쓰는 이 시기는 긴 팔을 꺼내 입고 외투를 걸쳐야 하지만, 당시에는 강렬한 햇빛을 맞아가며 이동했던지라 이런 쉼이 너무 좋았다. 한번 눈을 감으니 읽으려고 꺼냈던 책은 더 보지 못하고 그대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열었다.
바깥은 분명 한복 대여점에서 빌린 옷을 입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소란스러운데, 이 소란은 문 밖에 두고, 이 한옥마을 도서관 안에서는 작은 소리들이 유난히 또렷했다. 한 공간에 서너 명이 있었는데, 책장을 넘기는 소리, 나무문이 바람에 살짝 움직이는 소리, 누군가가 숨 고르는 소리까지. 그런데 그 모든 소리가 서로 겹쳐도 불편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조용함이 자연스러웠고, 그 조용함이 오히려 사람의 존재를 또렷하게 느끼게 했다.
도서관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공간마다 이야기가 있었고, 그 사이에는 따뜻한 온도가 흐르고 있었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문득, 이런 게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서 돌아보는 것 말이다.
시간이 멈춘 듯하지만 어느 새 다음 일정을 위해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 다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옥마을의 중심에 자리잡은 도서관이지만, 이곳은 세상의 속도를 잠시 멈추게 한다.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아무 이유 없이 머물러도 좋은 곳. 전주 한옥마을 도서관은 그런 공간이었다.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고, 몇 분만 앉아 있어도 충분했다. 그 잠깐의 머무름이 마음을 조금은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곳. 그게 내가 한옥마을에서 얻은 선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