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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Jun 21. 2021

버즈, 날개 잃다.

소모품이지만 정이 들었다.

체력을 위한 희망, 달리기를 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약해지는 체력을 붙잡기 위해 노력을 한다.

일주일에 두 번은 뛰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 이상 뛰면 좋겠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야박하다.

기껏해야 3번 허락하기도 가뭄에 콩 나듯 하다.

 

지난 금요일 어쩌다 시간이 되기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습하고 더운 날씨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3km쯤 뛰었을 때였던 것 같다.

흐르는 땀이 버즈 이어폰 틈으로 스며들었는지 귓속이 젖는 기분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버즈를 빼 바지 주머니에 넣고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아 멈췄다.

휴대폰을 꺼내 거리를 확인해보니 7.5km를 뛰었다.

옷이 땀으로 젖다 못해 흘러내리고 있었다.

숨이 차고 너무 힘들어 아무 생각도 안 났다.

무의식적으로 집에 도착했고, 젖은 옷을 바로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열기를 식히기 위해 찬물로 정신없이 샤워를 했다.

샤워, 나도 화단에도 필요한 시간

샤워를 마치고 개운한 기분에 마당을 한동안 서성거렸다.

이미 한차례 꽃을 피웠던 장미는 새순이 돋아 세력을 확장하기 바빴다.

수국은 이제 한창 피워 올린 꽃으로 화려하게 치장을 했다.

그런데 분수에 맞지 않게 많은 꽃으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뜨거운 열기에 수분이 부족해 축 늘어진 식물들이 보였다.

한바탕 화단에도 시원하게 샤워를 시켜줬다.


사람이 물 없이 견디기 힘들 듯 식물들도 마찬가지다.

더위가 심한 날에는 수분이 부족한 식물은 어깨가 축 처져있다.

해 질 녘 시원하게 샤워를 시켜주면 늘어졌던 어깨에 힘이 솟는 게 눈에 보인다.

생명이 있는 곳에 물은 그만큼 엄청난 힘이 있다.


세탁기, 절망을 토해냈다.

화단이 한바탕 샤워를 마치고 생글생글 웃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세탁기에 돌려놓은 옷이 생각이 난다.

지금쯤 세탁이 끝났겠다 싶어 세탁실로 갔다.

역시 세탁기는 세탁을 끝내고 전원이 꺼져 있었다.

세탁기 문을 열고 세탁물을 들어 올렸다.

"딱~! 또르르..."

"엥! 뭔 소리지?"

소리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헉~~!!!"

거기에는 깨끗하게 세탁된 버즈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달리기를 하다가 바지 주머니에 넣은 버즈를 잊어버린 채 옷을 벗어 그대로 세탁기에 넣었던 것이다.

그리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룰루랄라 샤워를 하고 여유롭게 시간까지 보냈던 것에 놀랐다.

'설마 벌써 치매는 아니겠지?'

'어떻게 그 정도로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지?'

'이거 정말 심각한 거 아닐까?'


버즈가 세탁기에 젖어 고장 난 게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이 지나도록 주머니 속에 버즈가 있다는 기억을 못 했냐는 것이었다.

황당한 마음에 옆지기한테 상황을 이야기하고 물어본다.

"혹시 나 치매 증상 아니야?"

"에이~, 집에 잘만 찾아오던데~"

"집이야 습관적으로 찾아오는 거니까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걱정도 팔자세요. 그 정도가 치매면 치매 안 걸린 사람 하나도 없겠네. 하하하"


혹시나의 기대

웃음을 뒤로하고 버즈를 들고 푹신한 이블 위에 '탁' '탁' 던져서 털어냈다.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던 버즈가 몇 번의 동작 뒤에야 이블에 물을 살짝 토해냈다.

다른 왼쪽 버즈는 아무리 해도 그런 반응이 없다.

'왼쪽에는 물이 안 들어가서 그런가?' 하며 버즈 두 개를 다시 드라이기로 말려본다.

한참 드라이기로 바람을 쏘이다가 마음의 정리를 한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세탁기에 넣고 한 시간을 돌렸는데 고장 안 나는 게 비정상이겠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버즈를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 올려놓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버즈를 충전기에 넣으니 충전기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어?!!"

왠지 희망의 불이 켜진 듯 기대감이 '훅'올라온다.

혹시나 싶어 왼쪽, 오른쪽 번갈아가며 넣었다 빼 보았다.

둘 다 빨간불이 들어왔다.

기대감에 부풀어 충천을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사용될 만큼의 충전은 됐겠다 싶어 휴대폰에 연결을 시도했다.

'디바이스에 연결할 수 없어요.'

"아~~~~!!!!"

순간적인 접속 오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접속을 시도했다.

여전히 '디바이스에 연결할 수 없어요.'라는 메시지가 뜬다.

'역시 안되는구나. 그럼 그렇지 뭐. 세탁기에 돌렸는데 되는 게 이상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충전기에 버즈를 넣고 옆으로 밀어놓았다.


버즈, 한쪽 날개를 잃다.

월요일 아침, 직장과 작은아이의 학교가 같은 방향이라 등교를 시켜주려고 기다렸다.

준비를 다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뭘 그리 꼼지락거리는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8시에는 출발해야 하니까 그때까지 준비 안되면 혼자 갈게."

"잠깐마~안~!!"

"아빠도 회의 있으니까 빨리 준비해서 나와."


그렇게 시간을 통보하고 돌아서는데 어제 밀어놓은 버즈가 눈에 들어왔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왠지 다시 연결해보고 싶었다.

버즈 충전기를 열어 오른쪽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띠~링!"

"어~!! 된다."

귀에 꽂자 블루투스 연결음이 들렸던 것이다.

음질은 어떨까 싶어 재빨리 음악을 틀어봤다.

음질도 괜찮게 재생이 되고 있었다.

왼쪽 이어폰도 마저 귀에 꽂았다.

그런데 왼쪽은 그저 무거운 침묵만 흐를 뿐이다.


다시 시도해도, 왼쪽만 연결시켜도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버즈의 왼쪽 날개를 잃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른쪽 날개만이라도 살아났다는 것이다.


"아빠~! 빨리 가요. 늦었다고 잔소리하더니..."

"어~! 아, 알았어. 가자."

버즈에 정신 팔린 사이 둘째가 나와 재촉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가는 사이에도 버즈의 왼쪽 날개에 대한 미련이 남는지 눈은 계속 그곳에 머무른다.

그동안 운동 메이트로 정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외로운 시간을 함께해준 고마움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재촉하는 둘째의 목소리에 이끌려 아쉬운 발걸음을 다시 돌렸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포기했던 버즈의 기사회생으로 기분 좋은 시작이 될 것만 같다.

그렇게 믿으며 차에 올라 상쾌하게 출발을 해 본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치매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버즈의 고장이 문제였던 것 같다.

버즈의 한쪽 날개가 살아나니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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