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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찾는 익숙한 공간, 도서관

전주 도서관의 충격적인 실태를 낱낱히 밝히고자 합니다.

by 김이름

내가 도서관에 발을 들인 건 중학생 무렵이었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던 교육청 소속 도서관. 시험 기간이 아니면 찾아갈 일도 없던 곳이었다. 고요하다기보다는 정적에 가까운 차가운 느낌, 책장을 넘기는 사각거림, 문이 열릴 때마다 스치는 낯선 시선과 몇몇의 미어캣들. 그 모든 것이 낯설고 부담스러워 곧장 발걸음을 독서실로 돌리곤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공부량이 늘면서 밥까지 해결할 수 있는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여전히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어색했다. 답답하다고 바깥 공기를 쐬러 나오기 일쑤였고 친구들과 대학 도서관에 가보기도 했지만 결국 마음은 독서실에 붙잡혔다. 내게 도서관은 학창 시절 내내 익숙해질 수 없는 공간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첫 직장을 다니던 시절까지도 책은 삶에서 멀리 있었다. 자취방에는 읽을 만한 책 한 권조차 없었다. 그러다 두 번째 직장에서야 비로소 독서가 습관이 되었다. 출근이 두려운 만큼 힘들었던 시기, 책은 나의 피난처였다. 정체 모를 우울을 파고들 듯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어떤 문장은 내 마음을 울리기도 했고 어떤 책은 다음 장을 넘기기엔 너무 벅차 책을 덮어야만 했다. 그 벅참을 다시 느끼고 싶어 폭식하듯 읽어댔다. 우울을 잠으로 회피하듯 책으로도 회피하곤 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지역 서점을 기웃거렸다. 그렇게 따지면 내 독서 습관은 아직 고작 5년 남짓에 불과하다.


구매한 책은 점점 쌓여만 가고 메모장에는 '도서관에서 빌려볼 책' 이라는 목록을 만들어 책을 누적시켜갔다. 그러나 정작 집 근처 도서관은 잘 찾지 않았다. 앉아서 읽다보면 눕고 싶고, 누워서 읽다보면 자고 싶고. 뭐 이런 이유로 결국 집에 작은 소파를 들이고 그 곳에서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전주에서 워케이션 도서관 여행을 운영한다는데. 너 가보고 좋으면 나도 다음에 갈래."


살펴보니 오전에는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오후에는 도서관 투어와 강연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2박 3일 조식 포함 숙소와 서점에서 책을 구매할 때 할인 받을 수 있는 쿠폰까지 포함된 이 조건은 꽤나 괜찮아 보였다. 사실 도서관에 큰 기대는 없었고, 전주 간 김에 한옥마을이나 둘러보고 카페에 가야지, 쿠폰으로 책이나 더 사 와야지 하는 정도의 마음이었다.


KakaoTalk_20250908_180539535_03.jpg 전주 워케이션 도서관 여행 팜플릿



그러다 출발 전날,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전주 아중호수도서관 영상을 보고 도서관이 생각보다 예뻐서 저기는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잠에 들었다.


숙소 체크인 시간까지는 꽤 시간이 남아 전날 다짐했던 아중호수도서관에 방문했고, 나는 도서관 외부/내부를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이게 도서관이라고?"


충격에 가까운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런 도서관이라면 매일 오고 싶을 것 같았다. 그런데 워케이션 일정에는 이 도서관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게 말이 되나? 그렇다면 일정에 포함된 도서관은 대체 얼마나 인상적인거야? 기대가 차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전주 워케이션 투어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뚜벅이가 갈 수 있는 모든 도서관 루트를 그리고 틈틈이 서점 방문도 넣었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책을 펼쳐 읽었을텐데, 곧 떠날 몽골 여행 준비 때문에 몽골 여행 서적 몇 권 꺼내보고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숙소는 신라스테이였다. 방을 배정받아 잠시 숨을 고르고 로비에 모여든 참가자들과 함께 귀여운 빨간 버스를 타고 투어를 시작했다. 해설사 선생님의 유익한 설명 덕에 지루할 틈이 없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중호수도서관부터 전주시립도서관 꽃심까지, 2박 3일동안 총 아홉 곳의 도서관을 다녀왔다. 혼자 방문한 곳은 자료를 직접 찾아 정리하고 해설사 선생님과 동행한 도서관은 들은 이야기도 빼곡히 기록하고자 한다.


전주 워케이션 도서관 여행은 나의 도서관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거나 시험 공부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과 어우러지고 삶을 품어내는 공간이라는 것을, 전주 도서관들을 통해 깨달았다.


어쩌면 이 글은 도서관을 다시 바라보게 된 나의 작은 변화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KakaoTalk_20250908_180516348.jpg 도서관 투어를 도와준 귀여운 빨간 셔틀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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