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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빛의 연애편지다

by 소향

그림자는 빛의 연애편지다.
그의 고백은 눈부심 없이,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존재함으로써 전해진다.
빛은 매 순간 우리를 향해 뜨겁게 다가오지만, 그 다정함은 때때로 지나치게 눈부셔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그러나 그림자는 다르다. 그 조용한 존재는 늘 곁에 머물러 남아있다.
이름도 없이, 몸짓도 없이,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전해지는 사랑의 마음과 같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또렷해진다. 한쪽의 존재가 클수록, 다른 쪽의 시야는 깊어진다.
그림자는 결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지만, 사라질 때조차 끝까지 나를 따라온다.
이름 없는 헌신이다. 빛이 되려 하지 않고, 그 빛을 비추는 반대의 위치에서 침묵하는 일이다.
사랑이란 결국 그러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지켜주는 일이다.

사람들은 늘 빛을 좇는다.
밝음, 명확함, 드러나는 것들과 같은, 하지만 삶을 진짜로 구성하는 것은 오히려 그 반대의 것들이다.
조용히 자라나는 마음, 아무도 보지 못하는 시간의 결,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조용히 바라봄이다. 그림자는 그 모든 것의 모양이다.

눈부시지 않기 때문에 오래 머무는 감정이 있다. 자주 들여다보지 않아도 존재감을 발하는 관계가 있다.
그림자는 늘 나보다 반 걸음 느리게 움직이며, 나의 방향을 묻지도 않고 따라온다.
질문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떠밀지도 않는다.
사랑이란, 이처럼 조용한 신뢰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그림자가 있는 곳엔 반드시 빛이 있다.
그러니 삶이 어둡게 느껴질 때도, 그것이 사랑의 부재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아주 가까이 다가온, 너무 가까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사랑일 수도 있다.
그림자는 늘 발밑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밟지 못하고, 아무도 거둘 수 없다.
그 자체로 한 편의 고요한 연애편지다.

가끔은 그림자에게 말을 걸어본다.
이해받지 못한 날, 이유 없이 무너지는 밤,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마음이 내 안에 고요히 가라앉을 때, 그림자는 아무 말 없이 침묵으로 받아 낸다. 그것이 말보다 깊은 위로임을 안다.

빛은 무조건 앞을 향해 가고, 그림자는 끝까지 곁에 남는다.
손을 뻗지 않아도 닿아 있는 거리, 그 애틋한 거리에서 우리는 자주 사랑을 배운다.
멈춰 설 때도, 무너지듯 주저앉을 때도, 그림자는 내 등 뒤에 가만히 놓여 있다.
사라질 듯 희미해져도, 나의 존재를 마지막까지 감싸안는다.
그것은 말이 아닌 존재로 쓰는 편지다.

사랑은 어쩌면,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앞서 나아가려 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는 그림자 말이다.
그 사람보다 먼저 떠나지 않고, 그가 멈출 때 나도 함께 멈추는 것이다.
함께 빛나지 않아도, 그가 빛날 수 있도록 가장 어두운 자리에 머무는 것이다.

삶은 찬란한 빛보다, 그 빛을 지탱하는 그림자들의 합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군가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응원이었고, 또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품이었다.
세상은 이름 없는 다정함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랑은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존재한다.
그림자는 말없이 보여주는 사랑이다.
절대 사라지지 않는 마음의 윤곽이다.

오늘도 나는 그림자를 따라 걷고있다.
그림자가 있어 내가 빛이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빛나게 하기 위해 그늘이 되어야 하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그림자의 존재를 통해 배운다.

그러니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사랑은 반드시 빛나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림자처럼 묵묵하게 남아, 말없이 곁에 존재하는 것도 누군가에겐 가장 깊은 사랑의 편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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