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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Mar 29. 2022

그녀는 아파트를 버렸다

주택에 사는 맛

"저 한옥 계약했어요."

"네, 네~에? 갑자기요?"

"이제는 애들도 다 컸고, 어쩌다 한 번씩 집에 들어오니까 미니멀도 괜찮다 싶었어요."

"그래도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니에요?"

"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인연이 되네요."

"그런데 한옥을 계약할 생각을 하셨어요?"

"전부터 아내가 살고 싶어 했던 집이 있었는데 집주인이 안 판다고 해서 포기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사정이 생기면서 팔겠다고 연락이 와서 주변 시세보다는 좀 저렴하게 계약하게 됐어요."

"그렇구나, 그럼 아파트는요?"

"아파트에 다시 살 것도 아닌데 정리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지인은 그렇게 아파트를 버리고 한옥을 선택했다. 매매 계약이 성사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사전에 시공업체가 선정됐고, 소유권 이전과 동시에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리모델링은 지인의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전문가의 눈에는 이런저런 하자들이 보였고, 어차피 공사가 필요하다면 손댈 때 같이 처리하는 것이 가장 싸게 든다는 말에 일이 커졌다. 기존에 있던 벽들은 모두 철거가 됐고, 기둥과 지붕만 앙상하게 남아 한옥이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이었다.


리모델링은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필요로 했다. 4개월이 지나면서 공사 진행이 궁금했던 나는 여유 있는 시간에 살며시 현장을 찾아갔다. 몰래 살짝 보고 온다고 찾아갔던 것인데 현장을 체크하던 지인에게 들켜버렸다.

"도와주러 오신 거죠?"

"아니요. 도둑 관찰하러 왔는데 그만 딱 걸렸네요."

"이미 걸렸으니까 와서 도와줘요."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싱크대 조립요."

"네? 싱크대요? 그거 시공업체가 하는 거 아니고요?"

"우리 아내가 이케*에서 주문해서 직접 조립해서 쓰고 싶다고 고집을 부려서요."

"그럼 당연히 그렇게 해 드려야죠."

"그런데 한옥이라 직선이 나오지 않아서 큰일이네요."

"그럼 일단 조립만 하고 뒤에 벌어지는 공간은 제가 아는 사장님께 부탁해보죠 뭐."


그렇게 또 지인에게 걸려들어 몇 시간 소비를 하며 싱크대 조립을 했다. 난방에 신경을 많이 써 리모델링된 한옥은 아주 따뜻했다. 실내온도 19도에서도 춥지가 않고 온기가 유지된다고 자랑을 한다. 그리고는 구석구석 리모델링으로 만족한 공간들을 보여준다. 얼굴에는 만족의 미소를 한껏 피워 올린 채 말이다. 그런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 보는 나조차 기분이 좋았다. 도둑 방문은 일손을 더했고, 미완의 싱크대를 남기고 끝이 났다.


얼마 후 이사를 했다며 연락이 왔다. 내가 아는 사장님의 도움으로 싱크대 뒤편의 공간 마감도 잘 마무리됐다고 한다. 그런데 외부의 공사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지만,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이 이사를 해야 해서 공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하게 됐다고 했다. 방문하고 싶었지만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또 한동안의 시간을 보냈다.


닉네임으로 각인 한 도마를 하나 준비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고 하니 제일 만만한 도마로 입택 선물을 대신하기로 했다. 이사가 완료된 한옥은 좀 더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곳곳에 시공업체가 생각지 못했던 공간들에는 주인의 손때가 어느새 자라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틈에 지인의 아내가 물어왔다.

"가지고 있는 공구가 뭐 있어요?"

"공사도 거의 다 끝난 것 같은데 공구는 왜요?"

"필요한 물건을 몇 가지 만들고 싶은데, 매일 쓰는 공구는 아니니까 서로 없는 거로 구입해서 공용으로 쓰면 좋을 것 같아서요. 어때요, 괜찮지 않나요?"

"아, 네 좋은 생각인데요? 그런데 사실 제가 공구가 별로 없어서요."

"뭐뭐 있으신데요?"

"가진 거라곤 각도절단기와 직소기, 드릴과 손대패가 전부예요."

"그걸로 가구들을 만드신 거예요?"

"판매용은 아니니 대충 만들 정도는 되죠 뭐."

"전 가구 같은 거 잘 만들고 그래서 공구가 많은 줄 알았어요."

"저한테 없는 거로 꼭 필요한 것만 구입하세요. 생각보다 많이 쓰지 않고요, 손재주가 있으신 거 같으니까 없어도 만드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겁니다."

"저도 나무로 소품 같은 거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이사했으니까 필요한 거 만들어 보려고요."

지인과 지인의 아내는 어느새 한옥에 물들어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살고 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웠고, 생각은 어느새 집에 손때를 묻힐 계획부터 세우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마당이 생각보다 작은 것이라고 했다. 그 외에는 모든 면에서 만족한다고 했다. 어차피 주택(한옥)이라는 집은 완벽하기가 쉽지 않다. 부족함을 어떻게 채워가느냐와 어떻게 누리며 행복을 찾아가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봄이 오면 현관 옆에 아주 작은 화단을 만들고 싶다고 화원에 같이 가줄 수 있냐고 묻는다. 작지만 구상이 필요할 것 같다며 도움을 청한다. 지인의 아내는 말하는 내내 꿈으로 부풀어 가는 얼굴이다. 자주 본 적은 없지만 아파트에 살 때는 볼 수 없었던 행복한 모습 같다.


어느새 하얀 목련이 활짝 피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하얀 목련은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목련의 환한 꽃과 같이 지인의 집에도 행복이 끊임없이 만개하는 시작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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