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사이에 숨겨진 환대의 기술
도서관은 언제나 일상의 배경처럼 존재했다. 가까이 있지만 자주 가지는 않는 공간, 필요하면 언제든지 갈 수 있으리라 믿으며 뒤로 미루어두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곳. 하지만 전주에서 보낸 며칠 동안 나는 그 당연함이 얼마나 안일한 마음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낯선 도시에서 도서관을 찾아다니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여행지에서는 자연스럽게 맛집과 명소가 우선 순위가 되기 마련인데, 도서관을 보기 위해 도시를 여행하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도 놀랄 만큼 새로운 시도였다. 호수 위를 떠다니는 듯한 아중호수도서관, 사라져가는 헌책방의 기억을 품은 동문헌책도서관, 숲의 생명력을 그대로 끌어안은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여행자를 위한 의자가 마련된 다가여행자도서관, 예술이 일상처럼 걸려 있는 서학예술마을도서관, 관광객 틈에서 조용한 숨을 허락하던 한옥마을도서관, 시청과 한 몸처럼 숨쉬는 책기둥 도서관, 연꽃과 물빛을 닮은 연화정 도서관, 그리고 전주 공공도서관의 중심을 품은 꽃심까지. 같은 도시 안에 이렇게 다양한 얼굴의 도서관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더 신기한 것은 그 다양한 공간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온기였다. 책을 읽는 사람, 잠시 쉬어가는 사람, 일상을 잠깐 멈추고 마음을 가다듬는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이유로 모여 있지만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며 조용히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점. 그건 어떤 건축적 특징이나 인테리어보다도 도서관의 본질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전주는 '책 읽는 도시'를 오래전부터 표방해왔다고 한다. 그 문장을 단순한 슬로건으로 여겼던 나는, 직접 발로 걸으며 그 의미를 체감했다. 도시가 도서관을 품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이 도시를 품고 있었다. 도서관이란 결국 책장을 가득 채운 공간이 아니라, 타지에서조차 나를 편안하게 앉게 해주는 마음의 질감이었다. 나는 그동안 도서관을 어렵고 차가운 곳으로 기억해왔다. 그런데 전주의 도서관들은 그 기억을 천천히 덧칠해주었다. 책이 있고, 사람이 있고, 숨소리가 있고, 조금 덜 완벽해도 충분히 괜찮은 공간이 바로 도서관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KTX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여행을 떠나기 전과 같아 보였지만 마음은 분명 조금 달라져 있었다. 앞으로 새로운 도시를 여행할 때면 가장 먼저 도서관의 위치를 확인하게 될 것이고, 일상 속에서도 나만의 속도로 들를 수 있는 가까운 도서관을 더 자주 찾게 될 것이다.
전주의 도서관 여행은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시작했지만 결국 나라는 사람의 삶에 습관을 하나 남기고 끝났다. 책을 읽는 도시 전주, 그 공간의 온도를 잊지 않겠다. 도서관이 주는 환대와 여백이 내 일상에서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 긴 여정을 여기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