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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an 11. 2021

차이의 부정, 차이의 긍정 (2)

"타인은 어떤 구조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나와 다른 존재’를 마주했을 때, 오직 세 가지 반응만을 되풀이해 왔다. 첫 번째는 처음 K에게 그랬던 것처럼 ‘너와 나는 다르지만,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다’고 생각한 경우다. ‘나는 징징대지 않는데, 너는 왜 그렇게 징징대?’ ‘나는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너는 왜 그렇게 흐리멍덩하게 살아?’ ‘나는 남자들에게 잘 보이고 싶지 않는데, 너는 왜 그렇게 잘 보이려고 해?’ 이런 대상을 만나면, 상대에게는 반감이나 무시의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스스로에게는 우월감을 느꼈다.


 두 번째는 ‘너와 나는 다르지만, 네가 맞고 내가 틀리다’고 생각한 경우다. ‘나는 사업을 말아먹었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사업을 잘 해?’ ‘나는 우울하고 꼬여있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해맑아?’ ‘나는 특별하게 잘하는 게 없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타고난 재능이 많아?’ 이런 대상을 만나면, 상대에게는 동경의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스스로에게는 열등감을 느꼈다.


 마지막은 ‘너는 나와 다르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한 경우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이런 대상을 만나면 상대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별다른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텔레비전 방송에 신기한 사람이 나오면 조금 흥미롭게 보다가 곧 채널을 돌려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이 경우, 나는 그를 ‘만났다’고 할 수도 없다. 나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타인은 ‘타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감, 동경, 무관심. 내가 ‘나와 다른 존재’를 마주했을 때 느껴온 감정은 이렇게 세 가지뿐이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감정은 드러나는 양태만 다를 뿐, 사실은 하나의 생각에서 기인한다. 바로 ‘나는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생각을 기준으로 나보다 멀리 있는 대상에게는 ‘반감’을 느끼고, 나보다 가까이 있는 대상에게는 ‘동경’을 느끼고, 벗어나 있는 대상에게는 ‘무관심’을 느낀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를 만나든 내 기준에 따라 줄 세우기를 해온 셈이다. 나는 모든 ‘차이’를 ‘틀림’으로 환원시켰다. ‘차이’를 부정했다. 그것은 마치 각양각색 꽃들을 ‘크기’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줄 세운 뒤, 해바라기는 커서 예쁘고 개나리는 작아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과 같았다.


 그래서 K와의 일은 나에게 ‘차이’나는 사건이었다. ‘나와 다른 존재’에게 늘 반감, 동경, 무관심만 되풀이해서 느껴오다가, 처음으로 다른 감정을 느껴본 사건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K가 편하고 좋았다면, 그건 ‘차이’나는 사건이 아니었으리라. 나는 K가 불편하고 싫었다. 내 기준에 따라 K를 줄 세웠고, 그래서 K에게 반감을 느꼈다. 하지만 K가 과거에 마주했던 상황들을 되짚어보니, K에게 나의 기준을 들이미는 게 가당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K는 살아온 삶의 맥락이 다르기에 ‘나는 이래야 한다’는 기준 또한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나의 기준이 있듯, K에게 K의 기준이 있었던 것이다. 내 기준에 따라 K를 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K는 더 이상 나에게 ‘틀린 존재’가 아닌, ‘그저 다른 존재’가 되었다. 기준이 없기에 당연히 그녀에 대한 반감은 사라졌다. 나아가 그녀를 ‘틀린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인식하자, 신기하게도 그녀가 나와 ‘같은 존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도 나의 기준에 부합하려 최선을 다 하며 살아왔듯, 그녀도 그녀의 기준에 부합하려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존재’에게서 ‘동질감’을 느낀 첫 번째 순간이었다.




 나는 어떻게 ‘나와 다른 존재’에서 ‘동질감’을 느낀 것일까? 그때 한창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마지막 수업에 배운 몇 문장이 뇌리에 꽂혔다. 내가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준 마법 같은 문장이었다.


