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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Nov 04. 2019

목줄 없는 개

요새 호두와 산책을 나가면 어찌나 고집이 센지

동네 한 바퀴 도는 데도 한참 실랑이를 해야 한다.


저 쪽으로 가자고 하면 다른 쪽을 보며 서 있고

목줄을 당기면 작은 몸에 힘을 꽉 주고 꿈쩍도 않는다.

더 세게 목줄을 당기면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목줄 묶인 개의 저항심은 대단하다.


어제는 아무도 없는 공원에 호두를 풀어놓았다.

호두는 급하게 풀밭을 두 바퀴 돌더니

산책 내내 나만 쳐다봤다.

꽃 냄새를 맡으면서도 계속 나를 확인하고,

제 멋대로 뛰어가다가도 내가 다른 쪽으로 가면 화들짝 놀라 따라왔다.

목줄이 사라지자 저항심도 사라졌다.

아, 목줄이 없어 더 부자유한 아이러니라니.


네가 나를 묶었으면 저항이라도 할 텐데,

네가 나를 묶지 않았으니 저항도 할 수가 없구나.

네가 나를 묶지 않았으니

나는 스스로 목줄을 만들어 내 목에 묶을 수 밖에 없다.

네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나는,

네가 날 버리지 않기를 기원하며

매일매일 경건하게 네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다.

이 세상에 개로 태어난 나는,

그럴 수 밖에 없다.


잔인한 사람, 잔인한 세상.

영리한 당신은 내 손에서 자유를 빼앗아 가는 대신,

내 스스로 자유를 놓게 만들었다.

나는 스스로 당신의 개가 되었고,

당신은 손에 먼지 하나 묻히지 않고 내 주인이 되었다.

당신은 좋은 부모, 좋은 선생, 좋은 사장이다.

나는 착한 딸, 착한 학생, 착한 직장인이다.


부디 사랑하는 호두가

꽃내음에 정신이 팔려 길을 잃기를.

길고양이를 쫒다가 주인 따위 잊어버리기를.

어느날 목을 만져보고

원래 목줄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우리 어느 싱그러운 풀밭에서 만나기를.

아니,

나마저 떠나 너의 풀밭을 찾기를.

그곳에서 너의 꽃을 피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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