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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ug 09. 2019

"돈 벌고 싶나요?"

빅 쇼트(Big Short. 2015)

  늘 돈이 문제다. 벌어도 벌어도 부족한 것 같고 이왕이면 많았으면 하는, 돈이 늘 문제다. 인생 할이 운빨이라며 오늘도 로또를 사는 당신에겐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니 우린 모두 월급이라고 받아봤자 잠시 머물다가 가는 플랫폼 같은 인생이다. 어디 가서 돈벼락이나 맞았으 싶다. 당신도 그리고 나도 꿈꾸는 소시민의 희망이 왜 벼락처럼 다가오지 않을까. 오늘도 역시나 꽝인 복권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는다.


  부와 빈곤의 정의를 단순히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면 지구의 몇 퍼센트의 인류가 부자에 그리고 가난한 자에 해당될까. 그리고 그 안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자신들경제적 상황에 대해 모두 수긍할까. 아마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특히 객관적인 수치에 의해 부자로 정의된 많은 사람들은 반박할 가능성이 크다. 돈 이란 것은 애초에 요물이라 많아도 늘 부족한 것 같다. 아니 많다는 기준 자체가 없다. 돈의 수치는 상대적인 가치인지라 만족도 역시 제각각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다 만족할 만한 돈을 모두가 함께 벌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없다. 돈의 흐름에서 논제로섬 게임(Non Zero-sum game) 없다. 모두가 윈윈. 너도 벌고 나도 벌고. 함께 하는 아름다운 돈의 세계란 기대하기 힘들다.


  나 역시 이 요망한 돈에 대해 때론 쿨하고 때론 질하다. 누구나 다 그렇다고 위안받고 싶다. 어쩔 수 없이 돈에 끌려다니는 내 마음을 마주 할 때면 세상 그렇게 질할 수가 없다. 위대 할 순 없어도 가치 있는 생을 살자고 다짐하면서 숫자 0의 개수에 따라 휩쓸리는 삶이라니. 내 안에 숨겨진 욕망의 민낯을 볼 때면 결국 나도 그저 그런 인간임을 인정하게 된다.


  내 과거를 돌이켜 보면 돈에 휘둘리는 내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무조건 취업 잘 되는 과를 권장하시던 아버지에게 취업이 전부가 아니라며 난 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거라고 아주 당당히 맞받아 치던 10대는 이미 없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어머니의 성화에도 부득부득 우겨 정말이지 취업과는 거리가 먼 순수 인문학을 택한 나는 지금 어디로 갔단 말인가. 돈이 대수냐. 삶에 있어 순수 인문학이 인류에게 주는 가치가 얼마나 큰데 인문학이 죽은 사회는 끝난 사회라며 도도하게 외쳐던 나는 이미 너무나도 작아져 있다. 그렇게 말리던 부모는 잊고 '돈 잘 버는 직업은 왜 추천해 주지 않으신 거야' 라며 뻔뻔한 원망을 하기도 한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누군가가 가상화폐로 큰돈을 벌었다거나 나이 어린 유튜버들이 월 몇십억을 번다는 기사를 접할 때면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내 생에 자괴감까지 몰려오게 하니 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요물임에 틀림없다.



영화 '빅쇼트' (2015) 스틸 컷


  영화 '빅 쇼트'(감독, 애덤 맥케이)는 이러한 돈의 생리를 감 없이 드러낸다. 영화는 비극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경쾌하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네 명의 천재들이 미국 경제 하락에 배팅하여 엄청난 부를 얻은 실화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미국이, 어쩌면 전 세계가 망하는 것에 투자를 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2008년도 서브프라임 모기지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많은 사람들의 직장을 잃게 했고 집을 잃게 했으며 생을 잃게 했다. 아이를 안고 쫓겨난 집 앞에서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해 작은 자동차에서 생활한 이도 있었다. 이런 어둡기 그지없는 실화를 영화는 되려 밝게 하지만 신랄하게 표현한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저런 나쁜 은행 놈들"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온 국민을 기만하고 자기들끼리 벌인 돈잔치에 화가 난다. 알고 보면 다 사기꾼 판인 것 같다. 이미 거품 붕괴의 전조는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아슬아슬한 거짓 놀음은 눈 가리고 아웅 이었다. 우리만 몰랐던 사실. 알면서도 외면하고픈 쓰디쓴 내리막길로 치닫는 경제 상황이 재난과 같은 공포로 다가온다. 동시에 "저러니 우리만 피해자이지"라는 자기 합리화를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몇조, 최소 몇백억의 이득을 취한 주인공들이 너무 부러워 배가 아프기 시작하니, 저런 기회 또 없나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결국 나도 이렇게 뻔한 가 싶어 멋쩍게 웃는다.


  이쯤에서 말하자면 난 이 영화를 그저 영화로 볼 수 없었다. 2008년도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대한민국 남쪽 소도시의 한 가장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까 아직 장남의 대학 등록금은 이년이나 남아 있고 이미 육십 전에 30년 넘게 근속한 회사를 퇴직한 60대 가장은 자신의 퇴직금 중 꽤 많은 금액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었다. 적금을 들어 이자로 먹고 살기엔 은행 이자가 턱없이 낮았던 시절. 평생 적금과 소소한 금액의 주식으로 노후 대책을 마련했던 가장은 2008년 10월 30일 다우지수의 급락과 코스피의 가망 없는 그래프의 낙담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리고 외출 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폐차를 해야 할 지경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사유는 졸음운전, 누가 봐도 가해자가 된 그는 총 12시간이 걸리는 대수술 끝에 가족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는 경추에 쇠막대기 개를 박았다고 전했다.


"어디 한 군데 마비 오지 않은 것은 정말 기적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목에 쇠막대 세 개를 박고 살아가고 계신다. 동안 주식은 회복했지만 아버지는 사고의 후유증으로 조금만 무리를 해도 어깨가 절여오는 만성 통증을 얻었다. 그 후 아버지가 주식에 완전히 손을 뗐냐고? 천만하다. 이제 곧 70을 바라보는 그는 아직도 아침이면 제일 먼저 컴퓨터로 주식장을 체크한다. 물론 금액은 예전보다 아주 아주 소소해졌지만 여전히 사고팔고는 진행 중이다.


  우리는 누구나 돈 벌 꿈을 꾼다. 그것도 많이 벌었으면 한다. 시스템이 어떻든 사회 분위기가 어떻든 시류를 잘 타 큰 부를 얻은 이들을 보면 내가 그 흐름을 놓친 것 같아 스스로 질책까지 한다. 아니 왠지 개인의 능력으로 얻은 부라 해도 운이 좋아 거둔 성공처럼 하대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결국 이기심과 욕망의 민낯을 다 가지고 있으니 그 누가 그 민낯에 침을 뱉으랴.


  "우리는 지금 미국 경제가 무너진다에 배팅을 건 거야.

   우리가 옳으면 사람들은 직장을 잃고 집을 잃고

    은퇴자금도 잃어. 그러니 춤은 추지마."


                                                                                                                                      -빅 쇼트 중 벤 리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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