“고유한 의미의 타인은 그 어떤 누가 아니고 그래서 당신도 나도 아니다. 이런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그 타인이 어떤 구조라는 (...) 것이다.”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타인-구조의 위치에서 행동하는 주체들로부터 출발하여 그 구조 자체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따라서 타인을 '그 누구도 아닌 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들뢰즈는 ‘타인’을 어떤 고정된 하나의 인격체(‘그 어떤 누구’)로 보지 않는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걔 어떤 애야?”라고 물었을 때, “되게 성실하고 의리있는 애야.”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들뢰즈의 말이 맞다. 평생 ‘성실하고 의리있다'는 말을 들어온 사람도 연애에 푹 빠지면 갑자기 회사를 땡땡이 치고 친구들의 약속을 파토 내는 ‘불성실하고 의리없는' 사람이 되지 않는가. 심지어 하루라는 짧은 시간 안에서도 우리의 모습은 상황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 잠을 못자면 ‘예민한 사람’이 되고, 운동을 하면 ‘활력 있는 사람’이 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유쾌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싫어하는 일을 하면 ‘우울한 짜증내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들뢰즈는 ‘타인’은 ‘나’도 ‘당신’도, ‘어떤 누구’도 아닌, ‘구조’라고 한다. 우리는 어떤 고정된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어떤 상황(구조)을 마주하는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타인’을 인격체가 아닌 ‘구조’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타인을 볼 때 ‘그 사람’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이 과거에 마주했던 상황’을 보라는 뜻이다. 처음 K를 만났을 때, 나는 ‘K라는 사람’을 봤다. 그랬기에 K를 ‘외모 가꾸기 좋아하고 쇼핑 중독인 주체적이지 않은 여성’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한 친구를 통해서 K가 과거에 마주했던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K를 ‘어떤 누구’가 아닌, ‘구조’로서 보게 되었다. K를 ‘사람’이 아닌 ‘구조’로 보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나도 ‘K의 구조’에 있었다면 지금 K가 되었을 것이고, K도 ‘나의 구조’에 있었다면 지금 ‘내’가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나와 다른 존재’에게서 ‘동질감’을 느낀 이유였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마주한 수 많은 상황들의 합이다. 그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미래의 나’는 현재 내가 마주칠 상황들의 합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 사실을 K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느낀다.


그 후 K는 계속해서 변했다. ‘그때의 K’와 ‘지금의 K’는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변했다. K의 구조에 ‘철학’, ‘글쓰기’, ‘영화’, ‘새로운 친구들’이란 새로운 항들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K는 이제 쇼핑 중독도 아니고,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화신’도 아니다. K는 이제 더 이상 인조 속눈썹을 붙이지 않는다. K의 자연스러운 맨얼굴을 더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도 변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나의 구조에도 다양한 상황들이 추가되었다. 생각해보니, ‘K와의 만남’ 또한 나에게는 큰 항이었다. 나는 이제 사랑하는 이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화장하는 여성들이 어여뻐 보이고, ‘자본주의 화신’같은 모습 뒤에 숨겨진 가난의 상처를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타당한 삶의 기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와 K의 관계도 변했다. 아직 나와 K는 아주 친밀한 관계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가 더 행복한 삶을 살길 진심으로 응원하는 ‘호혜적인’ 관계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K가 조심스럽다. K가 ‘나와 다른 존재’이기에, 여전히 불편하고 이질적이다. 하지만 예전에 느꼈던 불편함과 지금 느끼는 불편함은 결이 다르다. 예전에는 불편해서 반감이 들었다면, 이제는 불편하지만 설레는 마음도 동시에 든다. 앞으로 K가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고, 앞으로 나와 K의 관계는 어떤 ‘꽃’을 틔울지도 궁금하다. 물론 앞으로도 K에 대한 불편하고 이질적인 마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와 K는 ‘차이’이고, 앞으로도 계속 ‘차이’일 테니까. ‘차이’를 긍정한다는 것은 이런 뜻인가 보다.


“당신은 불편하지만 매력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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