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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Sep 13. 2019

나는 왜 쓰레기를 사는가

미니멀리즘: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Minimalism, 2015)

  나는 오늘도 버린다. 어제도 버렸고 그제도 버렸다. 아니 일 년 내내 뭔가를 끄집어내고 버리고 중고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정신 시끄러운 일이 있거나 마음이 답답할 때면 나는 집안 곳곳을 뒤지며 버릴 것들을 찾아낸다. 버리는 행위를 통해 이젠 카타르시스까지 느낀다. 이만한 희열이 없다. 버릴 것들을 분류하고 꽉 찬 쓰레기봉투를 볼 때면 뇌 속에서 도파민이 소용돌이치는 것이 느껴진다. 그야말로 '버리기 축제'가 따로 없다.


  내가 물건을 비우기 시작한 것은 올초부터이다. 둘째가 곧 공립학교에 입학을 앞두는 시점에서 뭔가 삶에 대한 새로운 자세가 필요했다. 하찮은 인간들이 늘 그렇듯 내 머릿속이 어지러운 것이 정돈되지 않은 환경 탓인 것 같았다.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부터 처리했다. 귀엽다고 사주고, 싸다고 사주고, 잘 가지고 논다고 사준 장난감이 한 트럭이었다. 이젠 아이들이 커서 가지고 놀지도 않는 장난감을 뭐 그렇게 소중하다고 껴안고 지냈는지 모를 일이다. 아직 멀쩡한 장난감을 볼 땐 본전 생각도 났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의 인연이 여기까지 인 것을. 미련 따윈 접어두고 버릴 용기를 더 끄집어냈다.


  나는 참 물욕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거실에 펼쳐진 온갖 잡동사니를 보니 내가 날 잘 몰랐다. 대부분 육아용품, 아이들 물건이지만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물건이 스스로 새끼를 쳤나. 언제 어디서 구입했는지도 모를 것들이 튀어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누가 볼까 쓰레기 통에 구겨 넣었다. 부끄러웠다. 난 왜 이렇게 쓰레기를 사서 모은 걸까. 도대체 이것들로 인해 내가 기쁘기는 한 적이 있었나. 이것들로 인해 내가 우리 아이들을 더 행복하게 잘 키웠나. 직접 마트에 나가 산 물건들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말 필요에 의해서 산 물건인지 가지고 싶어 산 것인지도 헷갈린다. 분명 쓰기는 썼을 텐데 왜 소유에 대한 기쁨보다 처치해야 하는 버거움이 더 큰 건지 알다가도 모 일이다.




  사회가 너무도 복잡해서 일까? 미니멀리즘 열풍이다. 미니멀리즘과 관련된 책, 다큐멘터리가 주목을 받고 채우기에 급급했던 사람들이 비우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덕후'라는 단어가 더 친숙한 요즘에 '미니멀리즘' 또는 '미니멀리스트'란 용어가 주목받고 있다. 물질의 풍요와 소비가 미덕이었던 사회에서 좀 더 가볍고 심플하게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꼭 필요한 물건에 가치를 부여하고 자신들이 소유한 것들에 타당한 목적을 부여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 열풍에 어쩌면 나도 발을 담근 것이리라. 가볍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일상이 되고 물건으로 받던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마음이 한결 경쾌하다. '아 나는 원래가 뭘 많이 쌓아두고 사는 성격은 못되구나' 다시 한번 깨닫는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미니멀리즘(2015)'은 미니멀리즘을 소망하거나 현재 진행형인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물건을 비움으로 얻어진 새로운 삶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다큐 영화는 소비의 나라 미국에 살고 있는 두 청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조슈아와 라이언은 대기업을 다니다 어느 날 퇴사를 결심한다. 그 후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깨달은 것들을 책으로 엮은 두 사람은 미국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인터뷰와 초청 강연을 펼치며 미니멀리즘에 대해 전파하고 있다. 강연을 하다 보면 이 두 청년에 대해 현실도피 혹은 비겁한 이상주의자라는 혹평 역시 뒤따른다. 하지만 이 두 청년은 그들의 비판을 수용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이 삶의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설파한다. 그들에게 '미니멀리즘'이란 자신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였음을 말이다.


'미니멀리즘' 스틸컷


  많이 가진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그만큼의 물건에 대한 책임까지 함께 져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너무나 많은 나무가, 물이, 환경이 소비되고 파괴되어 가고 있다. 우리가 가진 물건들이 결국은 쓰레기가 되어가는 과정을 반추해 보면 소비를 좀 더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적어도 한번 쓰고 버릴 것만 같은 값싼 기분 전환용 소비는 결국 쓰레기를 재생산 해 내는 과정에 불과함을 말이다.


  얼마 전 벼르고 벼르던 일을 해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갈색 박스들과 전자제품 박스들(더 이상 쓸 일이 없는 것이 확실한) 그리고 여러 번의 이사로 인해 생겨난 각종 잡동사니들을 처리했다. 그것들은 양도 많을뿐더러 크기도 제각각이라 가정용 쓰레기통으로는 처리가 불가능했다.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고 홈페이지를 뒤져 지역 쓰레기 처리장으로 갔다. 미니밴 뒷자리트렁크를 가득 메운 그것들을 버리는데 든 비용은 한화로 대략 삼만 원. 하지만 난 그곳에서 새로운 광경을 보았다. 온갖 쓰레기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압축시키는 과정. 엄청난 크기의 컨테이너 박스 안에는 분리수거 조차 되지 않은 쓰레기들이 뒤엉켜 참혹히 내동댕이 쳐졌다. 그 거대한 컨테이너 쓰레기들은 이제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처치 곤란해 묵혀 두었던 나의 쓰레기들을 비워냈다는 홀가분함도 잠시였다. 왠지 모를 죄책감에 입맛이 씁쓸했다.


  나는 완벽한 미니멀리스트는 아니다. 여전히 아이들 키우기엔 무언가가 필요하고 필요할 것이다. 계절이 바뀌면 기분전환용으로 값싼 패스트패션 의류를 구입하고픈 충동 인다. 읽고 싶은 책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맛이라는 도서 맥시멀 리스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내 나름의 미니멀리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소비에 대한 확실한 룰은 정했다. 적어도 쓰레기를 재생산하지 말자는 것. 꼭 필요한 것을 아주 유용하게 구입해 유용하게 쓰자는 것이 그것이다. 좀 부족하면 채워 넣지 말자는 것. 그 대체품은 항상 또 집안 어딘가에 존재함을 기억하자는 것. 단순하지만 포괄적인 나만의 소비 규칙을 얻어냈다. 더 이상 필요 없는 쓰레기를 사지 말자는 내 나름의 미니멀리스트 룰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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