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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Feb 18. 2023

엉켜버린 목걸이

가끔 목걸이를 풀어서 주머니에 넣어놓을 때가 있다. 넣어놓고 깜빡하면 목걸이가 주머니 안에서 이리저리 엉켜버려 한덩어리가 된다. 꼬인 목걸이줄을 푸는 데는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한번은 제대로 엉킨 목걸이줄을 푸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릴 적도 있다. 얇은 줄이라서 틈 사이로 바늘을 집어 넣어가며 풀었다. 사실 나는 꼬인 목걸이줄 같은 것을 풀고 있으면, 5분도 안 되서 그냥 벽에다가 집어던지고 싶어진다. 마음 속에 짜증이 잔뜩난 어린 아이가 나와서 "아! 몰라!!!"라고 외치는 것 같다. 그리고 며칠 전에 알았다. 나는 내 삶의 문제 앞에서도 그 짜증이 잔뜩 난 어린아이처럼 군다는 사실을.


다 잘라버리고 싶었다. 꼬여버린 목걸이줄 같은 것. 못 본 체 할 수 없다면, 풀 수 없다면, 그냥 잘라버리고 싶었다. 억울했다. 내가 꼬은 게 아니잖아. 나는 그냥 주머니 안에다 넣어놨을 뿐인데, 시간이 지나 꺼내보니 제멋대로 엉켜있는 걸 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 그렇게 생각했다. 내 삶의 문제 앞에서 나는 계산을 때렸다. 이건 풀 수 있을까 없을까.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때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풀 수 없을 거라고 각이 나온 다음부터는 그냥 이 꼬여버린 목걸이줄 같은 거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냥 큰 가위로 다 잘라버리고 싶었다. 난 참 어린애 같다.


나는 왜 그 목걸이줄을 풀려고 했던 걸까? 풀 수 없으면 왜 자르려고 했던 걸까? 그 목걸이줄을 대충 서랍에 쑤셔넣고 외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목걸이줄을 일반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풀 수 없이 꼬여버려 목걸이의 역할을 못하더라도, 한때 내가 아끼던, 늘 함께 했던 목걸이이니까. 그래서 서랍에 처넣을 수도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없었던 거다. 책상 위에 꼬여버린 목걸이줄을 올려놓고 매일 같이 들여다보며 '이제 이걸 풀 수가 없구나' 생각했다. 더 이상 목걸이가 아니게 된 목걸이줄. 주머니 속에 넣어놓고 안 찬지 오래 되어 이리저리 녹슬어 빛이 바랜 목걸이줄. 그 줄을 보고 있으면 한스러웠다. 슬펐다. 이건 내가 원하는 모양도 결말도 아무것도 아니잖아. 이 엉켜버린 줄을 가지고 이제 어떻게 하라고.


나에게 목걸이는 사랑이다. 중학교 때 엄마가 붕어모양 목걸이를 사왔다. 내 학창시절 별명이 '붕어'라서. 백화점에서 보고 내 생각이 나서 사왔다고 했다. 나는 그 붕어 모양 목걸이를 학창시절 내내 차고 다녔다.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도 엄마가 졸업 선물로 목걸이를 사주었다. 그 목걸이도 20대 내내 차고 다녔다. 엉켜버린 목걸이는 찰 수가 없다. 참 악착같이도 풀려고 했다. 다시 차고 싶어서. 빛이 바랬든 녹이 슬었든 가장 오래 찼던 목걸이이니까. 더 이상 풀 수 없다는 걸 직감했을 때 절망스러웠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내 살 궁리부터 했다. 이제 이 엉킨 목걸이 따위, 나를 슬프게 하는 이 엉킨 목걸이 따위 버려버리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다 던져버리고 싶고 자르고 싶다.


나는 참 바보 같다. 왜 목걸이는 차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왜 찰 수 없으면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엉켜버린 목걸이는 그냥 엉켜버린 목걸이다. 어쩌면 그걸 악착같이 풀려고 했던 마음이 내 집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엉켜버린 목걸이는 풀 수 없다. 그래서 다시 찰 수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아팠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소중한 목걸이였으니까. 그 목걸이를 차고 다녔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분명 잿빛의 시간은 아니었다. 기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고, 신나기도 했고 밉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엉켜버린 목걸이는 그냥 엉킨 채로 두어야겠다. 그게 엉켜버린 목걸이를 가장 존중하는 방법이니까. 주머니 속에 있느라고 고생했다. 이런 모습으로 만나 놀랐지만, 이제 너를 풀려고도 자르려고도 하지 않을께. 책상 한 켠에 두고 어느 날 문득 보았을 때, 엉켜버린 네가 엉켜버린 그대로 예쁘게 보이기를. 안녕, 내 엉켜버린 목걸이. 안녕, 내 엉켜버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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