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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ul 09. 2019

7. 선입견이 당위가 되는 순간

'여자는 이래'가 아니라 '여자는 이래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지난 글에서 모든 선입견은 폭력이라는 주장을 했다. 한 사람을 고유한 개인으로 보지 않고 그가 속한 전체로 환원시켜서 보려는 태도는 분명 폭력적이지만, 그래도 선입견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모든 흑인들은 운동을 잘한다'라는 선입견은 운동을 못하는 흑인을 만나는 순간 깨질 수밖에 없다. '여자들은 이래'라고 생각하던 남성도 다양한 여성들을 만나다 보면 점차 생각이 바뀌게 된다. 10대 남학생들은 여성에 대한 각종 환상을 가지고 있지만, 연애해볼 만큼 해본 성인 남성들은 여성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걸 아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보통 선입견은 다양한 인간을 만나보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발끈하기 전에 우선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라는 사실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아무리 반례를 보여 줘도 자신의 선입견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여성은 이래'가 아니라 '여성은 이래야 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 번은 어떤 모임에서 50대 남성이 '여자들은 싫어도 싫다고 표현 못하잖아'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모든 여성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그는 코웃음을 치며 그건 내가 몰라서 하는 얘기라고 했다. '여자인 내가 아니라는데 왜 저러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결국 몇 번 시도 끝에 그와 대화하기를 포기했다. 아무리 반례를 들어도 그는 자신의 선입견을 고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기표현을 잘하는 여성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나와의 대화를 피했던 것처럼 그런 여성을 만나도 무의식적으로 못 본체 했을 가능성이 높다. 왜? 반례가 등장하면 선입견은 깨지게 마련인데, 그는 자신의 선입견을 지키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의 머릿속에 있는 '여성 = 자기표현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도식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표현을 잘하는 여성은 존재해서는 안된다. 고등학교 남학생들은 진짜로 다양한 여성들을 만나볼 기회가 없어서 여성에 대한 선입견이 생긴 거라면, 이 50대 남성은 이런저런 여성을 만나봤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입견을 지키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자기표현을 잘하는 여성은 외면했을 확률이 높다. 전자의 선입견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후자의 선입견은 '당위'에 가깝다. 


 나는 '무지'에서 비롯된 선입견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다양한 반례들을 마주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위'로 굳어진 선입견은 반례를 모두 튕겨내 버리기에 개선의 여지가 없다. 지난 글에서 모든 선입견은 폭력적이라고 주장했지만, '무지의 선입견'과 '당위의 선입견'은 폭력성의 정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 무지의 선입견은 상대방을 한 개인으로 보기 전에 전체가 먼저 눈에 들어와 버리는 수동적인 무례함이라면, 당위의 선입견은 상대방이 전체에 부합하지 않으면 '없는 사람' 취급하는 능동적인 혐오이기 때문이다. 'OO은 XX해야 돼'라는 생각은 언제라도 'XX하지 않으면 OO이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당위의 선입견은 특정한 상황과 만나면 극단적인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 OO에 '인간'을, XX에 '게르만족'을 넣어보자. '인간은 게르만족이어야 돼'라고 생각한 나치의 선입견은 '게르만족이 아니면 인간이 아니야'라는 생각, 즉 유대인들을 대량학살할 근거를 낳지 않았나? 


 당위의 선입견은 혐오의 씨앗이다. 그러므로 선입견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당위가 되는지 파헤치는 것은 혐오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나는 지금부터 몇편의 글에 걸쳐 그 메커니즘을 밝혀보려고 한다. 그 메커니즘은 디테일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집단간 혐오(예를 들면, 백인-흑인, 청년-노인, 부자-서민)에 통용된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의 글에서는 남성-여성 간의 혐오에 초점을 맞춰 쓸 생각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물어보자. 선입견은 언제 당위가 되는가? 지금 우리 사회에 팽배한 혐오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생겨나는 감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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