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낙태를 하게 하는가

by 김혜원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어느 모텔방에 혼자 누워 있었던 기억. 나는 낙태수술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나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한 모텔방에 왔다. 친구는 침대에 나를 뉘어주고 이제 자기도 가봐야겠다며 방을 나섰다. 남자친구 대신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해주러 온 남자사람친구였다. 친구에게 오늘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친구는 가고 나는 홀로 침대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스물 두 살의 일이다.


뻔한 스토리였다. 어린 나이에 뭣도 모르고 사귄 남자친구. 나와 남자친구는 이별과 재결합을 반복하며, 사랑은 끝났지만 헤어지지도 못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연애하는 것도, 이별한 것도 아닌 애매한 시기에 그와 관계를 맺었다. 나는 그에게 피임에 대한 이야기를 확실히 하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마저 사랑받고 싶을 정도로 어리고 여렸으니까. ‘사건’은 그렇게 일어났다. 그래, 그건 분명 ‘사건’이었다.


남자친구에게 말을 꺼내는 데까지 많이 머뭇거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남자친구가 어떻게 반응할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말을 하지 말까 하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 임신했어.” 남자친구는 긴 한숨을 쉬고 별말이 없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 침묵 속에서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서 먼저 꺼낸 말이었다. 남자친구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영화 속 주인공 ‘안’의 무표정을 알고 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표정은 무표정이다. 나도 그랬다. ‘안’처럼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나 또한 이 모든 것을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유학 중이었고, 좁은 한국인 커뮤니티에 혹시라도 소문이 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기껏 돈 들여 유학 보내놨더니 몸 함부로 굴리고 다닌다고 혼날 것 같았으니까. 나도 ‘안’처럼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했다. 병원을 찾고 수술을 받고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를 다녔다. 그 모든 일에서 남자친구가 한 일은 수술비 70만원 중 17만원을 송금한 것뿐이다.




난 억울했다. 관계는 분명 둘의 사건이었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나 혼자의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물론 그가 조금 더 성숙한 남자였다면, 그리고 우리가 조금 더 사랑하는 관계였다면, 그 뒤로도 둘의 사건이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아버리고 말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 상처를 제대로 꺼내보지 못했다. 그건 말할 수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렇게 안으로 곪고 곪아 갈 곳을 잃은 슬픔은 점점 분노와 증오가 되었다. 내게 남자혐오가 생긴 것도 그때부터였다.


수술 후에도 정신적인 고통은 가라앉질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 ‘말하지 않아서’였다. 이야기된 불행은 더 이상 불행이 아닌데, 이야기할 수 없었으니 계속 불행으로 남았던 것이다. 나는 말하지 못할 불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잠식되어 우울증에 걸렸다. 섹스를 하는 것도 무서워졌다. 하지만 내가 그 모든 과정을 겪는 동안, 그 남자애는 멀쩡히 학교 생활하면서 새로운 여자친구마저 사귀었다. 억울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그 남자, 더 나아가 자지 달린 모든 존재를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로부터 한참 뒤, 나의 아픈 기억을 잘 보듬어주었던 새로운 남자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남자혐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일이 있은지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낙태죄는 헌법 위헌 판정을 받았고, 낙태 자체가 예전만큼 쉬쉬하는 주제는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사회의 변화를 보면서도 나는 늘 가슴 한 구석이 답답했다. 무언가 큰 부분 하나가 빠져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그 부분을 이제서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레벤느망>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낙태를 하면 감옥에 갔던 시기. 학업을 포기할 수 없었던 똑똑한 여대생 ‘안’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혼자서 낙태 수술을 받는다. 물론 그 수술을 받기 전까지 모든 고민을 끌어안고 혼자 방법을 찾아야 했던 ‘안’은 제대로 학교 생활을 하지 못한다. 평소에 ‘안’을 좋게 평가하던 교수가 ‘안’에게 묻는다. 어디 아팠냐고. 그러자 ‘안’이 대답한다.


“네, 여자들만 걸리는 병에 걸렸어요.”


그 말을 내뱉은 마음을 왜 모를까. 가정에 머물 수 없는 똑똑한 여대생. 낙태죄가 불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나기 위해 죽을 위험을 안고 수술을 받은 결정. 그 과정에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남자친구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눈을 뜨게 된 것. 스물 두 살의 나 또한 그랬던 것 아닌가.


하지만 그 누구도 묻지 않은 부분이 있다. 병은 슬픔이다. 그렇다면 계획에 없는 임신. 즉, 내가 앞으로 주체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데 큰 걸림돌이 될 게 뻔한, 때 이른 임신은 ‘슬픔’인가? 요즘 페미니즘 논의에서도 ‘임신’을 여성이 주체적인 삶을 방해하는, '병’ 취급을 하는 것을 종종 본다. 나는 ‘임신’이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임신중절’은 철저히 한 여성의 선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임신’ 그 자체를 ‘슬픔’ 혹은 부정적인 이미지와 결부시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한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 숭고하고 성스러운 일이라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임신’은 마치 ‘섹스’처럼 인간에게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위이기에, 신성시되어서도 폄하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니까.




