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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Mar 31. 2022

마당, 행복과 기억 사이

주택에 사는 맛

마당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기존의 마당을 모두 뒤집을 생각을 하니 아쉬운 마음이 생긴다. 주택에 살아오는 동안 오가며 찍어놓은 휴대폰의 사진들을 살펴본다. 지난 사진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살아온 시간만큼 사진도 많이 바뀌어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아쉬운 마음에 몇 장의 사진으로 그날이 살던 시간의 기억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내가 주택이라는 공간에 스며들어 살아온 지가 어느새 20년이 되어간다. 유년의 삶이야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아온 삶이었지만, 성인으로 접어들면서 살았던 아파트의 삶은 아무런 재미가 없었다. 말 그대로 주거목적의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날들이 주는 별다른 매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런 삶 가운데 생각의 전환점이 될만한 일이 생겼다.


우연히 한옥을 방문하게 된 어느 날의 일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와의 멋들어진 곡선과 모양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첫눈에 반할 만큼 눈에 쏙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관리가 쉽지 않아 살기에는 다소 힘이 들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한옥 특유의 풍경이 눈에 쏙 들어온다. 유년의 삶이 흔적이라도 남겨놓은 것처럼 낯설지 않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대청마루를 손으로 만지니 유년의 그날이 찾아왔다. 잠시 대청마루에 앉아 눈으로 사방을 쓸고 다니며 기억을 찾아 헤매다 문득 하늘을 봤다.

한옥 중정의 모습 @소향


그것은 흡사 두근거림에 가슴이 툭 내려앉는 듯한 순간이었다. 시선이 고정된 곳은 처마 끝 파란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한옥의 우아함이 만들어놓은 풍경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잔잔하게 이어지는 곡선과 심심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서까래의 구성진 모습은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했고, 거기에 파랗게 물든 하늘이 무심하듯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모습으로 덧붙일 말이 더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 경험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삶의 중심으로 주택이 들어왔다. 편리하거나 화려함보다는 그저 주택이 주는 편안함과 소소한 일거리가 만들어주는, 손때가 씨앗이 되어 정을 키워가는 모습들이 좋았다. 불편함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잠자고 있던 유년의 향수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아파트에서는 맛볼 수 없는 주택의 살아있는 맛으로 불편함은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중 직장을 옮기게 되었고, 새로운 보금자리는 주택으로 결정되었다.

주택살이 첫 집수리의 기록 @소향


처음부터 과한 리모델링을 하지 않았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그 모습이 좋았고, 인위적으로 과하게 손을 댄 모습은 주택도, 아파트도 아닌 어중간한 모습이라 싫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주택을 인테리어도 하지 않은 채 최소한의 수리만으로 살았다. 생각보다 주택에서의 생활이 불편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아파트보다는 단열이 약해 난방비가 다소 많이 들었던 것과 한여름에는 에어컨의 과다한 사용으로 전기료가 많이 나온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결국 냉난방비 절감을 위해 단열 보강공사를 하면서 추가로 몇 가지 보수공사를 더했다. 그것이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다.


옆지기는 엔틱을 좋아하지만 꽃을 더 좋아한다. 나 역시 식물을 키우고 가꾸는 것이 재미가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마당은 수시로 변화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이 꽃집이냐고 물을 정도로 마당에서 200여 가지 이상의 야생화들이 계절을 따라 꽃을 피웠다. 화단이 작기는 해도 빈 공간을 참지 못하는 옆지기가 공간에 맞는 꽃들을 매번 공수해 왔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장미를 성장시켰다. @소향


보수공사로 새로 만들어진 현관 기둥이 허전하다고 심었던 넝쿨장미는 시간이 지날수록 부풀어 올랐다. 간신히 기둥에 매달려 있던 것이 이제는 기둥을 넘어 지붕을 점령해 가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장미는 화려함으로 공간을 채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화단을 차지한 야생화는 옆지기의 쉴 틈 없는 바지런에 더 이상 빈틈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틈이 없다고 방심하는 사이에 낯선 아이들이 뾰족뾰족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질긴 생명의 신비를 지닌 잡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비가 오고 난 후에는 어디서 찾아오는지 우후죽순으로 성장을 경쟁하고 있다. 그럴 때면 작은 화단임에도 꼬박 하루는 잡초를 제거하는 수고를 지불해야만 했다.


