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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솟아나는 장소: 동문헌책도서관

헌책이 살아 숨 쉬는 공간

by 김이름

전주 도서관 여행의 첫 번째 방문 도서관, 전주의 또 다른 기억을 품을 길에 위치한 동문헌책도서관에 들어섰다. 1970~80년대 이곳은 책방골목이라 불렸으며, 지식과 낭만이 모여드는 거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수십 개의 헌책방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이렇게 사라져가는 이 거리의 숨결을 잇고자 2022년 12월 1일, 동문헌책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KakaoTalk_20250924_202005175_02.jpg 동문헌책도서관 입구 쪽 전경



이 도서관은 전주시 완산구 동문길 51, 오래된 건축물을 리모델링해서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꾸며졌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4,000~4,500권의 헌책과 기증도서가 꽉 들어찬 서가 속에는 세월의 깊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공간을 둘러보니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 보여주는 문화 플랫폼이다.


1층은 '찬란한 기억'의 공간이다. 기증자의 이름과 함께 놓인 책들을 그 자체로 하나의 전시품이다. 문재인 대통령, 영화감독 이창동, 축구선수 박지성 등 시대의 명사들이 직접 기증한 책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은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감흥을 준다.


2층은 '발견의 기쁨'의 공간이다.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누며, 책방 골목이 살아 있던 시절의 따뜻한 교류를 떠올리게 한다.


지하 1층은 '추억 책방'으로 꾸며졌다. 만화방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 오래된 만화책과 DVD, 보드게임이 놓여 있어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다. 어린 시절 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내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저절로 미소가 번질 법한 공간이다.




KakaoTalk_20250924_202005175_08.jpg 지하 1층 입구에서 맞이하는 추억의 물품




동문헌책도서관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절판된 책, 과거 금서, 시대별 베스트셀러 같은 장서들은 책이 품고 있는 역사성을 일깨운다. 도서관 입구에 높인 '책 보물찾기지도'는 방문자가 잊고 있던 책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는 곧 개인의 기억과 도시의 기억이 맞닿는 기분이 든다.



이곳은 주민뿐 아니라 여행객에게도 열려 있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특별한 체험 프로그램이나 북콘서트도 종종 열린다. 위치도 한옥마을과 가깝기 때문에 전주 여행길에 잠시 들러 책과 시간을 함께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KakaoTalk_20250924_202005175_12.jpg 옛날 서점에서 나누어주던 책갈피



동문헌책도서관은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다. 전주의 책방골목이 남긴 문화적 자산을 이어가고 헌책이 가진 가치를 재조명하며,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여행객에게는 새로운 문화 명소로, 지역민에게는 추억의 거점으로 자리 잡은 이곳은 책의 도시 전주를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전주에 (예전의 나처럼) 한옥마을이나 떡갈비, 비빔밥만 생각하고 도착했다면, 여정의 한 페이지를 놓친 것일지 모른다. 동문헌책도서관은 책이 주는 아늑한 쉼과 오래된 기억의 향취로 전주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창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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