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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Oct 24. 2019

사랑, 가장 불결한 곳에 입을 맞추는 것.

프란치스코 교황의 키스

 예전에 티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노숙자의 발에 키스를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종교를 믿지 않고, 매사에 시니컬했던 당시의 나는 당연히 그것이 보여주기식 행위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참 교황으로 사는 것도 녹록치 않네'라고 빈정거리며 교황의 표정을 뚫어져라 관찰했다. 하지만 그런 불경스러운 나를 꾸짖기라도 하듯, 노숙자의 발에 키스를 하는 교황의 표정에는 한치의 망설임이나 혐오감도 묻어나질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명도 아니고 수십명의 노숙자의 발에 정성스러운 키스를 이어갔다. 그의 투명하고 온화한 표정 앞에서 시니컬한 나는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궁금했다. 어떻게 교황은 처음 보는 노숙자의 발에 키스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궁금해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를 찾아봤다. 그는 고름이 질질 흐르는 문둥병 환자에게도, 신경섬유종을 앓아 온 얼굴이 울퉁불퉁한 혹으로 가득찬 환자에게도 늘 정성스럽게 입을 맞추어 주었다. 그는 고름이 더럽다거나 환자와 접촉하면 병이 옮을 수 있다는 인식이 아예 없는 사람처럼, 모든 '혐오스러운' 이들을 안아주고 키스해주었다. 난 종교를 믿지 않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그 키스 장면은 아직까지도 내 마음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 교황의 키스를 받은 이들이 흘리던 눈물도 함께.


신경섬유종 환자에게 키스하는 교황




 한 남자와 뜨거운 사랑을 하며 나는 그 키스의 의미를 조금 이해했다. 한번은 서로 장난을 치는데 남자친구가 갑자기 내 맨발바닥에 입을 맞췄다. 예고된 일이 아니라서 발을 채 씻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혹여나 발에서 불쾌한 냄새가 날까봐 "왜 이래~"하며 발을 빼려고 했는데, 남자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다른 쪽 발바닥에 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순간, 내 발에 입을 맞추는 그의 표정을 봤다. 그의 얼굴에는 역시 아무런 망설임이나 혐오감이 묻어 있질 않았다. 그 후에도 종종 남자친구는 내 발바닥에, 발가락에 입을 맞추어 주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나의 불결한 곳마저 사랑해준다는 사실에 벅차올라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것은 분명 사랑 받는 기분이었다.


 반대로 나도 그런 적이 있다. 내가 사랑한 남자는 땀이 많은 스타일이다. 솔직히 그와 알아가던 시절에는 그가 여름철에 땀을 뚝뚝 흘리면 불결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사랑이 깊어질 수록 그의 땀이 더 이상 불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서로 땀을 흘리며 꼭 껴안고 있을 때에는 우리가 흘린 땀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땀에 젖는 그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곤 했다. 그에게 나의 발바닥이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그의 땀도 어느덧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그는 나의 발에 키스를 하고 나는 그의 땀을 어루만지며 우리는 사랑을 했다. 투명하고 따스한 표정을 지으며.


 후에 나는 그런 표정을 종종 보았다. 갑자기 배가 아파서 바닥에 토를 해버린 날, 나를 재우고 조용히 토를 치워주던 그의 표정. 또, 바보같이 콧물을 줄줄 흘리며 오열하던 날 나의 콧물을 계속 손으로 닦아준 그 사람의 표정. 또, 갓난쟁이 아들이 기저귀에 싼 똥을 쳐다보며 친구가 지었던 표정.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늙은 어머니의 머리결을 조심스레 쓰다듬던 시댁 친척의 표정. 발, 땀, 토, 콧물, 똥, 시체. 사랑하는 이의 가장 불결한 모습을 바라보고 어루만지며,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었던 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의 가장 불결한 곳에 입맞추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남자친구가 정성스레 내 발에 키스해주었을 때, 그의 입술이 닿은 곳마다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난 꽃밭이 되었다. 남자친구가 나의 못난 곳을 사랑스럽게 쳐다보았을 때, 나는 더이상 내 자신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가 사랑하는 '나'를 미워한다는 건 그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의 가장 부정적인 모습마저 사랑해줄 때, 비로소 나도 나의 가장 부정적인 모습을 긍정할 수가 있다. 그것이 사랑이다. '아름답고 깨끗하고 잘나서'가 아니라, '못생기고 불결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럽게 입을 맞추어 주는 것.


 진짜 보여주기식 의무가 아니었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이란 존재를 사랑하는 것일 테다. 그래서 그의 눈에는 우리가 보기에는 혐오스러운 노숙자나 문둥병 환자도 깨끗한 존재로 보이는 것일 테다. 마치 자기 자식이 싼 똥은 귀엽기만 한 것처럼 말이다. 문둥병 환자에게는 '당신을 사랑하고 지지한다'는 천마디의 말보다, 그의 얽은 피부에 닿은 입술의 온기가 진정한 구원처럼 느껴졌을 테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눈물을 흘렸던 것일 테지. 그렇게 그의 울퉁불퉁한 피부에서도 한송이의 꽃이 피어났을 테지.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냥 안아줘야겠다. 그들이 혐오스러운 자신을 마주하며 눈물을 흘릴 때 조용히 콧물이라도 닦아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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