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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May 17. 2021

여왕, 그 화려한 추락

Photo-essay

글을 짓는다는 것은 밥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작은 한 톨의 쌀알이 모여 한 그릇의 밥이 됨과 같이, 작은 글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글자들만 이야기를 짓는 것도 아닙니다. 

무심코 찍은 휴대폰의 작은 사진들이 이야기를 짓기도 합니다.

때로는 눈을 감는 순간 들려오는 작은 새소리조차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오늘은 화려하게 보이던 오월의 여왕이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합니다.

가시 돋친 날 선 감정으로 거리두기를 원하는 줄 알았던 그녀가 왠지 측은해집니다.

오월의 여왕이 활짝 미소 짓는 날이었습니다.

이런 날은 하루 종일 모델이 되는 날입니다.

사람들이 대문을 기웃거리고, 카메라를 들이밀기 때문입니다.

그런 불편함에도 여왕은 아무런 내색도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고된 날들이 지나고, 풍성한 향기마저 넉넉한 주말이 시작되었습니다.

파랗던 하늘이 점점 인상이 찌푸려집니다.

황사 때문일까요? 아니면 바람 따라 일렁이는 꽃가루 때문일까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뭔가 기분 나쁜 일들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꽃잎을 간질이던 바람마저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는 듯합니다.

한동안 인상을 쓰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그저 처량하게만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살며시 숨죽여 지나치는 나그네인 줄 알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빗물이 어느새 점점 많아지더니 하루가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도 여전히 하늘엔 먹구름만 가득합니다.

그칠 듯 그치지 않는 비는 스펀지처럼 화단이 흡수하고 있습니다.

수용할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르면 아마도 야생화들이 힘들어질 것입니다.

계속 내리는 비에 오월의 여왕도 힘을 잃고 있습니다.

화려한 옷을 벗어 버리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크고 화려한 만큼 늘어나는 작은 무게도 감당하기 벅찬 모습입니다.

아마도 크고 화려한 모습을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다 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중되는 아주 작은 무게에도 무너져 내리는 추락을 맞이합니다.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빛나는 시간이 되더라도 저 아이들은 아마 회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화려함 뒤에 오는 추락은 늘 그렇게 극단적인 모습이 됩니다.

우리들 삶에도 화려한 날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날들도 때가 되면 오월의 여왕처럼 아름다운 모습은 내려놓고 세상에 고개 숙일 날들이 올 것입니다.

받아들이기 싫어 거부해도 언젠가 닥쳐올 현실임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날들이 올 때, 너무 추하지 않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내 존재하는 곳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렇게 내려놓기를 소망해 봅니다.


비가 온 뒤에는 새로운 생명들이 또 힘을 얻어 화려한 삶을 이어 갈 것입니다.

때를 기다려 더 화려한 꽃들도 피어나 세상에 웃음을 전할 것입니다.

다음 세대의 화려한 비상에 가슴 아파하기보다는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추락하는 자신을 바라보기보다 비상하는 다음 세대에 손뼉 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기를 희망합니다.

그들 앞에 무너지는 초라함이 아닌 멋진 석양의 노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오늘도 여전히 비는 내리고, 짙어지는 어스름이 커피를 닮아갑니다.

오월의 여왕이 주는 모습은 우리들 삶으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아주 작은 몸짓으로도 삶의 진리를 전하는 오월은 그렇게 여물어 갑니다.

가슴에 오롯이 간직될 울림을 전하는 한 장의 작은 추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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