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흐릿한 날이면
세상이 먼저 꺼내는 건 눈물이다
길 위에 누운 젖은 바람위에
우산 하나, 말 없이
그림자에게로 기울어지고 있다
간이역,
풍경이 눈으로 걸어 들어오면
플랫폼 끝에 시간을 붙잡고 있는 사람
그래도,
기차는 더 이상 시간표를 생산하지 않았다
기다림은
도착을 바라는 일이 아니라
떠난 것을 이해해가는 과정이라는 걸
감정의 부재를 보고야 가슴이 깨닫는다
각진 모서리가 세월을 긁으면
쓰러지고 무너지고,
그래도 그 자리에 다시 선 날들
무릎에 남은 흉터조차
내가 살아온 이유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때로는
다시 피지 않을 꽃을 위해
의미가 계절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리움이 손에 들려주는 것들은
언제나 부재의 반대편에서 온다
그래서
오늘도 비가 내리는 오후에
감사의 마음으로 기다림을 슬며시 꺼낸다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다는 건
그가 아직 내 안에 살아 있다는 증거이니까
장마가 시작된 날이면 더 그렇다
기억이 유년을 찾던 어느 오후
아버지를 놓고 온 풍경이
빗소리를 감아 영사기를 돌리고 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내 삶의 가장 조용한 기도가 되었다
등 뒤로 멀어져 가던 그 뒷모습이
세상의 끝처럼 멀어지던 그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시간의 시발점이었다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한다
우산 하나 들고
젖은 하늘 아래 오래 서 있는 일
그건 단지 기다림이 아니라
다시는 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감사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아주 오래도록
기다려보고 싶어진다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