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안 물건 맞추기 게임의 심리
텔레비전 예능 방송에서 어떤 게임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양 옆에 뚫린 구멍에 손을 넣어 오직 촉각으로만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맞추는 게임이다. 이 게임의 묘미는 게임을 하는 사람에게는 물건이 안 보이지만, 방청객과 시청자에게는 보인다는 점에 있다. 게임 참가자들은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상자에 손을 넣고 조심스럽게 물건을 만진다. 손가락에 차갑고 물컹한 표면이 닿자마자 얼른 손을 빼고 찡그리며 이야기 한다. “뭔가 징그러운 것 같아요.” 그 순간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상자 안에는 냉장고에서 갓 꺼낸 순두부가 들어 있다.
참 재미 있는 상황이다. 게임 참가자는 단지 차갑고 물컹거리는 표면을 만졌을 뿐인데 마치 뱀의 피부라도 만진 마냥 무서워 한다. 아니, 순두부에 손이 닿기 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참가자의 얼굴엔 긴장이 역력하다. 이를 보면 참가자가 느끼는 공포심은 애초에 ‘두부’라는 대상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참가자는 무엇 때문에 공포심을 느끼는 걸까? 이는 우리가 귀신을 무서워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바로 ‘알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공포이다.
참가자가 상자에 손을 넣을 때 긴장한 이유는 상자에 뱀이 있을지 전갈이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참가자가 차갑고 물컹이는 표면을 만졌을 때 놀라서 손을 뺀 이유도 마찬가지로, 그 표면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참가자가 표면을 만지자마자 순두부인 것을 눈치챘다면 순식간에 공포는 사라졌을 것이다. 이처럼 ‘알 수 없는 존재’는 우리에게 불편함과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공포심은 대상이 사람일 때도 적용된다. ‘알 수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 그렇기에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도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두렵고 불편한 건 당연하다. 상자 속에 보이지 않는 물건처럼 앞으로 나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다시 ‘이질감’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지난 글에서 우리는 이질적인 존재를 마주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질적인 존재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질적인 존재는 1) 나와 다르게 생겼고 2) 익숙하지 않은 존재다. 이에 따르면, 나와 다르지만 익숙한 존재, 예를 들면 애완동물로 기르는 거미는 그 주인에게는 이질적인 존재가 아닐 것이다. 또 익숙하지 않지만 나와 비슷한 존재, 예를 들면 처음 만난 한국 사람에게는 별다른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이질적인 존재, 즉 나와 다르고 익숙하지 않은 존재를 마주한 상황을 생각해보자. 예를 들면 처음으로 아프리카 원주민을 만났다고 하자. 우리는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그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봐야 한다. 하지만 여기엔 위험 부담이 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끝에 그가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교활하게도 첫 인상 따위를 통해 상대방이 앞으로 알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미리 판단한다. 깊고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생김새, 옷차림, 사회적 조건 등의 겉모습을 통해 한 사람을 쉽고 빠르게 파악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겉모습으로 상대방을 파악하려고 할 때, ‘이질적인 존재’는 문제가 된다. 우리와 너무 다르게 생긴 탓에 겉모습을 뜯어 봐도 별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사람이어도 한국인이라면 우리는 그의 겉모습으로 많은 정보를 유추해낼 수 있다. 그가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고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고 있다면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세련된 도시인’이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원주민에게는 이러한 추측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아프리카 부족 사회에서 무엇이 유행이고 무엇이 아름답다고 여겨지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의 겉모습은 우리에게 ‘다르다’는 인상 외에는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못한다. 그는 ‘알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제 우리가 이질적인 존재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이유가 명확해졌다. 우리는 이질적인 존재의 겉모습만 보고 너무나도 성급하게 그를 ‘알 수 없는 존재’라고 결론짓는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알 수 없는 존재’는 예측할 수 없기에 우리에게 불안감, 두려움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즉, ‘이질감’은 ‘이질적인 존재’를 ‘알 수 없는 존재’라고 착각하여 생기는 공포심인 것이다. 하지만 상자 안의 순두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고작 손끝으로 물컹거리는 표면을 살짝 만진 것을 가지고, 순두부를 ‘알 수 없는 존재’로 착각해 무서워하는 모습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어딘가 우스꽝스럽다. 좀 더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계속 표면을 만져보면서 이게 순두부라는 사실을 금방 눈치 챌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알 수 없는 존재’라고 판단해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긴 해도 유치한 구석이 있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이라면 상대가 자신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말도 걸고 관찰도 하면서 그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려고 하지 않을까? 순두부가 순두부인 걸 알았을 때 공포심이 사라지듯, ‘알 수 없는 존재’는 ‘아는 존재’가 되는 순간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이질감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