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인데 편안했던 사람에 대하여
그가 마음에 들었다.
너무 과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사람.
말하자면 딱 적당한 남자였다.
적당한 학교, 적당한 전공, 안정적인 분위기의 이야기들.
그의 말투와 태도에는 과시도, 불안도 없었다.
이런 ‘적당함’이 사람을 묘하게 편안하게 만든다.
그를 보며 괜히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충분히 사랑받으며 살아온 사람일까.
괜한 비교와 질문이 스쳤지만,
그 감정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마음 한편을 건드렸을 뿐이다.
미리 준비해 둔 책 선물을 건넸다.
편지도 함께.
그가 책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시집까지 좋아할지는 확신이 없었다.
괜한 걱정이었다.
기뻐하는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마음을 주는 일에 이렇게 솔직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요즘 얼마나 있을까.
그는 매너가 있었다.
자칫 불편할 수도 있는 디자이너의 자연스러운 제품 소개에도
휘둘리거나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이야기를 들었다.
경청하는 태도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디자이너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았던 것 같다.
예쁜 커플이라는 말과 함께 작은 선물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는
공감과 적당한 리액션이 섞여 있었고,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화법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했다.
괜히 배우고 싶어졌다.
국숫집에서는 물을 먼저 떠다 주고,
내 앞에 놓인 그릇을 자연스럽게 챙겼다.
아주 사소한 배려들이었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오히려 조금 낯설었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는 친절이 오랜만이라서.
처음 만난 날, 그는
청바지에 구두, 후드 집업에 코트를 입고 있었다.
평범한 차림이었지만
나름대로 신경 쓴 흔적이 느껴졌다.
그게 괜히 좋았다.
날씨는 추웠고, 우리는 둘 다 조금 긴장해 있었을 것이다.
그는 내 첫인상이 좋았다고 말했다.
나는 반대로, 처음 마주쳤을 때 잠깐 시선을 피했다.
사진보다 더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는 다정했지만 과하지 않았다.
그 ‘과하지 않음’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내가 눈 오는 날을 싫어한다고 하자
오늘부터는 싫어하겠다고 말했다.
가볍게 던진 말이었는데 이상하게 설렜다.
기억나는 말은 많았지만,
이상하게 정확한 문장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기분만 또렷하다.
카페에서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태도는 평범했는데, 말이 잘 맞았다.
내 장난을 흘려듣지 않고 받아주고,
칭찬으로 돌려주는 사람.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이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질 만큼.
그날은 이상하게
과거의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았다.
오래 마음을 차지하던 이름들도
그날만큼은 조용했다.
잊는다는 건 아마
이런 순간들이 쌓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편안했고,
‘오빠’라는 호칭은 생각보다 쉽게 입에 붙었고, 좋았다.
예쁘다는 말을 가볍게 건네주고
계획이 틀어져도 차분했고
내 장난을 웃으며 받아주던 사람.
어쩌면 나와 비슷하거나,
어쩌면 나보다 조금 더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 같아서
그날의 만남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