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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속마음

by 소향

말이 빠른 사람이 유능하다고 여겨지는 시대다.
요점을 먼저 말하고, 감정을 요약해 보여주며, 반응은 망설이지 않는다.
말이 늦거나 적은 사람은 종종 무심하거나 답답한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종종 중요한 것을 놓친다.

한 직원이 떠오른다.
회의 시간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지만, 퇴근 후 남아 묵묵히 일의 마무리를 정리를 하던 직원이다.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직원 덕분에 다음 날 다른 직원들은 모두 잘 정리된 회의자료를 받아 보게 되었다.
그가 남긴 말은, “어제 정리해 봤어요.” 단 한 마디였다.

그 사람은 언제나 조용했다.
모서리를 감춘 말만 골라 쓰고, 성급한 대답보다 정확한 마음을 기다렸다.
눈에 띄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사라져선 안 될 일은 그가 하고 있었다.

그 직원의 조용함은 무기력도, 무관심도 아니었다.
불필요한 설명을 삼가는,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절제 같았다.
그는 말보다 행동이 앞섰고, 행동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조용한 사람은 다른 사람 사이의 온도를 알고 있다.
상대의 말에 불필요한 답을 얹지 않고, 공백을 존중한다.
말하지 않는 순간에도 함께 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준다.

누군가의 말보다, 말없이 놓인 컵 하나가 더 깊은 위로가 될 때가 있듯이, 손끝에서 흘러나온 온기는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에 닿는다.

조용한 사람은 자주 오해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오해는 신뢰로 바뀐다.
쉽게 말하지 않았던 이유가, 결국은 마음의 깊이였다는 걸 알게 된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 말이다.

세상은 시끄럽게 돌아가고, 빛나는 말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그러나 오래 남는 것은, 언제나 조용함 속에 강함이다.

빛보다 먼저 도착한 온기처럼, 그 사람은 말보다 앞서 마음을 내어주었다.
언제나 한 걸음 뒤에 있었지만, 누구보다 진지하게 함께 했던 것이다.

조용한 사람은 말이 없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 침묵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중심이고, 확신이다.

소음은 쉽게 잊혀진다.
그러나 조용한 사람의 존재감은 적을지라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마치 불이 꺼진 방 안에서도 한참 동안 남는 잔열처럼,

말하지 않는 자리에도 그 사람의 마음은 그림자처럼 남는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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