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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과 풍경의 어우러짐: 연화정 도서관

연화정 도서관에서 머문 고요의 시간

by 김이름

전주에서 며칠 동안 나는 도시가 가진 다양한 얼굴을 보았다. 시청 속 현대적인 책기둥 도서관을 지나 이번엔 물 위에 떠 있는 한옥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덕진 공원의 연꽃들이 잠들기 시작한 계절이었지만, 그 위에 놓인 연화정 도서관은 계절과 상관없이 잔잔한 숨을 품고 있었다.


공원이 한창 공사중이었지만 아직 날씨가 더운 탓인지 포크레인 한 대만이 연신 땅을 파고 있었다. 연못 한가운데 놓인 길을 따라 걸어가다보니 이 소리는 서서히 뒤로 멀어졌다. 바람에 물결이 살짝 흔들리는 소리, 걷는 발밑에서 나는 마찰음, 서서히 들리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웃음 등 모든 소리가 차분하게 섞여 들어왔다. 연못 한가운데로 들어갈수록 여러 소리들이 자연스레 모여드는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KakaoTalk_20251026_173634928.jpg 공사중인 공원길이 끝나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초입



생각보다 도서관으로 들어서는 길은 길었다. 날씨가 좀 더 시원했다면 짧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만, 노트북이 든 백팩을 들고 그늘 없는 길을 걷기에는 약간 힘이 들었다. 하지만 살짝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식혀줄 때마다 이 맛에 걷는다며 도서관을 향해 나아갔다.


연희정 도서관은 그 자체가 하나의 풍경이었다. 전통 기와 지붕 아래, 목재의 온기가 살아있는 한옥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졌다. 전주 한옥마을 도서관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전주의 여러 도서관에서 느낀 것이지만, 단순히 '예쁜 도서관'에 머물지 않으려는 의지가 보였다. 이런 방향성은 이용객들의 행동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누군가는 책을 꺼내 읽었고 누군가는 창가 쪽으로 이동해서 창밖을 응시했다. 또 다른 사람은 아예 책을 고르지 않고 마루에 앉아 그늘에서 쉬었다. 전주의 여정 중 연화정 도서관에서 제일 많이 지쳐있었기에 나도 바깥 그늘에서 도서관의 풍경과 연못의 풍경을 번갈아보면서 쉼을 맛보았다.


KakaoTalk_20251026_173634928_02.jpg 여기가 사진 스팟인 듯했던 연화정 도서관


웹사이트나 홍보 포스터, 블로그 등에서는 연꽃을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가 많이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책보다 풍경이 우선권을 가진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독서 기능을 포함한 수변 휴식 플랫폼에 가까웠다. 그것이야말로 이 공간의 정체성일지도.


이용자들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책이 많은 자리보다는 책이 없는 자리였다. 대부분 창가 누각에 앉아 있었다. 그렇다고 책이 소외된 것도 아니다. 책들은 이곳을 지나가는 사용자에게 필요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으면서도 찾아오는 이에게 적절이 손을 내민다.


책과 풍경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도서관. 공공시설이지만 일상에서 벗어난 체험이 가능하다고 느꼈던 도서관이었다.


KakaoTalk_20251026_173634928_03.jpg 한옥 자체가 치트키인듯 어느 각도로 봐도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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