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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Jul 21. 2021

며느리는 리필커피를 좋아해

일상 이야기

"Good morning~!!"

"안녕하세요. 부사장님~!!"

"그래~, 별일 없나?"


잔뜩 멋 부린 부사장이 사무실에 들어서며 하는 첫마디 인사는 "Good morning~!!"이다. 직원들을 모두 일어서서 웃으며 인사를 한다. 부사장이니 싫어도 굳이 밑 보일 일이 없으니 일어설 수밖에 없다. 일어서는 모습을 뒤에서 보는 내 눈에는 직원들의 불편한 속내가 보인다.

'어휴~ 오늘은 왜 왔데~?'

'거드름 피우며 하는 행동이 뭔 쓸데없는 소릴 하려나 봐~!'


직원들의 직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부사장은 직원들 앞에 의자를 당겨 앉는다. 

"강주임. 자네 '커피 한잔 주세요'를 영어로 어떻게 하나?"

"A cup of coffee, please.라고 합니다."

"어, 맞아~! 잘 아네."

"감사합니다."

부사장의 살짝 당황한 모습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이때부터는 상대방이야 듣던 말던 혼자 이야기를 한다.


이번에 내가 미국에 있는 아들 집에 다녀왔어.
아들 녀석 둘이 다 미국에 사는데, 내가 미국에 들어가면 두 달 정도 머문단 말이야.
내가 가면 며느리들이 그렇게 좋아해. '아버님, 아버님!' 하면서 말이야.
왜 좋아하냐면, 내가 미국에 가면 한 집당 한 5천만 원씩 주거든.
그러면 입이 아주 귀에 걸리지.
내가 미국에 가면 아침마다 '파~악~'을 걷거든. 한 바퀴 돌고 나서 식당에서 아침을 먹어.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가면 제일 어려워하는 게 음식 주문하는 건데, 나는 아주 좋아.
내가 원하는 레시피로 주문을 해서 먹으면 맛이 아주 기가 막혀.
우리나라는 주는 대로 먹어야 하잖아. 거기서는 내가 넣고 싶으면 넣고 빼고 싶으면 빼면 돼. 아주 좋지.
음식과 커피를 한 잔 주문해서 다 먹고 나면 커피를 리필을 한단 말이지. 
거기는 리필해달라면 다 해주거든.
커피 한 잔을 리필해서 들고 집에 가서 며느리한테 주면 그렇게 좋아해.

순간 나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리필 커피를 받아서 며느리에게 줬다니 말이다. 그 며느리는 자신이 마신 커피가 시아버지가 마시던 잔에 리필해서 가져다준 커피라는 걸 알고나 있었을까? 하긴 시아버지가 가져다주시는 커피를 "저는 커피 안 좋아해서요."라고 할 수 도 없었을 것이다. 


부사장은 그렇게 한참 동안 자신의 미국 생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직원들은 고개만 까딱까딱하고 앉아서 일도 못하고 듣기만 했다. 그러다 핑곗거리가 생기면 재빨리 자리를 이탈했다.


자신의 일화를 영어를 섞어가며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고서는 점심 약속이 있는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러더니 막내 여직원한테로 향했다. 

"김양~!"

"네?"

"거 고객들한테 주는 선물 있지?"

"네."

"그거 서너 개만 줘봐."

"서.. 서너 개요?"

"응. 우리 애들이 그걸 그렇게 좋아해."

"아.., 네."


막내 여직원은 어쩔 줄 몰라하며 나를 쳐다본다. 내가 줘도 된다고 고개를 까딱하자 선물을 꺼내 종이가방에 담아서 내준다. 부사장은 그렇게 고객을 위한 선물까지 챙기고 나서야 사무실을 나간다. 


"부사장님은 왜 그래요? 돈도 많다고 매일 자랑하시면서.."

"그러려니 생각해요. 젊은 시절부터 유명한 사람이니 그 버릇이 어디 가겠어요?"

"그래도 너무하잖아요. 고객을 위해 준비한 선물인데, 매번 오실 때마다 달라고 하시잖아요."

여직원의 볼멘소리에 남직원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한 마디 한다.

"내가 말이야,  아침에 일어나면 '파~악~'을 걷거든"

목소리 흉내를 잘 내는 그 직원의 한 마디에 사무실은 온통 웃음바다가 된다.


돈은 많은데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자신만 알고 남에 대한 버려는 없다. 어디를 가나 시끄러운 상황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아끼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아끼면 문제가 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닌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기 때문이다.


우리 부사장이 그렇다.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어찌 보면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사람 같다. 어디를 가도 대놓고 싫은 내색은 않지만 가급적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한결같다. 안 끼워주면 동네방네 시끄럽기 때문에 끼워주기는 해도 동행하기는 싫어한다.


돈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노력하고 아껴서 모았을 것이다. 그러니 인정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렇게 모은 돈을 어떻게 쓰느냐도 상당히 중요하다. 자신이 그만큼 많은 돈을 벌었다면,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 받은 도움의 극히 일부를 사회에 환원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인정받고, 환영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꼭 도움받은 사람에게 돌려주라는 말이 아니다. 아주 작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 마음을 조금만 쓴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더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늘 점심에는 직원들에게 시원한 커피 한잔 사야겠다. 좋아할 직원들 표정을 생각하니 별것도 아닌데 내 마음이 즐거워진다. 오늘 하루도 기분 좋은 시작이 될 것 같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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