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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May 10. 2021

어머니의 백발, 검은 머리 되다

일상 이야기

날씨를 보지 않았다.

이미지 :Pixabay

모 학교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되어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학교 운동장에 임시 선별 진료소가 차려지고 학생들은 등교와 동시에 전원 코로나 검사에 돌입했다. 고교학점제 시행 학교라 반의 구분이 없이 교과가 운영되다 보니 확진자가 발생 시 취약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긴급 검사로 학생들의 검사 결과가 6시간 만에 속속 집계된다. 다행히 다른 학생들은 전원 음성 판정이다. 학원은 정보공유가 필수가 혹시라도 학교에서 누군가 확진 소식이 들려오면 초긴장상태가 된다. 학부모님들한테서 연락이 속속 들어온다. 그나마 안심이 된다.


토요일이 5월 8일 어버이날이라 1년 넘게 영상통화만 해 오던 터라 이번에는 꼭 다녀와야지 속으로 결심을 했었다. 코로나가 터진 후 계속 계획을 잡고 움직이던 중 매번 확진자들이 발목을 잡았었다. 얼굴 한 번 보자고 갔다가 괜히 전염이라도 될까 싶은 마음에 전전긍긍하며 미뤄온 것이었다. 금요일에 확진자만 없으면 다녀와야지 했던 마음에 실망이 찾아온다.  학교 발 확진자 소식에 갑자기 계획을 철회했다. 마음을 비우고 소식을 기다리던 중 오후 7시가 되어서야 학원에 오는 모든 학생들이 음성이라는 연락이 왔다.


철렁했던 가슴이 시원해진다. 그렇다고 모든 게 완벽한 것은 아니기에 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결국 밤늦게서야 당일치기로 잠시 얼굴만 뵙고 돌아오기로 결정하고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자 최대한 간단히 짐을 챙겨 서둘러 출발한다. 너무 서두르다 보니 뭐하나 준비한 것이 없다. 이곳저곳 들러 간단한 음식재료와 과일 등을 서둘러 챙겨 출발하니 어느새 10시다. 최대한 빨리 가야겠다 싶어 가속을 한다. 고속도로를 접어들어 가속을 하는데 차가 휘청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강풍이다. 5월, 태풍도 없는 상황에서 태풍급 바람이 불고 있다. 저 멀리 산을 바라보니 산은 온통 뿌옇게 흐린 것이 눈으로 봐도 미세먼지가 최악일 것 같다. 확인을 하니 '미세먼지 매우 나쁨'이다. 그것도 전국이 모두 똑같이 지도를 빨갛게 물들여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차피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새로 마스크를 쓴다고 부산은 안 떨어도 된다는 것이다. 웃지 못할 현실이다.



세월을 거꾸로 사시는 어머니를 만났다.

이미지 :Pixabay

간다는 연락도 없이 집으로 들어가자 어머니는 맨발로 달려 나오신다.

"뭐하러 왔어! 코로나 끝나면 다니라니까."

"언제 끝날 줄 알고 기다려요. 기다리다 목 빠지겠구먼."

"오면 나야 좋지만, 너희들 힘든데 뭐하러 다니고 그래."

"애들이 할머니 보고 싶다고 해서 왔지요."

"아이고~!! 내 새끼들, 나도 니들보다 손주들이 더 보고 싶더라."


오랜만에 방문한 자녀들이 반가운지 어머니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허그를 해 주신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식사 준비부터 하려고 하시는 어머니를 말리고, 배고프니 빨리 먹을 수 있게 막국수를 먹자고 하고는 서둘러 주문한다. 막국수와 수육은 금방 준비가 돼서 바로 식사 준비를 끝냈다. 물김치와 감자전은 별미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식사시간이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미지 :Pixabay

식사를 마치고 답답했던지 어머니는 머리에 쓴 모자를 벗으셨다.

"아니, 어머니 회춘하세요?"

"주름이 자글자글한데 뭔 소리야?"

"지난번 볼 때는 머리카락이 온통 백발이더니 지금은 머리카락이 검은색이 됐어요?"

"아~!! 그거? 내가 보약을 하나 먹어서 그렇지"
"무슨 보약을 혼자 드셨기에 머리카락이 까맣게 물들어요?"

"작년에 내가 산에  갔다가 적수호를 만났지 뭐냐. 그래서 그걸 캐서 닭 한 마리 사서 푹 삶아서 먹었지. 그랬더니 그게 약효가 좋은가 봐. 머리카락이 속에서부터 까맣게 새로 자라기 시작하더라."

"이야~!! 백수호도 아니고 적수호를 만났어요? 우리나라에 잘 없는데?"

"나도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만났다. 팔까도 생각했는데, 남들은 돈 주고도 사 먹는데 나도 한번 먹어보자 싶어서 먹었다. 그랬더니 이상하데, 다리에 힘도 붙고 머리도 검어지더라."

"잘하셨어요. 그래도 이제는 산에 그만 다니세요.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시려고 아직도 다니세요?"

"이제 안다녀. 다니다 내가 다치면 너희들 고생시킬까 봐 그만 다니련다."


80이 다 되신 어머니지만 산에서 만큼은 웬만한 젊은 사람들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산을 잘 타신다. 지난주에는 인천에 사시는 형님이 내려와 산나물을 캐러 간다니 따라가신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같이 갔었는데 오히려 형님이 꽁무니만 쫓다가 내려온 꼴이 됐다고 한다. 그래도 혼자 산에 다니시는 건 불안해서 자식들이 절대로 가지 마시라고 신신당부한다. 혹시나 싶어 형님이 거의 매주 내려오신다. 말리려 내려와서는 형님이 약초도 캐고, 버섯도 따러 산에 다닌다고 한다. 말리는 건지 본인 취미생활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미지 :Pixabay

어머니는 적수호를 만난 이야기며, 그동안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간다. 하룻밤 잠을 자고 오면 좋겠지만 일도 있고 해서 자리를 털고 일어서니, 기다리라시며 이런저런 것들을 잔뜩 챙겨주신다. 지난주 산에서 캐온 자연산 참나물과 더덕, 잔대, 백추 상황버섯 등 등...


짐을 꾸리시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신기해서 계속 바라본다. 분명 검은 머리 한 홀도 없이 백발이셨는데 염색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저렇게 검은 머리가 되셨을까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머리에 좋다며 검은콩, 검은깨 같은 음식을 아무리 먹어도 백발만 늘어간다는데 온통 백발이던 어머니가 검은 머리카락이 더 많은 흑발이 되셨으니 다시 봐도 신기하다.


젊어 고생만 하시던 어머니가 복을 받으셔서 연세를 거꾸로 드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산을 좋아하셔서 산에서 나는 약초의 효능을 거의 다 알고 계시기에 몸에 좋은 약재는 가끔 당신이 스스로 골라서 드신다. 때로는 차로 끓여 드시고, 때로는 닭에 넣고 삶아서 드시고, 때로는 술에 담그시기도 하신다. 잘 아시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의원에 확인하고 드시라고 하셔도 당신이 아시는 것만 드신다며 괜찮다고 우기신다.


다른 약재야 어떻게 됐든지, 참 다행인 것은 독성도, 부작용도 없이 백발이 검은 머리로 변해가시는 모습이다. 어머니의 검게 자라나는 머리카락처럼 건강도, 연세도 회춘하는 삶이 되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코로나로 널뛰던 하루가 어머니의 검은 머리카락으로 다 보상받는 듯 한 기분이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우리들 곁에서 함께 살아계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진:소향, 작약과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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