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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 Oct 22. 2023

육아서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때

나에게 맞는 육아서

남편과 나는 책 욕심이 많은 편이다. 특히 남편은 뭔가에 관심을 두면 관련 서적은 죄다 끌어모으는 경향이 있어서 우리 집은 항상 책으로 넘쳐났다. 임신을 확인한 후, 남편은 출산과 육아에 관련된 책을 사모았고, 난 그중 끌리는 것 위주로 읽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은 후에도 종종 추천도서를 사모았고, 그렇게 소장하게 된 국내외 육아서만 50여 권 정도였다. 그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보 위주의 책부터 에세이류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파멜라 드러커맨의 <프랑스 아이처럼>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을 보고 '육아를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똘레랑스 정신이 강한 프랑스 문화를 나름 좋아하는 편이어서 더 인상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똘레랑스란 관용 정신을 뜻한다. 즉 아이 또한 어른과 같은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 주는 것이 프랑스의 육아철학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프랑스인이 아니었고, 똘레랑스 정신이 그렇게 투철하진 않은 편이었나 보다. 나름 열심히 기록해 가며 읽었던 책이었는데, 내 육아는 그들과 다른 형태로 흘러가고 있었다. 책으로 볼 때는 재미있고, 즐거웠던 육아가 그저 텍스트에 불과할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육아서


다른 육아서를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육아서를 많이 읽을수록 육아는 어려워졌다. 책마다 지향하는 바가 조금씩 달랐고, 육아서에 나오는 아이와 양육자가 우리 집에는 없었다. 나와 내 아이에게는 우리만의 육아서가 필요했다. 그전에 나만의 육아철학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육아철학만 확고하다면 나한테 맞는 육아서 찾는 건 쉬운 일이니까 말이다.


'아이는 아이답게!'


내 육아철학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게 아닐까. 아이가 타고난 본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가꾸며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어른들과 세상의 풍파에 여러 차례 깎여나가겠지만 말이다. 나 역시 아이들의 본성을 수도 없이 짓밟았다. 그게 맞는 줄 알고 그랬던 때도 있었고, 내 감정에 휘둘려 그랬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더욱더 아이들을 지지하고, 도와줄 수 있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내게 맞는 육아서


내 방에는 작은 책장이 하나 있다. 거기에 꽂힌 책 중 내 육아철학에 어울리는 책들을 몇 개 골라보았다.


임신과 출산: 메리 몽간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그랜틀리 딕리드 <두려움 없는 출산>

발도르프: 알베르트 수스만 <12감각>, 라히마 볼드윈 댄시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 수잔 페로우 <치유동화>

놀이: 편해문 <위험이 아이를 키운다>

육아 전반: 오쇼 라즈니쉬 <아이를 더 크게 사랑하는 법>


임신과 출산 관련 책은 두세 번 완독 하고, 이제 더 이상 볼 일이 없을 것 같아 나눔을 했다.


발도르프 책은 여기 써놓은 것 말고도 괜찮은 책들이 많다.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라 그중 몇 권을 고른 것이다. <12감각>은 두꺼운 편이라 챕터별로 나눠서 천천히 읽는 중인데, 아이를 보는 관점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는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책인데, 아이 발달에 따른 육아법을 찾을 수 있다. <치유동화>는 필요하거나 궁금한 부분부터 찾아 읽고, 잠자리 동화를 직접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매일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고, 한 이야기로 몇 달을 반복해도 아이들은 좋아했다. 지금은 힘들어서 쉬는 중인데, 막내가 조금 더 자라면 다시 시작해 볼까 생각 중이다.


<위험이 아이를 키운다>는 편해문 선생님의 놀이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나와 남편이 추구하는 놀이철학과 유사한 점이 많아서 인상적이었는데, 실제로 어떻게 적용을 하고 있는지 굉장히 궁금했다. 그 무렵, 우연히 편해문 선생님이 설계한 팝업 놀이터를 방문하게 되었다. 첫째 아이는 초반에 눈치를 조금 보더니, 간섭이 없는 걸 알고는 거침없이 이것저것 만들며 놀았다. 둘째 아이는 눈치를 조금 더 많이 보는 편이고,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그래서 하염없이 형이 하는 걸 쳐다보더니 형의 심부름꾼이 되어 놀이재료들을 운반했다. 그때는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긴 했지만, 특별히 인상적인 경험을 한 느낌이 들진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같은 장소에 방문하게 되자 첫째 아이가 물었다.


"엄마! 지난번에 들어갈 수 있는 통 여러 개 있던 놀이터도 있어?"


편해문 선생님의 팝업 놀이터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언젠가 순천에 있는 '기적의 놀이터'도 꼭 가보려고 한다.   


<아이를 더 크게 사랑하는 법>은 아직 읽는 중이다. 이 책을 처음 펼쳐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이 오히려 아이를 방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육아서보다도 가장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보다 중요한 것


육아를 하다 보면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이 참 잘 지나간다. 밥 먹고 돌아서면 또 밥 먹어야 하고, 또 밥 먹고, 그러다 보면 잘 시간이고. 그 사이에 짬을 내서 책을 보는 건 정말 큰 마음을 먹어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을 사놓고 보지도 않은 채 쌓아놓는 일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책을 전시물로 이용하면서 내 육아의 시간은 흘러갔다. 비록 책을 전부 읽지는 못했지만, 아이들과 보낸 시간은 훨씬 더 많이 쌓였다. 그리고 지금은 나만의 육아철학도 확고해진 편이다. 이 바람, 저 바람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내가 육아서를 찾아 헤맸던 것은 그 속에서 '정답'을 찾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육아가 어렵고, 힘드니까. 책 속에서 그걸 해결하는 방법을 찾거나,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가끔은 그렇게 책 속으로 도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현실과 부딪치면서 몸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 같다. 도움이 필요할 땐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누군가 도움을 주면 고마운 마음으로 받으면서 말이다. 특히 나같이 자꾸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겐 그런 것이 더욱 필요한 일이다.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딛고 서있는 것이 책  수백 권 읽는 것보다 훨씬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도 육아는 계속하는 거라고 한다. 그때가 되면 그때에 맞는 육아가 필요할 것이다. 어른 대 어른으로 말이다. '육아'라고 부르기엔 조금 애매하지만, 딱히 뭐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가 되어도 여전히 아이들을 품 안에 모셔두고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고 싶진 않다. 아이들이 내 품에서 벗어나 각자의 삶을 멋지게 살아내길 바란다. 나 또한 아이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단단한 부모로 서있고 싶다. 그래야 아이들이 더욱 자유롭게 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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