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주일
현재 나는 한국에 있다.
한국에 온지 일주일쯤 되었도 추석을 10년만에 가족과 함께 보냈다.
늘 조용히 일상적인 날을 보내던 외국 생활에 어느 덧 익숙해져서 인지, 10년만의 추석은 정신없이 바쁘게 흘러갔다. 몇년만에 한번씩 한국을 오는데도 한국에선 우습게도 나는 그냥 여기 늘 있던 사람같다. 그만큼 가족은 늘 익숙하고 정겹다.
10년전의 가족은 여전히 내 가족이고, 새 생명들이 생기고, 부쩍부쩍 자라고 있다. 물론, 그 아이들은 내게 낯선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그리고, 10년 전의 가족 문제들은 여전히 지금도 우리의 가족 문제로 현재 진행형이다.
가족을 멀리 떠나 살면서 바라본 가족의 모습은 어느 순간 객관성을 띄게 되기도 하고, 방관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성인이 된 가족은 조금씩 떨어져서 서로를 존중해 줄 필요를 느낀다.
지나 간 추석 얘기를 거두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한국에 온지 일주일, 내가 느낀 한국을 얘기해 볼까 한다. 물론, 몇일 있어본 느낌정도라고 봐주시면 좋겠다.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내게 한국은 서비스가 참 좋은 나라다. 택배 서비스 부터 전자제품 방문 수리 서비스, 대중교통 등등 수없이 많은 것들이 말로 할수 없이 편리하다.
외국에서 조금이라도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방문, 배달, 대중교통 모든 부분의 서비스가 한국만큼 좋은 곳은 없다. 예를들어, 추석 연휴에 우리 집에 갑자기 티비가 나오지 않아서 서비스를 신청했더니, 추석 연휴에 아침에 기사님이 오셔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고 가셨다.
내가 생활하는 뉴질랜드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서비스를 신청하면 우선 물건을 우리가 그곳까지 가져가야 한다. 주말이나 쉬는 날에 서비스가 웬말인가, 평일에도 몇일을 기다리는 건 다반사다. 한국처럼 방문기사님이 오셨다면, 그 요금은 한국의 최소 4-5배다. 그리고 가끔 아무 소식도 없이 기사님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다시 서비스를 신청하고, 기다리고를 반복해야 한다.
한국에선 당연한 그 서비스들은 얼마나 고맙고, 편리한 것인지 그리고 어쩌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행위는 아닌지 우리 모두 조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서비스가 좋은 나라 한국은 정작 'Face to Face' 즉, 얼굴을 대면하면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
어제 나는 시내를 구경하고 시내에 큰 문구점엘 들렀다. 평일인데다 아침이라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냥 구경이나 하자고 들어간 곳이었는데, 아무도 없어 조금 민망할 정도였다.
그렇게 가게를 둘러 보고 있었다. 가게 직원들이 있었지만,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건 뭐 그런가보다 신경쓰진 않았다. 가게 직원과 자연스럽게 눈이 마추쳐서, 내가 살짝 웃었다. 그리고, 그 직원은 나를 모른척 하며 눈을 피하고 휙 지나쳐 가 버렸다.
순간, 이건 뭐지 하는 느낌. 손님이 직원에게 미소를 보내고 직원이 손님을 쌩까는 이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외국에서의 생활보단 한국에서 훨씬 긴 시간을 살았다. 그런데, 어제 그 직원의 행동은 실로 너무 낯설었고, 이해가 안됐다.
현재 나는 오클랜드의 변두리에 살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길가는 낯선 사람들이 늘 웃으며 'Hello'라며 인사를 건넨다. 나도 시무룩 해져 있다가도 그런 인사를 받으면 웃으면서 인사하게 된다. 하물며, 길에서 낯선 이에게도 인사하는 습관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게의 손님에게 건네는 미소도 인색한 곳이 한국이 된 건가 하는 씁쓸함이 생겼었다.
눈이 마주치는 낯선이에게 미소 한번쯤 날려 줄 수 있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타인에게 미소 한번 날려주기 힘들 정도로 우리는 삶이 각박하다. 분명히, 최근 들어 한국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공격성을 표출하는 것이 눈에 띄게 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누군가로 부터 공격당하거나 착취당하지 않기 위해 표독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서로 좀 웃어주면 좋은 하루, 좋은 사람,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이상주의자인가 하는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