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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Aug 14. 2021

1년이 된 일상

돌아보는 글

사진 :Pixabay

2020년 8월 8일은 나의 브런치 생일이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면서도 나는 브런치에 대해 1도 모르는 브린이였다. 브런치에 입성하고 나서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었다. 매끄러운 글과 적절한 어휘, 개성이 묻어나는 글들을 보며 소심 해지는 나를 보았다. 때로는 '내가 어떻게 브런치 심사를 통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기소침했던 적도 있다. 


다른 작가님들을 보면 브런치에 입성하기도 전에 이미 많은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블로그에 발행된 글조차 몇 개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20년 5월부터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니 의기소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코로나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코로나 이전에 나를 돌아보면 무의미한 낭비의 시간은 아니었을까. 

그 당시 나는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흥청망청 아낌없이 시간을 사용했다. 그나마 약속이 없던 주말에는 아이들을 핑계로 이리저리 다니기에 바쁜 나날이었다. 내 차의 주행거리는 매년 2만 킬로미터 이상을 찍었고, 그만큼 도로에는 낭비했던 시간들로 흘러넘쳤다. 잠시의 쾌락들이 시간에 대한 생각들을 잊게 했던 것 같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무료한 나날이 지속되자 그것을 벗어날 뭔가를 찾아야 했다. 찾다 보니 마당에 화단이 바뀌었고, 식물들이 넘쳐났다. 그 틈새로 피어나는 잊었던 글자들이 하나 둘 자라났던 것 같다. 그 시작이 다시 찾은 블로그였고, 하나 둘 적립되던 글자들이 글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우연히 브런치를 접하게 되었다. 브런치에서는 글 쓰는 사람을 작가라 칭했다. 글을 쓰기에 작가라는 말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나 잠재의식 속에 있는 작간의 이미지는 책을 발행한 사람들이었다. 작가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인이었고, 글을 쓰는 전문가라는 인식이 자리했었다. 어쩌면 그 작가라는 말에 끌렸던 것이었을까.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지 :Pixabay

브런치 작가는 아주 어렵지만은 않은 운전면허 시험과도 같았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축한다는 메일을 받고 정말 작가라도 된 것처럼 뭔가 써야 할 것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뭔가 폼나게 글이 써질 줄 알았고, 또 그렇게 될 줄만 알았던 것이다. 현실은 달랐다.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지만 글은 산으로 갔다. 폼나는 글 이기보다는 볼품 없이 찌그러진 양은 냄비와 같이 요란하기만 했다. 그런 모습을 알면서도 놓지 않은 이유는 놓는 순간 이전의 삶처럼 무의미하게 시간을 소비할 것 같은 불안감이었다.


브런치 1년, 이제는 글쓰기에 마음을 비웠다. 마음을 비운다고 글쓰기를 놓는다는 말은 아니다. 글은 쓰되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써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그저 물 흐르듯 써 내려가 본다. 쓰다가 막히면 그냥 그대로 저장 버튼을 누르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다른 글감이 떠 오르면 다시 그 글감을 향해 손가락을 움직여 보기도 한다. 그런대로 글이 되면 발행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짬을 내 중단된 글들을 다시 끄적여 보기도 한다. 그렇게 글쓰기는 일상이 되었다.


가만히 보니, 아직도 나에게 욕심은 남아 있다. 그러니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직장생활을 하며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다들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하루에 하나 이상의 글을 발행하고 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충분히 욕심으로 볼만 하다. 어쩌면 책을 하나 출간하고 싶은 것 같다. 뭔가 내가 살아온 흔적 하나쯤 만들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만큼 낭비하던 시간을 이삭 줍듯 재활용한 것일 테니 말이다. 


연휴가 시작되었다. 예전 같으면 도로에 시간을 흘리며 짧은 쾌락을 좇아 세상을 휘젓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어떠한가. 커피에 얼음 동동 띄워 시원함을 더하고, 커피 향 가득 흘려놓은 책상에 앉아 토닥토닥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작가님이 댓글에서 나에게 했던 말처럼...


아침부터 가을이 내리고 있다. 너무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모습으로 살며시 다가오고 있다. 이 비로 목마른 대지는 갈증이 해소될 것이고, 여름은 또 한 발자국 두로 물러설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글을 쓸 것이다. 다가오는 가을에는 깊어지는 하늘만큼 내 글에도 깊이를 더해가는 날들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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