잡초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피어나는 꽃들이 벌을 불러들이듯 사람들까지 불러들였다. 마당에서 마시는 커피는 일상이 되었다. 만남의 장소가 되었고, 담소와 무료함, 별일이 있어도, 별일이 없어도 사람들은 편하게 대문을 넘었다. 소비한 시간만큼 늘어난 사람만큼 점점 더 동네 사랑방이 되어간다.

마당에는 꽃들이 산다. @소향
화단에 피어난 야생화들 그리고 능소화 @소향


올해는 꽃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한다. 마당 전체가 공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화단 면적을 많이 축소시킬 계획이기 때문이다. 화단이 줄어드는 이유는 공간분할을 통하여 보다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다. 구분이 모호한 지금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화단을 줄이는 대신 화분으로 부족한 공간을 구성할 계획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인허가 문제로 아직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여름의 문턱에 들어서야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올 한 해는 마음 편하게 잠시 쉬어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그동안 찍어놓은 사진으로 대리 만족해야 할 상황이다.


가끔 찍어놓은 사진은 마당의 역사 기록물이 되어간다. 주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 때문에 오래 전의 사진들은 화소가 낮아 화질이 좋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다. 지나온 것은 언제나 시간의 흔적을 간직하게 마련인 것 같다. 그것은 사진뿐 아니라 시간의 지배를 받는 모든 사물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홈카페라 명명한 데크의 쉼터 그리고 활짝 핀 장미 @소향


화질이 좋지 않다고 해서 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진을 찍은 순간이 역사가 되는 것이니 어쩌면 미래의 아주 소중한 기록물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식물이나 주택이 무슨 기록물씩이나 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어쨌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우리 가족에게는 소중한 기록이 될 테니까.


미래의 어느 순간에서는 말이다. 휴일 아침 여유롭게 즐기는 커피 한 잔의 시간이 그리울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구워 먹던 바비큐의 불맛이 그리울 것이다. 홈핑을 즐기던 장작의 눈물 나게 매운 연기가 그리울 것이다. 그런 일들이 사진의 기록으로 남아있다면 좀 더 풍성한 추억의 나눔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침의 커피 향과 불맛을 기다리는 토마호크, 그릴에 피어오르는 숯불 @소향


주택에 산다는 것은 정을 가꾸며 사는 것이다. 주택이 단순히 거주의 목적으로만 사용된다면 나는 주택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번거롭지 않고, 신경 쓸 일이 적은 아파트를 놔두고 주택에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주택에 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이 아이들의 유년이다. 함께 흙을 만지고 뛰어놀고, 여름이면 마당에 풀장을 만들어 수영도하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었다. 가끔은 아이들의 친구를 모아 파티도 해주고 덩달아 어른들이 편히 모여 놀 수 있는 공간도 되었다. 그런 사랑방으로 마당만큼 좋은 공간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주택에 살면서 집을 손질하고 마당을 가꾸며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움직이는 만큼의 정을 가꾸는 것이다.

선물이 된 야생화 화분과 화단의 야생화, 익어가는 블루베리 @소향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마당은 우리 부부의 취미생활과 여유로운 산책의 공간 등으로 두루두루 사용되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라도 마당은 여전히 그들의 기억을 저장하고 있을 것이다. 공사로 마당의 모습이 다소 바뀐다고 해도 그것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과도 같은 겉모습의 변화일 뿐이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다면 말이다.


이렇게 합리화를 하는 생각 속에서도 마음은 생각보다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 영원한 것은 없는 거야!!"


하루가 저물어간다. 조용히 내리는 밤비의 작은 흔적에도 바람은 어느새 온기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 밤이 지나고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면 봄은 다시 아름다운 단장을 시작할 것이다. 봄은 또 그렇게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 그날이 살던 기억을 소중히 꺼내본다. 아직 현재 진행형이니 참 다행이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택에 사는 맛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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