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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an 22. 2021

영토 안의 세상, 영토 밖의 세상 (1)

"다수파는 '아무도 아닌 자'이며, 소수파는 '모든 사람' 되기다."

(이전 글에 이어서)


 우리가 영토를 사수하기 위해 애를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영토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나에게 쏟아지는 차가운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서다. 내가 영토 안에 있었을 때는 한없이 따뜻했던 사람들도 내가 영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거나 묘하게 거리를 둔다. 심지어 가족들조차 그들이 용납하는 사회적 테두리를 벗어나면 따뜻한 눈빛을 거두고 경멸의 눈빛을 보낼 때가 있다. 그 차가운 눈빛들이 내면에 각인되어, 우리는 영토 밖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평생 동안 자기 영토를 사수하는 삶은 불가능하다. 유치하지만,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했던 공상은 나름의 통찰이 있었다. 논리적으로만 따져도, 이 세상 최고 권력자가 되지 않는 이상,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원 밖으로 밀려나는 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신입 사원 때부터 승승장구하며 초고속 승진을 했던 이도 언젠가는 회사에서 물러나야 하는 순간이 온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조차 임기가 끝나면 자신이 있던 영토에서 물러나야 한다(그게 싫어서 많은 독재자들이 임기 중에 종신제를 시도한다). 그리고 평생 영토에서 밀려나는 경험을  비껴온 이도 언젠가는 ‘젊음’이라는 영토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타이밍의 차이일 뿐, 누구에게나 ‘영토에서 밀려나는 순간’은 온다.

 



 나의 경우, 그 순간이 일찍 찾아온 편이다. 아마도 내가 다른 걱정 없이 온전히 ‘영토’ 경쟁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기에, 그 한계 또한 빨리 찾아오지 않았을까 싶다. 학창시절부터 쉴 새 없이 달려오다가 대학 졸업 후에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그로부터 5년 동안 사업을 성공시키려고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사업에 실패하고 절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뭘 그리 유난이었나 싶지만, 그때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나를 ‘루저’라고 손가락질 할 것 같았다. 그 위축감 때문에 친구들은 물론 가족과의 만남도 피해 다녔고 어쩔 수 없이 만나야할 때는 함께 있는 시간 내내 마음을 졸였다. 그 당시 내가 살던 동네에 IT회사가 많았는데, 혹시라도 퇴근하는 직장인 무리를 마주치면 내가 더 작아져 보일까봐 밖으로 산책조차 나가질 못했다. 집에서 멍하니 인터넷을 하다가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사업했던 친구들이 승승장구하는 이야기가 기사나 SNS에 뜨면 심장이 조여 왔다. 오프라인에서든 온라인에서든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사람을 만나는 순간, 그 사람의 시선을 통해 작아진 나를 보게 되니까. 결국 나는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세상과의 연결을 끊은 채, 하루 종일 유튜브 영상만 보는 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망가졌던 것일까? 사실 사업이 망해서 내가 실질적으로 힘들어진 부분은 단 하나도 없었다. 빚더미에 앉은 것도 아니고, 먹고 사는 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다만 항상 원 안에 들어가는 삶을 살아가, 처음으로 원 안에 들어가지 못한 경험을 한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입장의 변화가 모든 삶을 뒤집어 놓았다. 나는 항상 사회가 정해놓은 원 안에 들어가는 삶을 살았다. 원 안에 들어가면 사회가 약속한 칭찬과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부모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칭찬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던 친구들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수근거림의 대상이 되었다. 그 차가움이 무서워서 고등학교 때 수능을 망치고 모든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영영 잠적해버린 아이도 있었다. 나는 원 안에 들어와 원 밖을 보며, 원 안에는 달콤한 칭찬과 인정이, 원 밖에는 차가운 멸시와 소외가 있다는 사실을 학습했다. 원 안의 세상이 달콤할수록 원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욕심을 커졌고, 그만큼 원 밖의 세상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불안도 커졌다. 그 욕심과 불안이 나를 계속 뛰게 만들었다. 계속 해서 더 작은 원에 들어가 달콤함을 얻고 차가움을 피했다. 그런 경험이 반복될수록 ‘영토를 사수해야 한다’는 집착은 더더욱 커졌다.


  그래서 처음으로 원 안에 들어가지 못했을 때, 그토록 절망한 것이다. 항상 원 안에서 원 밖을 보다가 처음으로 원 밖에서 원 안을 보는 상황이 되었다. 원 밖에 있으니 내가 들어가지 못한 그 원이 너무나 간절했다. 나와 같은 시기 사업을 시작해 성공시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친구들. 원 안에 들어간 그들이 누리는 칭찬과 관심이 너무 부러웠다. 그 칭찬과 관심의 달콤함을 알기에 더 부러웠다. 반대로 내가 원 안에 있을 때 원 밖을 보며 했던 생각들이 나에게 돌아올 생각을 하니 죽고 싶었다. ‘너는 낙오됐어.’ ‘네 능력은 거기까지인가 보다.’ ‘더 열심히 했었어야지.’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원 밖의 세상이 얼마나 차가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방 안에 갇혀 망부석처럼 내가 가닿지 못한 그 원만 쳐다보고 있었다. 유토피아는 그 원 안에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딱 두 개 뿐이다. 첫 번째 방법은 다시 도전해서 원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친구 중에 삼수를 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 이가 있다. 그녀는 원 밖에 있었지만, 원 안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정직하게 직면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결국 원 안에 들어갔다. 사회도 우리에게 이 방법을 권한다. 우리가 영토에서 밀려났을 때 사회는 이렇게 속삭인다. “다시 한 번 도전해봐.” “안되면 될 때까지 하는 거야.” “성공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하지만 다시 도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예를 들면 당장 생계가 걱정인 이들에게 첫 번째 방법을 권유하는 것은 폭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경우는 아니었지만, 워낙 어려서부터 경쟁에 시달려온 탓에 사업이 망한 순간 신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고갈된 상태였다. 원 밖에 밀려나는 게 너무 무서웠기에, 머릿 속에서는 끊임없이 “다시 도전해야 해!”라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몸은 꿈쩍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업을 해보려고 시장 조사를 나가면 구역질이 났고, 사업에 ‘사’자만 들어도 눈물이 줄줄 흐를 정도였다. 그때 정말 절망스러웠다. 다시 도전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까.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들뢰즈의 말처럼, 모든 ‘생성’은 ‘차이’에서 시작되는 것이 맞다. 그때까지는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면 됐다. 하지만 그때는 다시 도전할 수 없었다. 그 ‘차이’가 새로운 길을 열었다. 내 시선은 항상 내가 들어가지 못한 그 원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원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원 안에서 원 밖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저 안에 들어가지 못할 거,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에 뭐가 있는지 보기라도 하자는 마음이 생겼다. 때마침 내가 스타트업을 하는 내내 열심히 글을 챙겨봤던 한 철학자가 글쓰기 수업을 한다는 공지를 올렸다. 그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글을 쓰고 철학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만나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는 뭔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영토 밖의 사람이니까. 심지어 영토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온 사람이니까. 삶의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 직관도 더 예리해지는 것일까? 나의 직관은 맞았다. 나는 그를 만나 영토 밖의 삶을 긍정하는 방법을 배웠다. 나아가 진짜 삶은 영토 밖으로 나온 순간 시작된다는 사실 또한 배웠다. 시선을 원 안에서 원 밖으로 돌리기. 원 밖으로 밀려났을 때 절망에서 벗어나는 두 번째 방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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