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오래된 이별에 관하여
엊저녁 널어두고 깜빡했던 빨래를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고서야 떠올린다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보니
이미 축축히 젖어버린 셔츠와 청바지가
퍽이나 초라했다
물을 뚝뚝 흘리는 낡은 옷들을
바구니에 대충 구겨 담는다
빨래를 다시 할 걱정보다는
이 놈의 건망증이 걱정이야
캄캄한 복도를 지나는 발걸음이 무겁다
무엇이든 잊는 것만은 자신있던 나에게
정작 잊어야만 할 것들은,
내 옷들보다도 낡은 것들은,
여전히 비를 맞으며 저기 서 있다
이미 축축히 젖어버린 기억들이
퍽이나 초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