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장난감
세 아이와 함께 KTX를 타고 서울 친정에 갈 때가 있다. 2시간 정도 거리인데, 남편 없이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가다 보면 4-5시간은 되는 것 같을 때도 있다. 작년 여름엔 세 아이를 데리고 서울(친정)에서 부산(시댁)까지 간 적도 있다. 하필 캐리어도 큰걸 챙기는 바람에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또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은 여정이었다.
초반에는 책을 꺼내서 보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논다. 그러다 창밖 풍경을 보고, KTX 안에서 상영해 주는 모니터를 보며 떠들기 시작한다. 재잘재잘, 뭐가 그리 재밌는지 한 번 발동 걸리면 첫째랑 둘째는 눈만 마주쳐도 웃는다.
"유아동반객석이지만, 주무시는 분들이 계시니 조금만 조용히 해주시겠어요."
가끔씩 승무원이 와서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갈 때도 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저자세로 조심스럽게 말이다.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 주의를 한 번씩 주고, 다시 소란이 발생하려고 할 때쯤 객차와 객차를 연결하는 통로로 데리고 나간다. 소음이 심하고 흔들림도 심한 공간이라 불편하지만, 아이들에겐 오히려 그곳이 편해 보이기도 한다. 뛰기도 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흔들림을 느껴보기도 하고, 목소리 줄이지 않고 말해도 되니 말이다.
가끔은 화장실이나 자판기를 찾아 다른 객실을 오가며 사람들 구경도 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둘째 아이는 그걸 특히 좋아한다. 소리를 지르거나 뛰어다니진 않지만, 조용한 객실 안을 오가다 보면 조금 눈치 보일 때도 있다. 특히 자는 사람이 많은 객실은 더욱 그렇다. 그럴 땐 가급적 객실 이동을 자제하고, 통로에서 좀 있다가 객실로 돌아간다. 그러면 또 잠시 편히 갈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애가 둘일 때도 KTX 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과 KTX 타는 건 '그냥' 어려운 일인 것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들을 잠시 멈추게 하고 싶을 때가 있고, 멈추게 해야 할 때가 있다. 멈추게 하고 싶을 때는 내가 견디기 힘들 때, 멈추게 해야 할 때는 KTX를 탔을 때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때이다. 욕구대로 움직이는 아이들을 멈추게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그대로 두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특히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가 싸우는 걸 보고 있는 건 굉장히 힘들다. 이제 막내도 제법 컸다고 여기저기 훼방을 놓다가 오빠들한테 쫓겨오기도 한다.
"네 친구 애들은 집에 있으면 많이 안 싸워? 어떻게 놀아?"
결혼 안 한 여동생에게 물었더니 답은 간단했다.
"TV를 보며 놀지."
할 말이 없었다. 정말 쉽지만, 우리 집에서는 불가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을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동영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집에서 보는 건 휴대폰 영상(아이들 동영상) 정도다. 미디어 노출은 최대한 늦추려 노력했지만, 식당만 가도 TV 켜진 곳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출되었다. 처음엔 신기해서 화면에 나오는 모든 걸 이야기하면서 보더니, 익숙해지면서 화면만 보는 형태로 변한 것 같다. 멍하니 눈동자만 움직이며 화면 보는 모습을 보면 눈앞이 아찔해진다. 놀이에 몰입한 아이들의 표정과 사뭇 다르다. 아이들의 혼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게 편하지 않다.
미디어를 아예 거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아이들 이것저것 직접 체험하면서 즐겁고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미디어에 빠지는 건 쉽지만, 빠져나오는 건 쉽지 않다. 이것저것 다 해보고 접해도 충분한 것 같다.
TV가 없긴 하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뽀로로', '타요'와 아주 친숙하다. 장난감 덕분이다. 아이가 하나였던 시절, 남편과 나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참 많이 사줬다. 산책할 때마다 차를 유심히 보며 좋아해서 주로 '차'를 샀다. 그때 타요 시리즈는 거의 다 모았던 걸로 기억한다. 실물을 축소해서 만든 차도 있는데, 브루더에서 파는 공사차량 등 10여 개, 토미카 10여 개 정도가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은 나눔을 하거나 버리고 브루더 제품과 토미카만 몇 개 남겨뒀다.