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스물 두 살의 나는 임신 사실을 알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머리로는 온통 좆됐다는 생각뿐이었다. 스물두 살에 아이를 낳는다고? 그 남자와 결혼하지도 않았고, 결혼할 생각도 없는데?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뒷목 잡고 쓰러지시겠지? 나는 이제 정상적인 학교생활도 못하고 미혼모라는 온갖 수근거림을 감당해야겠지? 나중에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나타났는데 내가 애 딸린 미혼모라면? 철학을 하고나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사람이 정말 실존적인 선택 앞에 서면, 그 사람이 내면화 하고 있는 모든 권력의 얼굴들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 권력의 얼굴 앞에서 나는 쪼그라들었다. 나는 애초에 왜 그런 고민을 했던 것일까? 내 몸은, 내 마음은 아이를 낳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머리가 그 아이를 낳으면 앞으로 네 인생 망하는 거라고, 온갖 권력의 얼굴을 빌려 제지했던 것이다. 나는 그때 분명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그 때 아이를 낳았다면, 나는 그 후의 삶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채, 온갖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때 나의 마음을 따라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사랑하는 기쁨을 누렸을 수도 있고, 미혼모라는 소외된 삶을 견디고 긍정해가며 강건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보지 못했던 반쪽의 삶의 진실이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보인다.


지금까지 낙태 논의는 ‘낙태’ 그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누구도 왜 한 여자가 낙태라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지 묻지 않는다. 여성들도 그 사실을 묻지 않는다. 아마 나와 같은 이유 때문일 테다. 여성들도 권력의 목소리를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를 가졌을 때, 내가 지금 만약 원시사회에서 살고 있다면 낙태라는 결정을 내릴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자연상태의 인간에게 ‘임신’이 ‘기쁨’의 경험인지 쉽게 말하기 어렵지만,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알게 된 사실은, 모두에게 ‘낙태’는 ‘슬픔’의 경험이었다는 것이다. 철학자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결합’을 ‘기쁨’으로 ‘해체’를 ‘슬픔’으로 정의한다. 즉, ‘독’이 인간에게 해로운 '슬픔’인 이유는, 독이 인체를 ‘해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정의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한 인간에게 ‘임신’은 ‘기쁨’, ‘낙태’는 ‘슬픔’의 경험이 맞다. 임신은 결합(생성)이고, 낙태는 해체니까.


정직하게 돌아보니, 스물 두 살의 나의 몸과 마음은 ‘임신’을 ‘기쁨’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낙태’를 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내 머리가 앞으로 내가 미혼모로서 견뎌야 할 온갖 불안을 투사해 내 몸에 스스로 폭력을 행사하도록 강요했을 뿐이다. 이제 왜 내가 그토록 남성혐오에 천착했는지도 알겠다. 여자친구의 예기치 않은 임신에 겁을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망가는 남자는 정말 많다. 왜 그럴까? 남자들도 어리고 여리기 때문이다. 어리고 여린 사람은 자신에게 닥쳐온 사건의 무게를 제대로 짊어지지 못한다. 나 또한 ‘임신’이라는 사건을 제대로 짊어지지 못했던 것처럼. 내 남자친구는 이 모든 과정에서 나와 연락을 끊었고, 나에게 수술비 17만원을 주고 다음날 여자가 나오는 술집에서 20만원을 썼다. 나중에 그 카드내역을 보게 되고 나는 남자라는 존재에 혐오감을 느꼈다. 하지만 정말 시간이 많이 지나고나니 알겠다. 그 남자도 나처럼 단지 겁을 먹었었다는 걸. 그의 머릿속에도 권력의 얼굴들이 지나갔겠지. 좆됐다고 생각하겠지. 부모님과 사회의 시선이 한꺼번에 떠올랐겠지. 나도,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낙태’가 한 여자에게, 그리고 한 생명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라는 걸. 그러기에 아마 그도 죄책감이 들었을 테고, 폭력을 받는 주체가 나이기 때문에 나에게 미안했을 것이다. 다만 그 죄책감과 미안함을 짊어질 만큼 정서적으로 강하지 못했기에, 술과 향락에 빠져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혐오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 남자의 마음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물론 나는 남자를 이해해야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은 반드시 곁에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어 있다. 나에게 상처준 사람에게 증오의 감정을 품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나 또한, 그 남자, 나아가 남자 전체를 오랫동안 증오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소중한 이들 앞에서 내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때 차마 다 울지 못했던 울음을 터뜨리고, 또 그런 나를 소중한 이들이 보듬어주는 과정 끝에, 나의 슬픔이 해소되어 덩달아 증오가 사라졌을 뿐이다. 그러니 남자, 혹은 남성권력에 상처받은 경험이 있다면 그들을 증오하는 것도 감정을 해소하는 첫 걸음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여성문제에 있어서 남자를 악마화하는 것이 문제의 궁극적인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방식으로는 진짜 적에게 칼을 겨누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물인 인간에게 낙태는 슬픔이다. 그렇다면 누가 낙태를 하게 만드는 것일까? 모든 자살은 사회적 자살이라는 뒤르켐의 말처럼, 모든 낙태는 사회적 낙태인 것은 아닐까? 경제적 문제와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로운 세상에서도, 한 여성과 한 남성은 ‘낙태’라는 선택을 하게 될까? 경제적 문제와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금의 세상에서, 나는 ‘낙태’란 철저히 여성의 선택이어야 하며, 그 선택에 어떤 잣대도 들이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은 정말로 스스로 낙태를 ‘선택’한 것인지. 사실은 그녀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지. 이것은 답 안 나오는 물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물음들이 여성과 남성 모두가 함께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가는 틈을 열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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