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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Apr 29. 2024

내가 좋아하는 꽃 '노루귀'

내가 이름을 불러주고  의미가 된 '꽃'    

   겨울의 추위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얼어붙은 땅을 과감히 뚫고 나와 화사한 자태를 뽐내는 용기 있는 꽃이 있다. 봄의 전령사, ‘노루귀’다.


    지난 3월 첫 주에 노루귀를 찾기 위해 경기도 안산 대부도에 있는 구봉도 산에 갔다.

산기슭에는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큰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낙엽이 쌓인 비탈진 산길은 미끄러워 걷기에도 조심스러웠다. 꽃이 어디 있는지 찾았으나 도통 보이지 않았다. 심마니가 된 것처럼 집중하여 한참을 이곳저곳 세심하게 살피니 낙엽 속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작은 꽃잎이 보인다.

10cm쯤 보이는 꽃들은 아직 때가 이른 지 군락을 짓지 못하고 3~4개 정도씩 무리를 지어 조금씩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무심코 지나치면 발견되지 못할 작은 꽃이었다. 크기가 너무 작아서 카메라를 가까이 대고 거의 누운 자세로 찍어야 했다. 불안정한 자세에 허리도, 목도 아팠으나 꽃을 관찰하는 내 마음에는 어느덧  잔잔한 감동이 스며들고 있었다.

    활짝 피어있는 꽃잎은  깨끗하고 단아하게 보였다.  조그마한 꽃잎 안에는 노란 화분으로 단장한 꽃술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가느다란 줄기에 있는 하얗고 부드러운 작은 솜털들은 햇빛에 반사되어 투명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작지만 온전하게 성숙한 꽃의 아름다움이었다.

숲 속 나뭇잎들 사이로 슬며시 비추는 햇볕이 충분하지 않을 것 같은데도 꽃잎을 활짝 피워내었다. 얼마나 강인한 야생의 생명력인가.

    메말라 버석거리는 낙엽 속에서 숨어있듯 보이는 가녀린 야생화, 어쩌면 너무나 보잘것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난 ‘노루귀’라는 작은 꽃이 반짝거리며 숨 쉬는 온전한 ‘존재의 빛’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수없이 많은 인연이 스치고 지나가며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러다 누군가 멈추어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빙긋 웃는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내 이름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인연>이 시작되고,

그 빛깔과 향기를 인정해 주면서

 서로에게 <의미>가 된다.

소중한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너무나 멋진 일이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고 나에게

 의미가 된 꽃이 생겼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구석진 곳에서 태어났어도,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지니고 태어났어도,

  작은 흠 하나 없는 순수함으로

활짝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

가녀린 몸으로 그 어떤 꽃보다도 먼저

겨울의 찬 공기를 헤치고 나와,

봄소식을 전해 주는 용기 있는

당찬 전사 같은 꽃.

모든 생명은 그 존재 자체로서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깊은 내면을 가진 꽃.


내가 좋아하게 된 꽃,

그 꽃은 ‘노루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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