레고 전시 보러 갔다가 아이가 노는 걸 보며 레고도 사들이기 시작했다. 낱개로 하나하나 구매해서 200-300만 원어치 정도를 샀다. 카프라 나무 블록도 2,000 피스 이상 있었는데, 절반 정도는 무료 나눔으로 보내고 절반이 남은 상태다. 이케아 놀러 갔다가 나무 레일을 보고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그걸 또 잔뜩 사들였다. 커다란 리빙박스 한가득 들어가는 정도의 양이다. 퍼즐 맞추는 걸 좋아하는 걸 보고는 아마존에서 대형 퍼즐을 잔뜩 구매하기도 했다. 지금은 전부 창고에 모셔둔 상태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아이를 위해 구입한 많은 장난감이 있다.
아이가 졸라서 사준 건 차 종류 중 몇 개뿐이다. 시작도, 수량을 늘리는 것도 전부 남편과 내가 알아서 한 것이다. 아이한테 필요한 것 같아서, 혹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 같아서! 모두 아이를 위해 사기 시작한 것인데, 정작 그걸 갖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는 아수라장 속에서 이것 잠시 만지다가 저것 잠시 만지는 걸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어느 것에도 깊이 몰입하는 것 같지 않았다. TV가 없긴 하지만, 자극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아이들의 짜증과 다툼이 늘어갔다. 너무 많은 장난감을 보며 전부 한 번씩은 갖고 놀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던 건 아닐까.
아이들을 위해 한 일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 안의 어린아이를 위해 한 일이었던 것 같다. 내가 어린 시절 갖지 못했던 것들을 내 아이는 누리게 해주고 싶다는 욕구, 내 아이는 부족함 없이 자라게 해주고 싶다는 욕구. 아이의 욕구가 아니라 내 욕구였던 것이다.
결국 여러 차례 변화를 시도하다가 장난감 중 일부만 꺼내놓고, 대부분은 창고에 모셔두게 되었다. 변화를 시도하는 도중에 아이들은 강력하게 저항을 하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다. 줬다가 뺏으면 얼마나 뺏기기 싫겠는가! 그래도 장난감 다이어트를 결심했다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저항하던 아이들도 어느 순간 받아들이고, 남은 장난감으로 노는 법을 찾기 시작했다. 더 건설적이고, 창의적으로 논다. 다툼이 줄어들고, 소란도 줄어들었다.
아이들이 너무 싸울 때, 실내에서 지나치게 소란스럽게 굴 때, 장시간 대중교통이나 차량으로 이동해야 할 때, 조용히 밥 먹고 싶을 때 등... 아이들 손에 휴대폰 한 대씩 쥐어줘 볼까 하는 생각을 한두 번 해봤다. 아마 잘 먹힐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면 후회하고, 자책할 게 뻔하다. 힘들어도 한 순간이고, 어차피 지나갈 순간이다.
아이들이 소란스러워지는 건 에너지가 넘쳐서 그렇다. 조금만 움직이게 해 줘도 소란이 줄어든다. 아이들이 에너지를 충분히 방전하면 알아서 조용히 논다. 다만 너무 과하게 방전하면 떼를 쓰기 시작해서 힘들어진다. '충분한 방전'의 시점을 잘 관찰해야 한다. 자극이 너무 많은 곳(볼거리, 체험 등)에 가면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금방 방전된다. 그래서 그런 곳에 다녀오면 역효과가 생길 때가 많았다. 그래서 주로 30분~1시간 정도 코스로 산책을 다닌다. 때로는 가볍게 걷거나 뛰고, 때로는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면서 말이다. 그렇게 에너지를 방전하고 집안에서 놀 때는 자극적이지 않은 장난감과 경쟁심을 유발하지 않는 놀이, 혼자 해도 좋은 놀이 같은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가끔씩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몸도 움직이기 싫고, 잠만 자고 싶어 진다. 그럴 땐 밖으로 나간다. 강, 하늘, 나무, 꽃 같은 것도 보고, 바람을 느끼다 보면 없던 힘이 조금은 생긴다. 신기하게도 걸어진다. 뛰거나 자전거를 타면 힘이 더 생긴다. 움직인 만큼 힘이 생기는 건 참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이번 주말도 남편은 워크숍을 간다. 아이들과 한바탕 신나게 걸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