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밤은 유독 조용하다. 그 고요 속에서 문득, 지난해 병실에서 있었던 한 장면이 스친다.
갑자기 쏟아지던 적막, 그리고 그 침묵 속에 떠 있던 달빛이다.
누군가 세상을 떠난 날 밤이었다.
숨결은 서서히 얕아졌고, 말 대신 기계음만 호흡하던 순간이다. 시간은 무의미해졌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를 붙잡고 있었다.
그날, 병실 창문에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빛이지만, 하늘엔 맑은 달이 떠 있었다. 눈이 시릴 만큼 선명한 달이었다. 그 빛을 보는 순간, 처음으로 슬픔이 밀려왔다.
아, 정말 끝인가.
돌아보면 우리는 늘 누군가를 보내며 익숙한 이별을 연습한다. 그러나 진짜 이별은 연습으로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작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아무 말 없이 떠난 당신을 어떤 말로도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린 그 밤에 달빛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 빛은 차가웠지만 이상하게 따뜻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따뜻한 침묵이었다.
어쩌면 그건,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마지막 조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낼 때, 그 모든 감정과 기억의 무게를 대신 밝혀주는 응급조명처럼 말이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방 안의 모든 빛이 의미를 잃는다. 그러나 달빛은 달랐다. 언제나처럼 제 자리에 있었고, 그저 조용히 그 밤을 밝혀주었다. 나는 그 빛 속에서 비로소 눈물이 났다.
누군가를 잃은 사람에게는 말보다 조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잦다.
어느 날 누군가의 창가에, 또 어느 날은 조용한 골목길에 머물러 있는 하얗게 빛나는 달을 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별을 겪고 있을 거라고, 누군가는 울지 못해 달을 보고 있을 거라고.
달빛은 그들에게 무엇일까 하는 일련의 생각을 한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아무도 켜주지 못한 조명을 대신 밝히는 것이다. 어둠이 너무 깊어 그조차 닿지 못하는 밤에도 그 빛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언젠가부터 달을 위로의 형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말보다 더 깊고, 눈물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이다.
달빛은 그저 빛이 아니라, 기억을 붙잡는 끈이었다. 떠나간 사람을 잊지 않도록, 남아 있는 이들을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무형의 손.
누구의 이마 위에, 누구의 마음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그런 빛이다.
슬픔은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슬픔을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꽃을 놓는다. 그러나 그 꽃은 이제, 슬픔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억을 위한 것이다.
기억은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니까.
그리고 오늘 밤도 어김없이, 하늘에는 달이 떠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처음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묻고 싶어진다.
달빛은 누구의 응급조명이었을까.
내가 그 빛에 기대어 견디던 밤처럼, 지금도 누군가에게 그 빛이 응급이 절실히 필요한 밤일까 생각해 본다.
이 세상의 모든 이별에, 모든 사랑에, 그 빛이 닿기를 바란다.
아무런 말 없이 다정한 방식으로 충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