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메시지가 떴다. "밥 먹었니?" 엄마였다. 지수는 손가락으로 메시지를 날려버렸다. 그러곤 "밥은 먹었지." 한숨 쉬듯 혼잣말을 뱉었다. 다시 기사로 눈을 돌렸다. '10월 청년 취업자 수 16만 6000명 감소' 기사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숫자는 와닿지 않았다. 그저 지수는 생각했다. '내가 이 중에 하나구나' 하고.
원래 지수는 밥 먹었냐는 말을 좋아했다. 왠지 다정하게 느껴져서였다. 그 말에는 하루 세끼 챙겨먹는 일상이 잘 유지되고 있느냐고, 그러니까 밥을 거를 만큼 바쁘거나 밥이 안 내킬 만큼 버거운 일이 있지는 않냐고 염려하는 마음이 담긴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말은 때로 지수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지수는 밥을 잘 챙겨먹었다. 다만 시도때도 없이 먹었다. 수다의 빈자리에 밥을 채워넣었다. 타지에서 홀로 취업준비를 하면서부터 생긴 습관이었다. 취업준비생의 불안감과 권태는 밥이라는 쾌락으로 잠깐 달랠 수 있었다. 공부는 하기 싫고, 빈 시간은 지겨울 때 지수는 먹었다. 포만감으로의 도피였다.
코로나 19로 지인들과의 약속이 취소되면서 습관은 심해졌다. 지수는 눈만 뜨면 텅 빈 속을 밥으로 채웠다던 유명인의 말을 떠올렸다. 지수도 그랬으니까. 그러다 지수는 '자격'을 생각했다. 누구나 매일 먹는 밥 앞에서. '사회에서 일인분의 몫도 못 하는 내가 이렇게 먹을 자격이 있을까'하고.
그렇게 지수에게 밥은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밥 먹었냐는 말은 죄책감을 키웠다. 이미 벌써, 많이 먹은 후였고 지수는 자신이 그런 위로를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밥 숟가락 위에 죄책감을 얹었다. 자주 체했다. 밥 다음에 약. 약 다음에 밥. 지수의 하루는 이 쳇바퀴를 돌았다.
띵동 소리가 생각에 빠져있던 지수를 깨웠다. 문을 열어보니 아이스박스가 놓여있었다. 엄마가 보낸 것이었다. 쌀이며 반찬이며 한가득이었다. 다시 들여다 본 엄마 메시지에는 이 말이 더해져있었다. "꼭꼭 씹어 많이 먹어. 엄마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지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엄마의 밥 뒷바라지를 생각했다. 시험 치는 날도, 시험에 떨어진 날에도 엄마가 차려주던 밥상을. 그 밥상과 그 마음이 여기까지 와있었다. 이제 지수는 덜 먹어도 더 배가 부를 것이다. 이제 지수가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밥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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