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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Sep 12. 2020

103. 사다리 놀이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났다. 아침부터 집을 구하러 돌아다닌 탓인 것 같았다. 오늘 하루 허비 했네. 세희는 생각했다. 엄마와의 다툼 때문이었다. 엄마는 세희에게 전셋방을 알아보라고 했었다. 세희가 부모님 돈으로 내는 매달 월세가 아깝다고 하소연해서였다. 1억 3천만 원 안팎의 전세면 대출이자에 관리비, 가스비까지 더해도 지금 사는 고시텔 방세보다 훨씬 저렴할 거라고 설득도 했다. 그래서 겨우 조건에 맞는 방을 찾았는데, 엄마는 다시 월세로 구하라고 했다.


엄마는 대출도 빚이라고 말했다. 아직 취업준비생인 그녀에게 빚을 지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세희는 되레 자기가 취업준비생이기 때문에 전세를 살고 싶은 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마냥 백수로 타지에 살면서 부모님 노후자금을 쓰는 게 마음이 불편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엄마는 강경했다. 


- 엄마가 생각하는 최선이야. 


엄마는 딱 잘라 말했다. 물려 줄 재산은 없어도 빚은 자식에게 지워주지 않는 것. 그게 엄마의 최선이었다. 세희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날 하루 아무 소득 없이 세희는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은 것이다. 


열차가 당산역을 지날 때였다. 창문 밖으로 한강이 보였다. 옆에 앉은 여자는 굳이 몸을 돌려서, 반대편에 손잡이를 잡고 서있던 남자는 출입문 앞까지 가선 강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찾는 양 빤히... 늦은 저녁 한강 위엔 붉은 가로등 불빛이 비춰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세희가 본 것은 그게 아니었다. 세희는 강변을 따라 늘어선 아파트들을 보고 있었다.


- 언젠가 나도 저런 데서 살 수 있을까.


아주 작게 혼잣말이 툭 튀어나왔다. 한강을 지하철이 아니라 거실에서 보고 싶다, 고도 말했다. 민망한 마음에 입술을 꾹 닫았다가 이내 그 입술 한쪽은 오른쪽으로 올라갔다. 정치인 A가 떠올라서였다. 그는 서울을 천박한 도시라고 했다. 문화재는 없고 아파트만 가득하다고 했다. 세희는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그 말은 아파트가 한국 사회에서 상징하는, 사람들의 상승에의 욕망을 비하하는 말로 들렸다. 부와 지위, 더 나은 삶을 위해 아등바등 자기 앞에 사다리를 대고 매달리고 올라가려는 이들을 비난하는 것 같았다. 사다리를 걷어차는 건 정보, 자본, 지식을 갖춘 투기꾼이래도 선의와 정책 효과 사이 등식이 꼬이면서 사다리를 아예 없애버리고 있는 건 그가 대표하는 정당과 그의 동료들 아니었던가. 누가 더 나쁜지 세희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이젠 사다리 놀이인가 싶었다. 게임이 진행될 수록 줄어드는 의자 수처럼 사다리도 사라지고 있으니까. 뺏고 뺏기며 경쟁하는 건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자는 앉으면 그만이지만 사다리는 타고 오르기까지 해야 하니까 걷어차이면 그만이네. 그럼 더 어려운 놀이네. 세희는 생각했다. 


만약에 의자에 앉을 수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도 없으면 어떻게 하지? 세희는 궁금했다. 그저 멀뚱히 서있으면 세상은 그녀에게 말할 것이다. 노력을 해. 노력이란 끊임없이 걷고 뛰는 일일 것이었다. 점프도, 착지도 없이 그저 길 위를 끝없이. 


후,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그들은 여전히 밖을 보고 있었다. 무얼 저리 쳐다보는 걸까. 한강에 비친 빛?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사려면 그들이 져야 할 빚? 그것도 아니면 강물에 꼬르륵 빠져버린 그들의 꿈과 희망? 그것들은 더 나은 삶을 좇아 그들이 견뎌낸 그날 하루의 의미처럼 깊이 잠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골똘이 생각에 빠졌던 탓인지 세희는 더 배가 고파졌다. 어서 집에 돌아가 엄마가 보내준 반찬으로 밥을 먹고 싶어졌다. 정치인 B는 두 아들에게 삶의 기반을 마련해주려 아파트 세 채를 샀다는데, 그처럼 자식 앞에 사다리를 대줄 수 없는 세희의 엄마도 오늘 세희만큼 심란할 것이다. 세희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생각했다. 그러곤 혼자 말했다. 


- 사다리가 걷어차지고 아예 물 속에 잠겨버려도 오늘은 밥부터 먹어야지.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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