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참으로 공평하다. 하루 24시간, 과거, 현재, 미래. 이처럼 명확한 정의는 모두에게 동등하다. 하지만 우리가 미래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면 이것은 축복일까. 만약 나에게 원형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문득 안개 같은 삶의 순간에 맞닥뜨릴 때 실수 없는 완벽한 생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화려한 성공을 거둔 사업가도 명성을 얻은 인물들도 자신만의 '만약'은 있게 마련이다. 현재 처지가 곤란한 상황이라면 그 '만약'은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늘 되뇐다. 한 번의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길로 가보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리고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상상을 펼쳐본다. 만약 그때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지금보다 상황은 더 나아졌을지도 모를 거라는.
나 역시 늘 고민과 선택 속에서가끔 만족하기도 하지만 후회도 하며 시간의 결을 쌓아가고 있다. 삶에 대한 고민은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를 두고 하는 고민보단 좀 더 냉혹한지라 머리카락 쥐어뜯으며생각을 해봐도 늘 확실치가 않다. 어느 땐 두려움마저 든다. 그래도 나 홀로 내 인생만 놓고 하는 고민은 그나마 쉬운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선택의 영역은 훨씬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가끔 화장실 가는 문제까지 물어오는 녀석들을 볼 때면 '아 너희들도 이제 시작이구나. 끊임없이 뭔가 선택해야 하는구나'싶다.그리고 가끔은 가보지 않은 길이라도 미리 아는 길이라면 좋겠다.꼭 경험하지 않아도 예견할 수 있는 통찰력이 나에게도 생겼으면 싶었다.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될 수도 있는 원형의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내 미래를 바꾸었을까. 아직 살아보지 않은 인생의 여정을 이미 다 겪은 것처럼 생생한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다면 말이다.
영화 'Arrival'( 2016. 드니 빌뇌브 )스틸 컷
'어라이벌'의 루이스는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와 소통으로 원형의 시간에 대해 깨닫게 된다. 언어학자인 그녀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이해한 후 그들(헵타포드)에게 미래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헵타 포드의 언어를 통해 지구의 인류와 소통하게 하고 곧 분쟁을 일으키는 무기가 아닌 선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루이스는 시간의 원형 속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생의 고통을 먼저 보고야 만다. 너무나도 가혹한참적의 슬픔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 끝이 어떤지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추억 또한 이미 알기에 '그 여정을 수용한다.'
평범한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큰 선물인가. 모르기에 명확하지 않지만 오히려 꿈꿀 수 있음을 말이다. 지나고 보면 잘못된 선택일지언정 그 선택의 결과들이 쌓여 우리의 생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너무도 확실한 시간 속에 사는 우리는 후회할 것도 책망할 것도 없다.
아직 사회적 인간으로 덜 자란 시절,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인간관계에 고통받던 시간을 돌이켜 본다. 나 역시 후회만 가득하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좀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날 드러내지 않았을 텐데 하는 순간들이 있다. 상대에게 보인 내 민낯이 약점 같아 보이고 스스로가 한없이 나약해져 보였다. 내가 나임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은 시간들은 과거의 일임에도 현재까지 후회하게 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몰랐기에 그 정도였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알고 있었더라도 여전히 후회와 책망은 나를 놔주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은 삶에 대한, 내게 주어진 생에 대한 자세가 문제였음을 안다.
때론 '모름'이 미래에 대한 '무지'가 모든 이들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큰 선물임을 깨닫는다. 이 '무지'로 인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생을 좀 더 지금보다는 나은 삶으로 만들어 가려는 게 아닐까. 그러니 순간의 걱정은 접어두고 때론 주어진 생을 겸허히 수용하는 것이 삶에 대한 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