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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Apr 28. 2022

교통사고와 뺑소니

내가 교통사고를 냈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부주의했다. 나는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그 대가로 나를 가장 소중히 대했던 사람의 마음에 치명상을 입혔다. 나의 경솔함으로 이중, 삼중 추돌 사고가 일어났다. 내 곁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고속도로 위에 나 때문에 난장판이 된 사고 현장이 보였다. 온몸이 저려왔다.


나는 오만한 사람이었다. 소중한 이가 나를 아껴주는 마음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다. 무의식 깊은 곳에서 나는 내가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나에게 주는 소중한 마음들을 가벼이 여길 수밖에. 그 가벼움들이 쌓여 큰 경솔함을 낳았다. 나는 왜 부주의했을까? 내가 그렇게 행동해도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떼를 써도 엄마는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어린아이처럼. 어린아이는 부모의 얼굴을 할퀴고 때린다. 부주의하다. 부모를 소중히 대하지 않아도 부모가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제때 크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 이제 한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자기를 가장 소중히 대해준 이의 얼굴을 할퀴고 때린다. 이렇게 해도 엄마(아빠)는 나를 버리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가지고.


사고 현장에 그냥 주저앉아 있었다. 죄책감에 온몸이 저렸다. 사람은 죄책감에 깔려죽을 수도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나는 혼이 빠져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때 저 멀리서 피 흘리고 쓰러져 있던 소중한 이가 외쳤다. 너 사고쳐 놓고 대체 무슨 책임을 지고 있는 거냐. 얼빠져 있던 정신이 번쩍 하고 돌아왔다. 그래, 교통사고를 내도 뺑소니는 치지 말자. 주저앉아 있지 말고 수습하자. 전부 다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나의 오만함은 그렇게 깨졌다. 나는 소중한 사람들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걸 뼈저리게 배웠다. 소중한 사람들을 소중히 대하지 않는 대가는 반드시 치른다는 걸, 그리고 그 대가는 나를 소중히 대해준 바로 그 사람들을 모두 잃는 일이란 걸 사무치게 느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오만함, 자기연민, 나르시시즘이 단박에 박살났다.


미성숙한 이는 교통사고를 낸다. 교통사고는 부주의의 결과고, 부주의는 사랑없음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그 상황에서 내 곁에 있는 사람 단 한 명이라도 진짜 사랑했다면 그런 사고를 칠 수 없었다는 걸. 사랑하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과속을 하는 부모는 없으니까. 나는 나만 사랑했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기에 이중, 삼중 추돌사고를 냈다. 내가 그나마 잘한 것은 단 하나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도망가지 않은 것.


교통사고의 책임을 졌다. 내가 어떻게 하다가 교통사고를 내게 되었는지, 모든 연결고리를 복기했다. 그 연결고리마다 내가 잘못했던 지점을 모조리 찾아냈다. 매 순간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오만하며 자기연민에 빠진 선택을 내렸는지 낱낱이 보였다. 죽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미성숙하며 나밖에 모르는 인간인지 전부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도망가지는 않았다. 주저앉지도 않았다. 내가 얼마나 비루한 인간인지 직면하며, 별 도움은 안 됐지만,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바닥에 나뒹구는 유리조각을 줍고 핏자국이라도 닦았다. 처절하게 반성하고 성찰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나 때문에 피 흘렸던 소중한 사람들을 겨우 되찾을 수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소중히 대하지 않으면 소중한 사람은 떠난다. 억울해하지 말라. 그 사람이 떠난 건 네가 그를 소중히 대하지 않아서지 다른 이유는 없다. 그를 떠나보내놓고, 사실은 그가 그렇게 소중하진 않았다고 정신승리하지도 말라. 5년 뒤, 10년 뒤, 아니 죽기 전에는 누구나 알게 된다. 나를 진짜 아껴주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내가 놓치지 말아야 했던 사람은 누구였는지. 지금의 나를 지키기 위한 정신승리는, 눈 가린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죽음의 시간만 연장시킬 뿐이다.


소중한 이는 떠났다. 너는 하나의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하나의 기회가 더 남았다. 사고는 허영을 벗긴다. 나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던 가면과 갑옷들이 한꺼번에 벗겨진 순간. 내가 가장 무력해진 순간. 그 순간이 바로 지긋지긋한 과거의 나와 결별하고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많은 이들은 그때 다시 가면을 쓴다. 그리고 가면을 쓴 채 사고의 현장에서 온 힘을 다해 도망친다. 그렇게 그는 소중한 이들을 잃고 평생 도망치는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순간 섣불리 가면을 다시 쓰지 않고 까발려져버린 자신의 민낯을 직시한다. 그는 아무도 소중히 대하지 않아 소중한 이 모두를 잃어버린 자신을 직시한다. 그 처절한 직시 끝에 그는 한 사람이라도 소중히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는 다른 사람이 된다. 소중한 이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되찾을 수 있다.

버스는 떠난다. 버스가 떠났다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지 않은 이는 다음에 아무리 많은 버스가 지나가도 버스를 보지 못한다. 사실 삶은  순간이 기회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강도가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어도, 죽을지 말지 선택을 내릴  있는  삶이라 말했다. 나는  말을 믿는다. 후회하지 않는 , 도망치지 않는 삶을 사는 방법은   가지다.  버스를 떠나보냈는지 처절히 성찰할 . 처절히 성찰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여 다음 버스를 기다릴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도망치고 도망치다 보면 결국 혼자가  뿐이다. 소중한 이를 소중히 대할 . 나도 마음에 새겨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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